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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경상남도 창원시 진해구 제덕동에 있었던 내이포[제포] 수군을 관할하던 종 4품의 무관. 웅천의 내이포진은 왜구 침략의 요충지인 웅천현 남쪽 5리 지점에 설치되었다. 수군 만호(水軍萬戶)가 1인 배치되어 조선 시대 수군 진을 관할하면서 구한말에 이르기까지 왜구들을 방비하였다. 삼국 시대부터 있었던 왜구의 노략질은 고려 중기 이후에 극성에 이르러 1390년(공양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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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 중 지금의 창원[진해]에서 있었던 명과 일본의 강화 교섭. 명의 강화 대표 심유경이 당시 웅천 왜성에 있던 일본 측 대표 고니시 유키나가에게 강화와 관련한 교섭 활동을 벌인 사실들을 말한다. 일본과 명은 1593년 3월 7일 한성에서 회담을 열어 명군 측에서는 3개항의 강화 조건을 내걸었다. 첫째, 조선의 영토를 모두 반환할 것, 둘째, 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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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 시기 창원[진해구]의 도공들이 일본에 납치되어 도자기 제조 기술을 전파한 사건. 현재 진해의 정골[井谷]에는 조선 시대 도자기를 만들었던 도요지가 있다. 이를 웅천 도요지라고 부른다. 웅천[두동] 도요지는 보배산[해발 478.9m]에서 뻗어 내려오는 구릉에서 북서쪽에 위치하며, 행정 구역상 경상남도 창원시 진해구 웅동면 두동리 산 142, 146, 147번지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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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10년(중종 5) 4월 삼포[제포, 부산포, 염포]에서 일어난 일본인 거류민의 폭동 사건. 1510년(중종 5) 4월 삼포의 일본인들이 대마도 일본인들의 내원을 얻어 대마도 소오씨의 군사를 중심으로 한 4,000~5,000명의 병력으로 폭동을 일으켜 한때는 제포, 부산포를 함락시키고 웅천의 방비 장병을 격파하였으나 얼마 후 조선군의 반격을 받아 대패하고 삼포의 일본인 거류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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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 중인 1592년 음력 7월 10일 창원[진해구] 안골포 앞바다에서 벌어진 해전. 한산도 해전을 승리로 이끈 후 1592년 7월 10일[음] 조선 수군 함대가 안골포에 있던 일본의 구키 요시다카와 가토 요시아키가 이끈 정예 수군 함대 42척을 공격하여 승리를 거둔 해전으로 한산대첩의 한 축을 이루었다. 이순신이 이끈 조선 수군의 연합 함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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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 당시 조선을 침략한 일본의 군대가 현재의 창원[진해구]에 일본식 축성 기술로 쌓은 성곽군. 왜성은 임진왜란 시기 일본군이 조선에 건립한 성곽으로 현재의 창원[진해]에는 웅천 왜성, 명동 왜성, 안골 왜성 등이 있다. 이 왜성들은 임진왜란 강화 기간 내내 웅천[현 진해]에 축조되어 일본군의 거점으로 활용되었으며 현재 유적이 비교적 온전하게 남아 있다. 왜성은 일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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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종 때 경상남도 창원시 진해구 지역의 옛 지명. 조선 초기 웅천현이었던 현재의 진해는 1510년(중종 5) 삼포 왜란을 맞아 그 지리적 중요성을 감안하여 그해에 웅천 도호부로 승격되었다가 1512년 다시 웅천현으로 환원되었다. 제포를 개항한 이후 왜인들이 웅천에 거주하면서 여러 가지 문제점이 노정되었고, 특히 삼포 왜란을 통해 이 지역 안보와 지리적 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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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86년(성종 17) 창원[진해] 제덕동에 세워 운영되었던 수군 진영. 웅천 수군첨절제사영은 1484년(성종 15) 숙의 조숙기의 발안으로 결정되어 1486년(성종 17) 진해 제덕동 안지개 마을에 설치된 수군 진성이다. 이곳은 수군첨절제사가 지휘한 경상 우도의 주진으로 기능한 곳이다. 1398년(태조 7)에는 제포 수군 만호진이 도만호로 승격되어 경상 우도 수군도안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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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5년 1월~1595년 2월 중 현재 창원[진해]의 웅천 왜성에서 가졌던 명나라와 일본군 간의 강화 회담. 명나라와 일본 간에 강화 교섭이 이루어진 1595년 1월에서 1595년 2월까지 명나라의 교섭단이 일본의 고니시 유키나가가 머물고 있던 웅천 왜성에 와서 강화 회담을 가진 것을 말한다. 1594년 12월 명나라 조정은 고니시가 조작한 일본의 항복 문서를 믿고 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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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 시기 조선 수군이 1593년 2월 10일부터 1593년 3월 6일까지 총 7차례에 걸쳐 지금의 창원[진해] 웅포 해안에 위치했던 일본군을 공격한 해전. 1593년 1월 부산의 일본군을 무찌르라는 조정의 지시를 받은 이순신은 조선 수군을 이끌고 부산으로 가던 중 웅천에 주둔한 일본군을 먼저 무찔러야만 협공을 방지할 수 있다고 판단하였다. 이를 위해 이순신이 이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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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 시기 지금의 창원[진해]에 있었던 전투와 강화 교섭 등의 영향으로 현재까지 그 영향을 미치고 있는 양상 임진왜란 시기 웅천[현재 진해]는 일본군에게 중요한 지역으로 인식되어 개전 초기부터 종전 시까지 전쟁의 영향을 크게 받음으로써 당대는 물론 오늘날에도 그 흔적이 많이 남아 있다. 임진왜란 이전부터 웅천은 삼포왜란이 발발하는 등 왜구들의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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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유년(1597) 1월 이후 1598년 종전 시기까지 현재의 창원[진해] 지역에서 벌어진 해전. 정유재란이 발발한 이후 지금의 창원[진해] 지역에서 벌어진 해전은 1597년 6월 19일의 제2차 안골포 해전이 유일하다. 따라서 정유재란 때 진해 지역의 해전은 주로 제2차 안골포 해전을 의미하며, 통제사 원균이 지휘한 해전 중 가장 전과가 뚜렷한 해전으로 평가된다. 정유재란이 시작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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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창원시 진해구에 있는 조선 시대 최초의 개항장. 현재 창원시 진해구에 속한 제포는 조선 초기 최초 개항지의 대표적인 장소로 원래 이름은 내이포(乃而浦)이다. ‘내이포’라는 명칭은 주위에 냉이가 많이 나 있어서 ‘냉이개’로 부르던 것을 한자로 ‘내이포’로 표기하였다가 냉이 ‘제(薺)’자를 써서 ‘제포(薺浦)’란 한자말로 굳어졌다. 제포는 조선 초기 조정의 대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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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 당시 조선 수군의 두 번째 해전으로 1592년 음력 5월 7일 현재의 경상남도 창원시 진해구 풍호동 행암 학개 마을 앞 바다에서 벌어진 해전. 전라좌수사 이순신이 이끈 판옥선 24척과 경상우수사 원균의 판옥선 4척이 합동으로 전투를 벌여 옥포 해전을 승리로 이끈 후 영등포 앞 바다에서 머물러 있던 중 하오 4시쯤 왜선 5척을 발견했다는 척후장의 보고에 따라 이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