창원감리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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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昌原監理署
영어의미역 Changwon Audit Review Office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지역 경상남도 창원시
시대 근대/개항기
집필자 양미숙

    [상세정보]

    창설연도/일시 1899년연표보기
    폐지연도/일시 1905년연표보기
    상위관서 관찰사(국내행정면)
[정의]
조선 말기 경상남도 창원 지역의 개항장·개시장에 설치되어 행정과 대외통상 업무를 보던 기관.

[개설]
강화도조약 이후 부산(1876), 원산(1879), 인천(1882)을 비롯해 주요 항구가 개방되면서 그곳에 거주하는 외국인이 증가하고 교역량이 늘어남에 따라 거류지 관계 사무와 통상사무를 전담하고 처리할 기관이 필요하게 되었다. 감리서는 초기에 해당 지역의 부사가 감리를 겸임하고 기존의 행정체계 안에서 업무를 처리하였으나 개항장의 사무가 증가하면서 1892년 직원을 따로 파견하여, 독립된 관서로서 기능하게 되었다.

소관업무는 대체로 외국영사와의 교섭, 조계 안의 일체 사무, 개항장에서의 상품수출입과 세액을 결정하고 거두어서 탁지부와 외부에 보고하는 관세업무, 거류지 내의 외국인과 왕래하는 조선상인의 보호, 개항장의 상업·치안질서 유지 등 개항장 내 모든 사무를 전담하여 처리하였다.

1905년 을사조약으로 외교권을 일제에 박탈당하면서 폐지되고, 그 업무는 해당 지역의 부윤이나 관찰사에게 이관되었다. 그러나 통감부의 이사청이 각 지역에 개설되면서 이사관이 그 업무를 대행하여 일제의 필요에 따라 외교와 통상관계의 행정을 마음대로 처리하게 되었다.

[설립경위 및 목적]
1898년 5월 26일 열린 의정부 회의에서 마산포의 개항이 결정되었다. 고종의 지시에 의해 외부대신 박병목이 청원한 ‘성진, 군산, 마산 3개항 및 평양을 개시’한다는 안은 찬성 7표와 반대 3표로 통과됨으로써 가결되었다. 마산포 개항에 앞서 정부는 1898년 5월 외부대신 박제순(朴齊純)을 통해 마산포를 포함한 3개 항구를 개항한다는 사실을 조선 주재 각국 공사에게 통고하였다.

이에 따라 마산포 개항 업무를 담당할 관청인 창원감리서를 설치해(남성동 제일은행 건물 자리) 창원부윤 안길수(安吉壽)로 하여금 감무서리를 겸무하도록 하고 향후 1년 이내에 개항을 실시하라는 훈령을 내렸다. 훈령에 따라 창원감리는 창원군 외서면의 신월동과 월영동 2개 지역의 약 13만 8,800여 평을 구획해서 외국인 거류지로 확정하였다.

[조직 및 담당직무]
1896년 폐지되었던 감리서가 다시 설치되었는데, 이는 개항장이나 개시장 등의 증가와 그에 따르는 사무적인 분량이나 다른 기관과의 연관성이 많이 증가되었기 때문이다. 다시 설치된 감리서의 직무는 개항장·개시장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에 대해 권한을 위임받아 사무를 집행하는 것이었다.

창원감리서의 경우를 보면, 감리서가 설치됨과 동시에 조계지를 구획해 외국인 거류지를 확정하였다. 또한 조계내의 토지 경매 시 토지구입 신청을 받았으며, 조계지 내 모든 토지를 감리함으로써 지권(地權)을 발급하도록 하는 등의 업무를 담당하였다.

[관련기록]
『각부청의서존안(各部請議書存案)』, 『기안(起案)』, 『외부내문(外部來文)』, 『외부일기(外部日記)』, 『총관거함(總關去函)』, 『탁지부래거안(度支部來去案)』, 『고종시대사(高宗時代史)』4·5·6집, 『고종실록(高宗實錄)』, 『관보(官報)』, 『황성신문(皇城新聞)』, 『칙령(勅令)』, 『일성록(日省錄)』 등에 창원감리서에 대한 기록이 남아 있다.

[변천]
1899년 창설된 창원감리서는 1902년 증치되었다가 1905년 을사조약으로 외교권을 일제에 박탈당하면서 폐지되었으며, 그 업무는 해당 지역의 부윤이나 관찰사에게 이관되었다. 그러나 통감부의 이사청이 각 지역에 개설되면서 이사관이 그 업무를 대행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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