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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창원 출신의 무신. 본관은 회산(檜山). 자는 여오(汝五), 호는 청강(晴岡). 아버지는 감예종(甘禮從), 어머니는 박종(朴宗)의 딸로서 반남박씨(潘南朴氏)이며, 형은 감경인(甘景仁)이다. 감경륜은 현재의 경상남도 창원시 소답동에 살았다. 임진왜란 때 왜군의 머리 6급(級)을 베었다. 사후 경상도에서 임진왜란 때의 공에 대해 계(啓)를 올려 면향(免鄕)되고 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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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창원 출신의 무신. 본관은 회산(檜山). 자는 여일(汝一), 호는 관술정(觀術亭), 아버지는 감예종(甘禮從)이며, 어머니는 반남박씨(潘南朴氏)로 박종(朴宗)의 딸이다. 동생은 감경륜(甘景倫)이다. 감경인은 임진왜란 때 의병을 일으켰으며, 1603년(선조 36)에 무과에 급제하여 권관이 되었다. 1606년(선조 39) 도해차관부사과 전계신(全繼信)을 따라 군관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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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창원 출신의 무신. 감문립(甘文立)은 임진왜란 때 활약하였고, 사복(司僕)을 지냈다. 선무원종3등공신(宣武原從三等功臣)에 녹훈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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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창원 지역의 열녀. 공우직은 지금의 경상남도 창원시 북면 감계리 사람이다. 공우직이 병사하자 공우직 처 이씨가 슬픔을 가누지 못해 남편이 죽은 날 목을 매 죽어서 남편과 한 무덤에 묻혔다. 이씨의 열행이 조정에 알려져 정려가 내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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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오를 시조로 하고 노정직을 입향조로 하는 창원시 세거 성씨. 교하는 경기도에 속한 곳으로, 1914년 파주군에 통합되어 현재 경기도 파주시가 되었다. 교하 노씨의 시조는 노수(盧穗)의 아들 노오(盧塢)이다. 노씨의 시조는 노수인데, 그는 중국 범양(范陽) 출신으로 당나라 한림 학사를 지낸 사람이다. 877년(신라 헌강왕 3년) 안록산(安祿山)의 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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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창원 출신의 무신. 본관은 안동(安東). 권탁영(權擢英)의 형이다. 권수영은 조선 선조 때 무과에 급제하여 벼슬이 첨사(僉使)에 올랐다. 임진왜란 때 세운 공으로 선무원종 1등공신에 녹훈되고 승차하여 가선대부(嘉善大夫)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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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창원 출신의 무신. 본관은 안동(安東). 권수영(權秀英)의 아우이고, 노경종(盧景宗)[1555~1625]의 장인이다. 권탁영은 조선 선조 때 무과에 급제하여 벼슬이 훈련정에 이르렀다. 임진왜란 당시 노경종·김홍면(金弘勉)과 함께 소모장(召募將) 이정(李瀞)[1541~1613]의 참모가 되어 전공을 세워 1595년(선조 28) 선무원종공신에 녹훈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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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경상남도 창원 지역에 설치되었던 창고. 조선 후기에 이르면 조세제도가 문란하게 운영되면서 이에 따른 백성들의 피해와 부담이 막대해졌다. 창원 지역에서도 백성들에게 부과되는 요역의 부담과 그 폐단이 심각하였다. 이에 창원부사 정언형(鄭彦衡)이 백성들이 과중한 요역의 부담과 폐단에 시달리는 것을 막고자 설치한 것이 균제고로서, 정언형이 창원부사로 재임 하였던 1784년(정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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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창원 출신의 무신. 본관은 김해(金海). 금산(琴山) 김귀(金龜)의 후손으로 김옥견(金玉堅)의 증손이다. 아버지는 김연종(金連宗), 어머니는 장세권(張世權)의 딸로서 안동장씨(安東張氏)이다. 김개는 현재의 경상남도 창원시 동읍 화양리 화목마을에서 나서 자랐다. 1585년(선조 18) 무과에 급제하여 군기시주부를 거쳐 1591년 장련현감이 되었으며, 임진왜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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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창원 지역으로 낙향한 문신. 본관은 연안(延安). 부인은 김해김씨(金海金氏) 김석공(金錫貢)의 딸이고, 형은 영의정을 지낸 김근사(金謹思)이다. 김경사는 음사로 벼슬에 나가 1521년(중종 16) 나주판관, 1526년 형조정랑이 되었다. 금산군수 등을 거쳐 1545년(인조 1) 성주목사가 되었으며, 그 뒤 나주목사를 지내고 광주목사로 있다가 처 김해김씨를 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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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창원 출신의 문신. 본관은 김해(金海). 금산(琴山) 김귀(金龜)[1426~1485]의 후손이다. 아버지는 김옥견(金玉堅)의 손자인 김난종(金蘭宗)이다. 어머니는 광주김씨(光州金氏)로 감사를 지낸 김연(金緣)의 딸이다. 김계(金洎)[1538~?]는 1538년 창원에서 태어났다. 1567년(명종 22) 사마시에 급제하였고, 1582년(선조 15) 문과에 급제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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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창원 출신의 무신. 본관은 김해(金海). 금산(琴山) 김귀(金龜)[1426~1485]의 후손으로, 할아버지는 김우추(金遇秋), 아버지는 김양후(金亮後)이다. 김곽은 창원시 동읍 화양리에 속한 화목(花木) 사람으로, 1651년(효종 2) 무과에 급제하여 벼슬이 첨사(僉使)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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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창원 지역으로 낙향한 문신. 본관은 김해(金海). 자는 영인(靈人)·희우(希禹), 호는 금산(琴山). 아버지는 별시위(別侍衛)를 지낸 김이형(金利亨)이고, 어머니는 밀양손씨(密陽孫氏)이다. 김귀는 1453년(단종 1) 사마시에 급제하고 1466년 문과에 급제하여 장악원 장악(掌樂院掌樂)으로 있었다. 1469년(예종 1) 사헌부 지평에 이어 군기시 판관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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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창원 출신의 무신. 본관은 김해(金海). 자는 광주(光胄). 금산(琴山) 김귀(金龜)의 후손이다. 할아버지는 김옥견(金玉堅), 아버지는 김택(金澤), 어머니는 보한재(保閑齋) 신숙주(申叔舟)의 손자 신용관(申用灌)의 딸로서 고령신씨(高靈申氏)이다. 김윤종(金胤宗)이 사촌동생이다. 김난종은 현재의 경상남도 창원시 동읍 화양리 화목마을에 살았다. 명종 때 무과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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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창원 출신의 무신. 본관은 상산(商山). 자는 경찬(景纘), 호는 동산(東山). 아버지는 김한(金漢)이고, 어머니는 감찰을 지낸 이옥성(李玉成)의 딸로서 전의이씨(全義李氏)이다. 김명윤은 현재의 경상남도 창원시 동읍 석산리에 살았다. 1583년(선조 16) 19세의 나이로 무과에 급제하여 1584년 사헌부감찰에 이어 선전관이 되었으며, 1585년 훈련부정에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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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와 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김해(金海). 호는 신묵재(愼黙齋). 아들로 김수광(金秀光)이 있다. 김불비는 서울에서 태어났다. 전리총랑(典理總郞)·보문각직제학지교를 거쳐 서해도안무사·성균좨주겸의랑을 지내고 이조판서가 되었다. 묘소는 경상남도 창원시 동읍 금산리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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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창원 출신의 유생. 김상정의 본관은 김해(金海). 자는 덕삼(德三), 호는 곡천(谷川). 금산(琴山) 김귀(金龜)의 후손이다. 아버지는 김이견(金以堅), 어머니는 조수(趙洙)의 딸로서 함안조씨(咸安趙氏)이다. 김상정은 현재의 경상남도 창원시 동읍 화양리 화목마을에 살았다. 어머니가 기이한 태몽을 꾸고 낳았다고 하며, 몸집이 유달리 컸다고 한다. 평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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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창원부사를 지낸 문신. 김세호는 본관이 의성(義城)으로 1690년(숙종 16) 문과에 급제하였다. 1693년(숙종 19) 5월에 창원부사로 부임했다가 9개월을 재직하고 1694년 교체되었다. 같은 해 예문관 검열이 되었다가 봉교를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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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창원 출신의 문신. 본관은 김해(金海). 자는 천장(天章), 호는 환성헌(喚惺軒). 아버지는 이조판서를 지낸 김불비(金不比)이며, 아들은 김석공(金錫貢)이다. 김수광은 현재의 경상남도 창원시 동읍 금산리 금동마을에 살았다. 일찍이 양촌(陽村) 권근(權近) 문하에서 수학했다. 1450년(세종 32) 문과에 급제하여 1461년(세조 7) 예조좌랑이 되었고, 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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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창원 출신의 효부이자 열녀. 김수양 처 이씨는 창원도호부 서쪽 사율리(斜栗里)[현 경상남도 창원시 명곡동] 출신이다. 이씨는 지성으로 시아버지를 받들고 남편인 김수양을 예를 다해 섬겼으나, 김수양이 세상을 뜨자 남편을 따라 죽었다. 김수양 처 이씨의 열행이 조정에 알려져 정려가 내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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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창원 출신의 무신. 본관은 김해(金海). 자는 자고(子高). 아버지는 금산(琴山) 김귀(金龜), 어머니는 판사(判事)를 지낸 김효로(金孝老)의 딸이다. 김옥견은 현재의 경상남도 창원시 동읍 화양리 화목마을에 살았다. 1455년(세조 1) 사어(司禦)로서 세조의 즉위를 도와 정난원종공신(靖亂原從功臣)에 녹훈되었다. 함흥병마도위를 지내고 1504년(연산군 4) 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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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창원 출신의 무신. 본관은 김해(金海). 자는 형숙(亨叔). 금산(琴山) 김귀(金龜)의 후손이다. 아버지는 김관(金灌)이고, 어머니는 충순위(忠順衛)를 지낸 신잠(辛岑)의 딸로서 영산신씨(靈山辛氏)이다. 김우운은 현재의 경상남도 창원시 동읍 화양리 화목마을에 살았다. 임진왜란 때 직장(直長)으로 있으면서 공을 세워 선무원종1등공신에 녹훈되었다. 벼슬은 동지중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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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창원 출신의 유생. 김윤종의 본관은 김해(金海). 자는 계지(繼志)·치도(致道). 호는 유계(柳溪). 금산(琴山) 김귀(金龜)의 후손이다. 할아버지는 김옥견(金玉堅)이고, 아버지는 참봉을 지낸 김혼(金渾)이다. 김난종(金蘭宗)이 사촌형이다. 김윤종은 현재의 경상남도 창원시 동읍 화양리 화목마을에 살았다. 정우당(淨友堂) 김식(金湜)의 문하에서 수학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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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창원 출신의 무신. 본관은 김해(金海). 자는 직보(直甫). 금산(琴山) 김귀(金龜)의 후손이다. 아버지는 김현(金鉉)이고, 어머니는 이명로(李命老)의 딸로서 전의이씨(全義李氏)이다. 아들로 김상정(金尙鼎)이 있다. 김이견은 경상남도 창원시 동읍 화양리 화목마을에 살았다. 1687년(숙종 13) 무과에 급제하여 회령(會寧)의 변수(邊帥)가 되었다. 169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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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창원 출신의 유생. 김진환의 본관은 김해(金海). 호는 무재(無齋). 금산(琴山) 김귀(金龜)의 후손이며 아버지는 김준(金浚)이다. 김진환은 현재의 경상남도 창원시 동읍 화양리 화목마을에 살았다. 1736년(영조 12)년에 여러 경상도 유생들과 더불어 우암(尤庵) 송시열(宋時烈), 동춘당(同春堂) 송준길(宋浚吉)의 문묘(文廟) 배향 문제와 관련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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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창원 출신의 무신. 본관은 상산(商山). 아버지는 목사(牧使)를 지낸 김팽수(金彭壽)이고, 어머니는 송빈(宋霦)의 딸로서 은진송씨(恩津宋氏)이다. 처는 감찰을 지낸 이옥성(李玉成)의 딸로서 전의이씨(全義李氏)이다. 아들로 김명윤(金命胤)이 있다. 김한은 현재의 경상남도 창원시 동읍 석산리에 살았다. 조선 중기 무과에 급제하여 1566년(명종 21) 어란포만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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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로왕을 시조로 하고 각 소종별로 입향조를 달리하는 경상남도 창원시 세거 성씨. 인구수가 가장 많고 우리나라 대표 성씨의 하나인 김해 김씨는 파 갈림이 많기로도 유명하다. 큰 파만 따지더라도 김녕군 휘 목경파(牧卿派), 목사공 휘 준파(樽派), 판도판서 문정공 휘 관파(管派) 등 12개나 되고, 또 각 파마다 다시 파 갈림이 되는 바, 이를테면 판도 판서 문정공 후 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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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창원 출신의 무신. 본관은 상산(商山). 아버지는 부제학을 지낸 김언필(金彦弼)이고, 장인은 남명(南冥) 조식(曺植)이다. 동강(東岡) 김우옹(金宇顒)과 망우당(忘憂堂) 곽재우(郭再祐)가 사위이다. 김행은 현재의 경상남도 창원시 명곡동에 살았다. 출사하여 벼슬이 회령포만호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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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창원 출신의 무신. 본관은 상산(商山). 증조할아버지는 김언필(金彦弼)이며, 아버지는 김수용(金壽鎔)이다. 김홍면은 임진왜란 때 노경종(盧景宗)[1555~1625], 권탁영(權擢英)과 함께 소모장(召募將) 이정(李瀞)[1541~1613]의 참모가 되어 활약하였다. 1603년(선조 36) 무과에 급제하였으며, 벼슬이 훈련부정에 이르렀다. 1595년(선조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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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경상남도 창원 지역에 설치된 행정 단위. 조선 사회에서는 지방 군현제도의 정비 과정에서 면리제도가 등장하여 시행되었다. 창원도호부의 경우에도 각 고을들을 5개의 면(面)으로 분류하였다. 면의 이름은 대개 동서남북의 방위면을 사용하였다. 창원도호부의 5개 면 중의 하나가 남면(南面)이다. 면 아래에는 운(運)을 두었는데, 창원도호부에서는 방(坊)을 운이라고 하였으며 모두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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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경상남도 창원 지역에 설치된 행정 단위. 조선 사회에서는 지방 군현제도의 정비 과정에서 면리제도가 등장하여 시행되었다. 창원도호부의 경우에도 각 고을들을 다섯 개의 면(面)으로 분류하였다. 면의 이름은 대개 동서남북의 방위면을 사용하였다. 창원도호부의 5개 면 중의 하나가 남면(南面)이다. 면 아래에는 운(運)을 두었는데, 창원도호부에서는 방(坊)을 운이라고 하였으며 모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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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경상남도 창원 지역에 설치된 행정 단위. 조선 사회에서는 지방 군현제도의 정비 과정에서 면리제도가 등장하여 시행되었다. 창원도호부의 경우에도 각 고을들을 5개의 면(面)으로 분류하였다. 면의 이름은 대개 동서남북의 방위면을 사용하였다. 창원도호부의 5개 면 중의 하나가 남면(南面)이다. 면 아래에는 운(運)을 두었는데, 창원도호부에서는 방(坊)을 운이라고 하였으며 모두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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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경상남도 창원 지역에 설치된 행정 단위. 창원도호부는 각 고을들을 다섯 개의 면(面)으로 분류하였다. 그 중의 하나가 남면(南面)이다. 그리고 면 아래에는 운(運)을 두었는데, 창원도호부에서는 방(坊)을 운이라고 하였으며, 남면의 다섯 개 운 중의 하나가 도하이운(道下二運)이다. 운 아래에는 리(里)를 두었는데 남면 도하이운에는 5개의 리가 소속되었다. 도하(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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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경상남도 창원 지역에 편성되었던 행정 단위. 조선시대 창원도호부의 고을 행정체계는 5개 면(面)으로 편성되었는데, 그 중 하나가 남면(南面)이었다. 그리고 면 아래의 행정구역으로 운을 두어, 남면(南面) 산하에는 모두 5개의 운이 소속되어 있었다. 운 아래의 행정구역으로는 리(里)를 두었다. 당시 도하일운(道下一運)은 남면 소속의 5개 운 중 하나였으며, 그 아래 4개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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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창원 출신의 무신. 본관은 교하(交河). 자는 효성(孝誠), 호는 명암(明菴). 아버지는 참봉을 지낸 노공석(盧公奭)이고, 어머니는 하씨(河氏)이다. 장인은 권탁영(權擢英)이다. 노경종(盧景宗)[1555~1625]은 일찍이 지산(芝山) 조호익(曺好益)[1545~1609]의 문하에서 배웠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의병을 일으켜 초계(草溪)[현 경남상도 합천]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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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창원 출신의 문신. 노숙동(盧叔仝)[1403~1463]의 본관은 풍천(豊川). 자는 화중(和中), 호는 송재(松齋). 아버지는 노언(盧焉)이다. 어머니는 김해김씨(金海金氏)로 군기시소윤을 지낸 김양귀(金良貴)의 딸이다. 노숙동은 1427년(세종 9) 문과에 급제하여 1435년(세종 17) 감찰을 지냈다. 1443년(세종 25) 응교를 역임하고,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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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창원 출신의 무신. 노형은 현 창원시 명곡동 사람으로 적성현감을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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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창원 지역에 있는 조선 시대의 누각과 정자. 누정(樓亭)은 누각(樓閣)과 정자(亭子)를 함께 일컫는 명칭으로 정루(亭樓)라고도 한다. 일반적으로는 누(樓)·정(亭)·당(堂)·대(臺)·각(閣)·헌(軒) 등을 포괄하는 개념으로 사용되고 있다. 누각은 누관(樓觀)이라고도 하며, 대개 높은 언덕이나 관청 안팎에 많이 지었다. 누각 내부는 온돌방보다 개방된 마루를 위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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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경상남도 창원 지역에 변란에 대비하여 설치되었던 기관. 창원 지역은 지형적으로 바다와 접해 있어 해안선을 이용하여 침략해 올 수 있는 왜구나 외적 등 뜻하지 않은 변란이 일어날 가능성이 큰 지역이어서 대변소(待變所)를 설치·운영하였다. 대변소는 창원 관내인 성산(城山) 마산포(馬山浦) 앞바다에 설치하였는데, 창원도호부 관문에서 8㎞ 거리에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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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창원시 대산면 가술리에 있던 고려시대와 조선시대 역. 대산역이 운용되던 시기는 행정구역상 창원 지역이 주로 김해관할에 있을 때였다. 자여역의 북쪽에 배치되어 있던 대산역 옆에는 대산원이 병치되어 있었으며, 진영을 거쳐 이곳을 지나면 낙동강을 건너 밀양 양동역에 이를 수 있었다. 대산역[일명 태산역]은 경상남도 해안 지역의 동서 교통로를 형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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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경상남도 창원 지역에 편성되었던 행정 단위. 조선시대 창원도호부의 고을 행정체계는 5개 면(面)으로 편성되었는데, 그 중 하나가 동면(東面)이었다. 그리고 면 아래의 행정구역으로 운(運)을 두어, 동면 산하에는 모두 3개의 운이 소속되어 있었으며 운 아래의 행정구역으로는 리(里)를 두었다. 동면(東面) 삼운(三運)은 동면 소속의 3개 운 중 하나였으며 그 아래 8개의 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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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경상남도 창원 지역에 편성되었던 행정 단위. 조선시대 창원도호부의 고을 행정체계는 5개 면(面)으로 편성되었는데, 그 중 하나가 동면(東面)이었다. 그리고 면 아래의 행정구역으로 운(運)을 두어, 동면 산하에는 모두 3개의 운이 소속되어 있었으며, 운 아래의 행정구역으로는 리(里)를 두었다. 동면(東面) 이운(二運)은 동면 소속의 3개 운 중 하나였으며 그 아래 9개의 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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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경상남도 창원 지역에 편성되었던 행정 단위. 조선시대 창원도호부의 고을 행정체계는 5개 면(面)으로 편성되었는데, 그 중 하나가 동면(東面)이었다. 그리고 면 아래의 행정구역으로 운(運)을 두어, 동면 산하에는 모두 3개의 운이 소속되어 있었으며 운 아래의 행정구역으로는 리(里)를 두었다. 동면(東面) 일운(一運)은 동면 소속의 3개 운 중 하나였으며, 그 아래 8개의 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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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창원 출신의 문신. 본관은 남평(南平). 자는 성일(誠一). 아버지는 문응정(文應井)이다. 문행은 생원으로 1580년(선조 13)년에 문과에 급제하여 벼슬이 도사(都事)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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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창원부사를 지낸 무신. 민원중은 본관이 여흥(驪興)으로, 서울에서 태어났다. 1710년(숙종 36) 3월 창원부사로 부임하여 1712년 7월에 교체되었다. 『숙종실록(肅宗實錄)』에 따르면 1718년(숙종 44) 경상좌수사로 있었다. 1712년(숙종 38) 6월 민원중의 선정을 기리는 부사민원중청덕선정비(府使閔遠重淸德善政碑)가 세워졌다. 비는 현재 경상남도 창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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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창원 출신의 효부이자 열녀. 박경천 처 분성 배씨는 곧고 맑은 품성으로 시어머니를 정성껏 봉양하였다. 남편 박경천이 해괴한 병에 걸려 앓게 되자 박경천 처 분성 배씨는 자신이 그 병을 앓게 해 달라고 빌었으나, 남편은 효력도 없이 죽고 말았다. 그러자 배씨는 그날 밤 남편 박경천의 시신을 안고 따라 죽었다. 박경천 처 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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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창원부사를 지낸 무신. 박명훈은 서울에서 태어났다. 1813년(순조 13) 6월에 창원부사로 부임하여 1816년에 교체되었다. 1814년에 창원부사로 재임 중 박명훈을 기리는 대도호부사박후명훈영세불망비(大都護府使朴侯明勳永世不忘碑)가 세워졌다. 비는 현재 경상남도 창원시 용호동 용지공원 안에 보존되어 있으며 비문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새로 부임하여 자리도 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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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창원 출신의 무신. 박무열은 현 창원시 동정동 정계(井界) 사람으로, 임진왜란 때 활약한 공으로 선무원종1등공신에 녹훈되고, 향직에 임명되었다. 벼슬이 수문장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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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창원 출신의 효부이자 열녀. 박문중 처 김씨는 창원 지역 사람이다. 시부모를 극진히 모시어 효부로 칭송이 자자했는데, 남편 박문중이 병에 걸려 죽자 3일 만에 스스로 목을 매어 죽었다. 박문중 처 김씨의 열행이 조정에 알려져 정려가 내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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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창원 출신의 선비. 박신윤의 본관은 밀양(密陽), 자는 덕경(德卿), 호는 우곡(愚谷). 부호군(副護軍)을 지낸 박홍정[1541~1619]의 증손으로, 아버지는 박이경(朴而慶)이다. 어머니는 달성 서씨(達城徐氏)이다. 박신윤은 처음에는 낙빈(洛濱) 이시장(李是樟)[1628~1683]에게 배웠고, 나중에는 허재(虛齋) 신몽삼(辛夢參)[1648~1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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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창원 출신의 효부이자 열녀. 박익천 처 배씨는 지금의 경상남도 창원시 안민동 출신이다. 시부모를 극진히 모시어 효부라고 칭송이 자자했는데, 남편 박익천이 죽자 목을 매어 죽음으로써 절개를 지켰다고 한다. 박익천 처 배씨의 열행이 조정에 알려져 정려가 내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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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창원부사를 지낸 문신. 박홍미의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직재(直哉)·군언(君彦), 호는 관포(灌圃). 처음 이름은 박경립(朴敬立)이다. 박홍미는 1571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1605년(선조 38)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승문원 정자를 거쳐 1611년(광해군 3) 병조좌랑, 1614년 대동찰방을 지냈고 그 후 정언·지평·수찬·교리·헌납 등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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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창원 출신의 무신. 본관은 밀양(密陽). 자는 재숙(再淑), 호는 의와(義窩). 증조 할아버지는 박신윤[1661~1698]이고 아버지는 장례원판결사(掌隷院判決事)를 지낸 박충준(朴忠俊)이다. 어머니는 파평윤씨(坡平尹氏)로 승지를 지낸 윤경수(尹敬守)의 딸이다. 박홍정(朴弘貞)[1541~1619]은 현재의 경상남도 창원시 사화동 사람으로 무과에 급제하여 벼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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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창원부사를 지낸 무신. 백선남은 전라도 김제에서 태어났다. 1636년(인조 14) 2월에 창원부사로 부임하였다. 같은 해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11월 인조를 구하러 남한산성으로 향하던 중 쌍령(雙嶺)에서 진을 치고 힘을 다해 싸우다가 전사하였다. 1637년 10월 백선남이 창원부사로 있으면서 청렴결백하게 공무를 수행한 것을 기리는 대도호부사백후선남청정비(大都護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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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경상남도 창원 지역에 설치된 행정 단위. 창원도호부는 각 고을들을 다섯 개의 면(面)으로 분류하였다. 그 중의 하나가 부내면(府內面)이다. 면 아래에는 운(運)을 두었는데, 창원도호부에서는 방(坊)을 운이라고 하였으며, 부내면의 두 개 운 중의 하나가 이운(二運)이다. 운 아래에는 리(里)를 두었는데, 부내면 이운에는 일곱 개의 리가 소속되었다. 『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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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경상남도 창원 지역에 편성되었던 행정 단위. 조선시대 창원도호부의 고을 행정체계는 5개 면(面)으로 편성되었는데, 그 중 하나가 부내면(府內面)이었다. 그리고 면 아래의 행정구역으로 운(運)을 두어, 부내면(府內面) 산하에는 모두 2개의 운이 소속되어 있었으며, 운 아래의 행정구역으로는 리(里)를 두었다. 부내면 일운은 부내면 소속의 2개 운 중 하나였으며 그 아래 9개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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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경상남도 창원 지역에 설치된 행정 단위. 창원도호부는 각 고을들을 다섯 개의 면(面)으로 분류하였다. 그 중의 하나가 북면(北面)이다. 면 아래에는 운(運)을 두었는데, 창원도호부에서는 방(坊)을 운이라고 하였다. 북면에 속한 세 개의 운 중 하나가 삼운(三運)이다. 운 아래에는 리(里)를 두었는데, 삼운에는 모두 11개의 리가 소속되었다. 『호구총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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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경상남도 창원 지역에 설치된 행정 단위. 창원도호부는 각 고을들을 다섯 개의 면(面)으로 분류하였다. 그 중의 하나가 북면(北面)이다. 면 아래에는 운(運)을 두었는데, 창원도호부에서는 방(坊)을 운이라고 하였다. 북면에 속한 세 개의 운 중 하나가 이운(二運)이다. 그리고 운 아래에는 리(里)를 두었는데 모두 8개의 리가 소속되었다. 『호구총수(戶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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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경상남도 창원 지역에 편성되었던 행정 단위. 조선시대 창원도호부의 고을 행정체계는 5개 면(面)으로 편성되었는데, 그 중 하나가 북면(北面)이었다. 그리고 면 아래의 행정구역으로 운(運)을 두어, 북면(北面) 산하에는 모두 3개의 운이 소속되어 있었으며, 운 아래의 행정구역으로는 리(里)를 두었다. 북면 일운은 북면 소속의 3개 운 중 하나였으며, 그 아래 6개의 리를 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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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창원 지역에서 수령이 국왕을 대신하여 토지의 신과 곡식의 신에게 제사를 지내기 위해 만든 제단. 사직단은 토지의 신인 사(社)에게 제사 드리는 사단(社壇)과 곡식의 신인 직(稷)에게 제사 드리는 직단(稷壇)을 아울러 일컫는 말이다. 나라에 큰 일이 있을 때나 비가 오지 않아 가뭄이 든 때에도 의식을 행하였다. 전통 시대에는 일반적으로 『주례(周禮)』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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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창원도호부 관내에서 실시되었던 곡물대여제도나 기관 또는 그 곡물 저장 및 보관 시설. 사창은 조선시대 각 지방 군현을 중심으로 설치하여 운영한 곡물대여기관이자 제도로서 의창 및 상평창과 함께 3창의 하나이며 한편으로는 그 시설이나 그 시설 관리자의 직임을 의미하기도 한다. 여기서는 그 시설인 창고를 의미하며 『창원부읍지(昌原府邑誌)』에는 창원도호부 관내에 약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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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창원시 팔룡동에 있던 조선시대 포구. 사화(沙火)는 ‘모래벌판’의 한자식 표기이다. 사화(沙火)라는 이름이 붙은 까닭은 이곳이 모래벌판으로 이루어진 해안가 사장(沙場)이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사화포는 지이포의 초입에 해당되는데, 지금은 어디에서도 과거 해안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지만 이러한 지명을 통해 과거 창원의 모습을 그려 볼 수 있다. 실제 창원대로 상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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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창원부사를 지낸 문신. 서영보의 본관은 달성(達成). 자는 경재(景在), 호는 죽석(竹石). 영의정 서종태(徐宗泰)의 고손이며, 좌의정 서명균(徐命均)의 증손이다. 할아버지는 영의정 서지수(徐志修), 아버지는 대제학 서유신(徐有臣)이다. 아들 서기순(徐箕淳)도 뒤에 대제학에 올라 아버지로부터 부자손 3대가 대제학을 지내는 가통을 세웠다. 서영보는 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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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회원구 석전동에 있는 성황신에 제사 지내던 제단. 성황단은 성황신(城隍神)에게 제사를 지내는 단을 일컫는다. 성황단에 세워진 사당(祠堂)을 뜻하는 성황당(城隍堂)·성황사(城隍祠)·성황 신묘(城隍神廟)·성황 신사(城隍神祠) 등과 같은 뜻으로 쓰인다. 성황신은 도성(都城)을 지켜준다는 신으로 각 고을에서 매년 5월 21일에 제사를 지냈으나 차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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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경상남도 창원 지역에 설치되었던 수군 무기 보관 창고. 『창원부읍지(昌原府邑誌)』에 의하면 창원도호부 관내에는 약 10개의 창고가 설치 운영되었는데 수군기고(水軍器庫)는 그 중의 하나이다. 수군기고는 바다와 연안 등지에서 전투와 방어의 역할을 담당하는 수군의 무기를 보관하던 창고로서, 창원도호부에서 서쪽으로 8㎞ 거리에 있던 해창(海倉) 옆에 위치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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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자미를 시조로 하고 안명갑을 입향조로 하는 창원시 세거 성씨. 순흥 안씨의 시조는 안자미(安子美)인데, 고려 신종 때 홍위위 보승 별장을 지내고 신호위 상장군에 추증된 사람이다. 세 아들 안영유(安永儒)[一派]·안영린(安永麟)[二派]·안영화(安永和)[三派]는 순흥 안씨 3파의 파조가 된다. 안씨의 역사상 대표적 인물이며 주자학(朱子學)의 태두인 문성공(文成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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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 경상남도 창원 지역에 설치된 특수 행정구역. 향(鄕)과 소(所) 및 부곡(部曲)은 신라시대로부터 조선 전기까지 존재한 특수한 행정구역이었다. 거주하는 주민의 사회적 신분의 성격에 대하여는 천민으로 보는 견해, 일반 양인으로 보는 견해, 초기에는 천민이었으나 후기에는 양민이 거주하여 혼재한 지역으로 보는 견해 등으로 다양하지만, 일반 군현에 거주하는 지역민에 비해서는 상대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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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창원시 동읍 용전리에 있던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의 역. 신풍역은 조선시대 자여도에 속한 14역 가운데 하나로, 자여도의 서쪽 길이다. 창원도호부에서 동쪽으로 자여역을 잇는 중간 역이며, 안민역에서 남쪽으로 소목고개를 넘어온 길과 합쳐져 자여역으로 이어진다. 신풍역은 경상남도 해안 지역의 동서 교통로를 형성하는 곳으로 창원도호부와 자여역을 연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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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창원시 안민동에 있던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의 역. 안민역은 경상남도 해안 지역의 동서 교통로를 형성하는 자여도(自如道) 예하의 역원으로 행인들의 이동에 편의를 제공하고 국가의 중요 역원으로서 기능을 하기 위해 설치하였다. 자여역의 남쪽 길에 배치된 역이다. 안민역이 있던 자리는 공단과 시가지로 변모하여 원래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다. 안민동은 안민역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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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창원 출신의 무신. 본관은 순흥. 안염(安恬)이 아들이다. 안세억(安世億)은 현재의 경상남도 창원시 퇴촌동에서 출생하였으며, 무과에 급제하여 벼슬이 선전관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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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창원부사를 지낸 무신. 양선수는 1849(헌종 15) 10월에 창원부사로 부임하여 1852년(철종 3) 5월에 교체되었다. 원래는 2년 임기였으나 백성을 잘 다스려 임기 1년을 더하였다. 1857년 3월 양선수의 공덕을 기리는 행대도호부사양후선수휼민영세불망비(行大都護府使梁侯宣洙恤民永世不忘碑)가 세워졌다. 비는 현재 경상남도 창원시 용호동 용지공원 안에 보존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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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창원 지역에서 여제를 지내던 제단. 여제는 제사를 받지 못하는 무주고혼(無主孤魂)이나 역질을 퍼뜨리는 귀신인 여귀(厲鬼)에게 지내는 제사를 말한다. 조선시대에는 서울과 지방의 각 군현에 여단을 두어 역병을 예방했다. 이 여단은 동쪽의 성황단, 서쪽의 사직단과 함께 관아에서 필수적으로 세우는 제단이었다. 여제는 1908년 국가 차원에서 폐지되면서 철저하게 부정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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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경상남도 창원 지역에서 운영되었던 교통·통신 및 숙박 시설. 역은 역마(驛馬)와 역로(驛路)를 관리하고 공무로 지방을 다니는 관리에게 역마와 숙식 등이 제공되었던 곳이다. 창원도호부에는 자여역(自如驛)·신풍역(新豊驛)·근주역(近珠驛)·안민역(安民驛) 등 네 곳의 역이 운영되었다. 원은 지방 관아 근처나 역 주변 및 각 역과의 중간 지역 등에 설치한 숙박시설이다. 창원도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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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창원도호부 관아가 합포성에 있을 때 동헌에 딸려 있던 누정. 연빈루는 1488년(성종 19) 이영분(李永蕡)이 창원부사로 재임할 때 지은 누정으로 지금은 전하지 않는다. 단지 홍귀달(洪貴達)의 『허백정집(虛白亭集)』「연빈루기(燕賓樓記)」에 당시 창원도호부에서 선정을 베풀고 있는 부사를 치하하는 의미로, 새로 지은 누(樓)의 이름을 연빈루라고 지어 준다는 내용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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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창원 지역에서 남편에 대한 정절을 지켜 포상된 여자. 대부분의 열녀들은 남편에 대한 정절을 지키기 위하여 남편이 죽으면 수절하거나 남편을 따라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러한 열녀들의 행적은 멀리는 순장 제도에서 그 연원을 찾을 수 있겠으나, 그보다는 여성을 독립적인 인격체로 인식하지 않고 남성의 예속물이나 종속물로 인식한 것에서 비롯되었다. 즉 유교적 국가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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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경상남도 창원 지역에 설치되었던 곡식 보관 창고. 영송창(迎送倉)이라는 명칭은 고려시대의 영송고(迎送庫)에서 비롯된 것으로 추정되는데, 영송고는 영송도감(迎送都監)에 소속된 관아의 하나로, 사람을 맞이하고 보내는 데 필요한 돈과 물품을 담당하였다. 영송창은 창원도호부 관아에서 손님을 맞이하고 전송하는 데 필요한 경비로 사용될 곡식을 보관한 창고였을 것으로 짐작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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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경상남도 창원 지역에 설치되었던 관청. 영송청(迎送廳)은 창원도호부에서 쇄마(刷馬)의 관리를 맡아보던 건물로 짐작된다. 쇄마란 조선시대 지방의 관아에 갖추어 두었던 말[馬]을 가리킨다. 영송청은 창원도호부 관아의 동쪽에 위치하고 있었으며, 주로 비용을 지불하고 민간의 말을 고용하였다. 『창원부읍지(昌原府邑誌)』에 의하면, 영송청은 1734년(영조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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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창원시 용지동에 있던 저수지. 조선시대 창원도호부에서 남쪽으로 15리에 위치하고 있었던, 물을 가두기 위해 쌓은 제언이다. 이 제언은 둘레가 1,744자이고 수심이 5자였다고 한다. 용지제는 광복 이후까지 한동안 농업용수의 본래적 기능을 일정하게 담당하고 있었으나 창원의 개발과정에서 변화의 계기를 맞게 된다. 특히 1974년 용지제가 위치한 용지동 등이 대규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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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창원시 사화동 운암서원에 소장되어 있는 조선 후기 학자 박신윤의 문집 책판. 우곡 선생 문집 책판은 창원 사화(沙火)에서 우거했던 우곡(愚谷) 박신윤(朴身潤)[1661~1698]이 지은 시문집의 책판이다. 자가 덕경(德卿)이고 본관이 밀성(密城)인 박신윤은 일찍부터 학문에 전념하였으며, 양친을 극진히 모셔 그 일화가 전해지고 있다. 1698년(숙종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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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 경상남도 창원 지역에 설치된 특수 행정구역. 향(鄕)과 소(所) 및 부곡(部曲)은 신라시대로부터 조선 전기까지 존재한 특수한 행정구역이었다. 거주하는 주민의 사회적 신분의 성격에 대하여는 천민으로 보는 견해, 일반 양인으로 보는 견해, 초기에는 천민이었으나 후기에는 양민이 거주하여 혼재한 지역으로 보는 견해 등으로 다양하지만, 일반 군현에 거주하는 지역민에 비하여는 상대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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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경상남도 창원시에 있던 조창(漕倉)을 관리할 목적으로 지은 건물. 유정당(惟正堂)은 창원 지역의 조창을 관리할 목적으로 지은 건물로 여겨진다. 1760년(영조 36)에 조덕상(趙德常)이 작성한 「유정당기문(惟正堂記文)」에 따르면, 조엄(趙曮)이 1758년(영조 34)에 경상도관찰사가 되어 세곡의 보관과 관리 및 운송 등에 따른 그간의 폐해를 시정하려는 강한 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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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경상남도 창원 지역에 설치되었던 육군 무기 보관 창고. 『창원부읍지(昌原府邑誌)』에 의하면 창원도호부 관내에는 약 10개의 창고가 설치 운영되었는데 육군기고(陸軍器庫)도 그 중의 하나였다. 육군기고는 지상에서 전투와 방어의 임무와 역할을 담당하는 육군의 무기를 보관하던 창고로서, 창원도호부의 관아 동쪽에 위치하고 있었다. 창원은 1601년(선조 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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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창원부사를 지낸 문신. 윤우신은 서울에서 태어나 1561년(명종 16) 문과에 급제하였다. 1573년(선조 6) 안악군수에 이어 함흥판관이 되었다. 1581년(선조 14) 창원부사로 있다가 파직되었다. 이 후 영위사(迎慰使), 안주목사, 나주목사를 거쳤다. 1592년 임진왜란 때에는 지중추부사로 급고사(急告使)가 되었으며, 같은 해 호조참판이 되었다. 이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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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창원 출신의 무신. 이덕립(李德立)은 현재의 경상남도 창원시 차룡동에서 출생하였다. 임진왜란 때 활약한 공으로 선무원종2등공신에 녹훈되고, 벼슬이 훈련부정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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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창원 출신의 무신. 본관은 전의(全義). 김명윤의 외삼촌이다. 경상남도 창원시 동읍 석산리에서 태어났다. 이명하(李明河)는 조선 선조 때 무과에 급제하여 1589년(선조 22) 무신(武臣)의 불차채용(不次採用: 관계의 차례를 뛰어넘어 벼슬을 주는 것)에 추천되었고, 창성부사로 재직할 때 백성을 제일로 다스려 특별히 강계부사에 제수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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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창원 출신의 무신. 이숙(李潚)은 창원도호부[현 경상남도 마산시 봉암동] 사람이다. 임진왜란 때 활약한 공으로 선무원종2등공신에 녹훈되었다. 이는 『창원부읍지』에 기록되어 있다. 1602년(선조 35) 이귀(李貴)가 정인홍(鄭仁弘)의 죄악을 아뢴 상소문 속에 '합천군수 이숙이 정인홍이 관의 명령을 거역한 것을 분히 여겨 반민(叛民)이라 꾸짖었더니, 정인홍이 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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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말기 창원부사를 지낸 무신. 이용익은 1871년(고종 8) 평해군수로 나아갔다. 1876년 8월 창원부사로 부임하였다가 1878년 2월 전라좌수사로 옮겨간 후 이듬해 전라좌도수군절도사가 되었다가 1881년 전라도병마절도사가 되었다. 1890년 병조참판을 거쳐 1892년 한성부 판윤이 되었다. 1897년(광무 1) 정2품으로 있으면서 중추원1등의관이 되었다. 18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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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창원부사를 지낸 무신. 이희하는 서울에서 태어났다. 1730년(영조 6) 10월에 창원부사로 부임하여 1733년 2월 공주영장(공주에 설치되었던 충청우영의 수장)으로 옮겨갔다. 1743년 황해병사가 되었다. 1735년(영조 11) 이희하를 기리는 대도호부사이공희하애민선정비(大都護府使李公希夏愛民善政碑)가 세워져 현 경상남도 창원시 용호동 용지공원 안에 보존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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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경상남도 창원 지역에 설치된 자여역을 담당한 종6품 벼슬. 창원도호부에서는 일종의 교통시설인 역(驛) 네 곳과 숙박시설인 원(院) 아홉 곳을 운영하였는데, 그 중 역으로는 자여역(自如驛)·신풍역(新豊驛)·근주역(近珠驛)·안민역(安民驛) 등이 있었다. 역에서는 역마(驛馬)와 역로(驛路)를 관리하고 공무로 지방을 다니는 관리들에게 역마와 숙식 등을 제공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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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창원시 동읍 송정리에 본역을 두었던 고려시대와 조선시대 역로. 자여도는 창원도호부를 중심으로 동쪽의 김해도호부, 서쪽의 함안군, 남쪽의 웅천현, 북쪽의 칠원현에 걸쳐 있는 조선시대의 교통로이다. 역로 개설의 특징은 대체로 자여도의 동서쪽 길은 낙동강 유역의 남쪽 외연을 동서축으로 연결하며, 남쪽 길은 고개를 넘어 해안선을 따라 개설되어 있다. 따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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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창원시 동읍 송정리에 있던 고려시대와 조선시대 역. 자여역은 경상남도 해안 지역의 동서 교통로를 형성하는 자여도의 중심 역원으로, 행인들의 이동에 편의를 제공하고 국가의 중요 역원으로서 기능을 하기 위해 설치하였다. 자여역은 14개의 작은 역을 거느리며 창원 지역을 중심으로 동쪽의 김해시, 북쪽의 창녕군·밀양시, 서쪽의 마산시·함안군, 남쪽의 진해시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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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여마을에 있었다고 알려진 자여장은 현재 사라지고 없다. 이 때문에 자여장의 모습은 옛 기록과 주민들의 기억 속 이야기로만 전해지고 있다. 『창원부읍지』에 의하면 자여장은 창원도호부에서 동쪽으로 20리 거리에 있었다고 한다. 자여역이 있던 송정리에 있었다는 이야기도 전해지나, 봉산마을 사람들에 따르면 자여장은 봉산마을과 송정마을의 경계선을 이루는 작은 도랑가를 따라서 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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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창원 출신의 열녀. 장귀 처 양씨는 지금의 경상남도 창원시 사화동에서 태어났다. 남편 장귀가 죽어서 장사를 지내려 하는데, 장귀 처 양씨가 목을 매어 죽어 남편과 한 무덤에 묻혔다. 장귀 처 양씨의 열행이 조정에 알려져 정려가 내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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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창원부사를 지낸 무신. 장붕익의 본관은 인동(仁同). 자는 운거(雲擧), 호는 우재(憂齋). 할아버지는 교리를 지낸 장차주(張次周)이다. 장붕익은 1646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1699년(숙종 25) 무과에 급제하여 선전관 등을 거쳐 1702년 11월에 창원부사로 부임하였다. 재임 중 백성들에게 은혜와 위엄을 베풀어 아전들과 백성들의 존경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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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창원 출신의 무신. 장수산(張守山)은 창원도호부[현 경상남도 마산시 합성동] 사람이다. 임진왜란 때 활약한 공으로 선무원종3등공신에 녹훈되고, 벼슬이 수문장에 이르렀다. 이와 같은 내용이 『창원부읍지』에 기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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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창원 지역에서 5일마다 열리는 사설 시장. 조선시대의 장시는 어용상(御用商)이나 시전(市廛)과 구별되는 시장으로, 별다른 시설이 없는 일정한 장소에 상인들이나 인근 주민들이 모여 서로 교역하는 곳을 말한다. 이들 장시는 대부분 고장의 치소(治所)가 있었던 읍성 주변이나 역(驛) 주변, 그 외 사람들의 왕래가 많은 교통의 요지에서 열렸다. 주로 5일을 주기로 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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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창원 출신의 무신. 정자미(丁自美)의 본관은 창원. 자는 명숙(明淑). 아버지는 정석년(丁惜年)이고, 어머니는 동래정씨(東萊鄭氏) 정동수(鄭東秀)의 딸이다. 정자미는 현재의 경상남도 창원시 사화동 사람으로, 용력(勇力)이 남달리 뛰어났다. 임진왜란 때 활약한 공으로 선무원종 2등공신에 녹훈되고, 벼슬이 훈련부정에 이르렀다. 경상남도 창원시 사화동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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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창원부사를 지낸 무신. 자는 사욱(士郁), 본관은 동래(東萊)이다. 세자익위사세마(世子翊衛司洗馬) 정석(鄭錫)의 후손으로, 고조는 훈련원주부(訓鍊院主簿) 정세우(鄭世佑)이고, 증조는 참봉(參奉) 정후동(鄭厚東)이며, 조부는 정홍의(鄭弘毅)이다. 부친은 부사(府使) 정택승(鄭宅升)이고, 모친은 현감(縣監) 조윤풍(曺允豊)의 딸이다. 생부 변지(邊地) 정택항(鄭宅恒)과 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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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창원 출신의 문신이자 효자. 조광익(曺光益)[1537~1578]의 본관은 창녕(昌寧). 자는 가회(可晦), 호는 죽와(竹窩)·취원당(翠遠堂). 아버지는 조윤신(曺允慎)[1511~1571]이고, 어머니는 인동장씨(仁同張氏)[?~1572]로 선략장군(宣略將軍) 장중우(張仲羽)의 딸이다. 경상남도 창원시 북면 지개리에서 다섯 아들 가운데 둘째로 태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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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왕조 시기 경상남도 창원 지역의 역사. 창원은 본래 굴자군(屈自郡)인데 신라 경덕왕이 의안군(義安郡)로 고쳤고, 지금의 마산 지역인 회원현(會原縣)은 본래 골포현(骨浦縣)인데 경덕왕이 합포(合浦)로 고쳐서 의안군(義安郡)의 영현(領縣)으로 삼았다. 1018년(현종 9) 두 현을 모두 금주(金州) 관하에 붙였다가 뒤에 각기 감무(監務)를 두었고, 1282년(충렬왕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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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원은 조선시대에 들어 그 읍격이 승격하였다. 창원부로 시작하여 1415년(태종 15)에 창원도호부로 개칭하였다가 임진왜란을 겪은 후인 1601년(선조 34)에 창원대도호부로 승격하였다. 이는 조선 후기에 창원이 행정·군사의 중심 지역이자 경상남도 일대의 수도로 그 위상이 올랐음을 의미한다. 문묘의 전패(殿牌)가 분실된 사건을 계기로 9년 남짓 창원현으로 격하된 적이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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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창원 출신의 선비. 조윤신(曺允慎)[1511~1571]의 본관은 창녕(昌寧). 자는 성중(誠仲), 호는 고암(古巖)·노재(魯齋). 아버지는 함안군수를 지낸 조효연(曺孝淵)[1486~1530]이고, 어머니는 진성 이씨(眞城李氏)[1487~1565]로 강원감사를 지낸 송재(松齋) 이우(李堣)[1469~1517]의 딸이다. 조윤신은 일찍이 과거 공부를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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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경상남도 창원 지역에 설치되었던 세곡 보관 창고. 조선 건국 이후 전국에 있는 해운 교통의 요지에는 세곡을 서울로 수송하기 위한 조창(漕倉)이 설치되었다. 조창은 조운창(漕運倉)의 줄인 말로, 조선시대 지방의 각 고을에서 국가에 바쳐야 할 세금으로 징수한 곡식 등 세곡(稅穀)을 서울로 운송하기 위하여 해안이나 강변에 설치한 세금 보관 창고이다. 조선시대 전국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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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창원 출신의 문신. 조치우(曺致虞)[1459~1529]의 본관은 창녕(昌寧). 자는 순경(舜卿), 호는 정우당(淨友堂). 아버지는 영암군수를 지낸 조말손(曺末孫)이다. 부인은 창원박씨(昌原朴氏)이다. 조치우는 1494년(성종 25) 과거에 급제하여 1495년(연산군 1) 예문관 검열로 있었고, 1498년(연산군 4)에 사간원 정언이 되었으며, 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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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창원 출신의 문신. 조호익(曺好益)[1545~1609]의 본관은 창녕(昌寧). 자는 사우(士友), 호는 지산(芝山). 아버지는 조윤신[1511~1571]이고, 어머니는 인동장씨(仁同張氏)[?~1572]로 선략장군(宣略將軍) 장중우(張仲羽)의 딸이다. 다섯 아들 중 넷째로 태어났다. 조호익은 1576년(선조 9)에 경상도도사 최황(崔滉)이 군적(軍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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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창원 출신의 문신. 조효연(曺孝淵)[1486~1530]의 본관은 창녕(昌寧). 자는 언부(彦溥), 호는 위재(韋齋). 아버지는 사옹원정(司饔院正)을 지낸 조치우(曺致虞)[1459~1529]이고, 어머니는 창원박씨(昌原朴氏)로 부장(部將)을 지낸 박혁손(朴赫孫)의 딸이다. 조효연은 1519년(중종 14) 문과에 급제하여 1522년(중종 17)에 승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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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창원 지역에 전해오는 설화 중에 지명에서 생성된 이야기. 지명 설화는 지명과 더불어서 전해 오는 이야기이다. 지명 전설은 지명 유래담인 것처럼 알려져 있으나 지명을 지칭하는 우리말을 활용해서 생성된 것이다. 창원 지역의 지명 전설도 창원의 각 지역의 지명을 뜻하는 우리말에서 생성된 것이다. 지명 전설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지명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한다. 왜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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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창원시 성산구 상북동에 있었던 조선 시대 포구. 지귀포는 지금의 상북동 지귀 상가 부근에 있었다. 『경상도 속찬 지리지(慶尙道續撰地理誌)』 등의 기록에 “지이포에 염전이 있었다.”라는 기록으로 보아 이 일대가 밀물 때 바닷물이 밀려오는 조간대이었음을 알 수 있다. 『경상도 속찬 지리지』에 “염전[鹽盆]이 부의 남쪽 지이포에 있다.”라는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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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경상남도 창원 지역에 설치되었던 진휼미 보관 창고. 『창원부읍지(昌原府邑誌)』에 의하면, 창원도호부 관내에는 약 10개의 창고가 설치·운영되었는데, 진창(賑倉)도 그 중의 하나로서 창원도호부의 관아 동쪽에 위치하고 있었다. 농업을 주요 산업으로 하는 조선 사회에서는 생산량의 감소와 냉해 등 자연재해로 인하여 그 해의 작황이 좋지 않아 식량 사정이 나쁠 때 어려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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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창원 출신의 효부이자 열녀. 진흥은 처 강씨는 창원도호부 봉곡[현 경상남도 창원시 봉곡동] 사람이다. 강씨는 시부모에 대한 효성이 지극하여 근동에서 효부로 칭찬이 자자하였다. 어느 날 남편 진흥은이 병으로 자리에 눕자 백방으로 수소문해 약을 구해 먹이고 간호하였으나 차도가 없었다. 남편을 살려 달라고 정성을 다해 하늘에다 빌기도 하고 심지어는 자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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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경상남도 창원 지역에 설치되었던 차역들의 급료 보관 창고. 『창원부읍지(昌原府邑誌)』에 의하면, 창원도호부 관내에는 약 10개의 창고가 설치 운영되었는데 차역고(差役庫)도 그 중의 하나이다. 차역고는 창원도호부의 관아 동쪽에 위치하고 있었다. 차역고는 차역창(差役倉)이라고도 하였다. 차역(差役)이란 관아에서 일을 시키는 노동자들을 가리킨다. 차역창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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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 경상남도 창원 지역에 설치된 특수 행정구역. 향(鄕)과 소(所) 및 부곡(部曲)은 신라시대로부터 조선 전기까지 존재한 특수한 행정구역이었다. 거주하는 주민의 사회적 신분의 성격에 대하여는 천민으로 보는 견해와 일반 양인으로 보는 견해 및 초기에는 천민이었으나 후기에는 양민이 거주하여 혼재한 지역으로 보는 견해 등으로 다양하지만 일반 군현에 거주하는 지역민에 비하여는 상대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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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창원 도호부 관내에 설치되었던 물품 저장 또는 보관 시설. 창고는 창원 도호부가 행정이나 군사 업무의 수행 과정에 필요한 곡물 및 무기류 등의 보관과 관리를 위해 관내에 설치·운영한 시설이다. 『창원 부읍지(昌原府邑誌)』에 의하면 당시 창원 도호부 관내에는 약 10개가량의 창고가 있었던 것으로 전한다. 창원 도호부 관내의 창고들을 설치 목적에 따라 분류하면 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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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계룡을 시조로 하는 경상남도 창원시 세거성씨. 조씨(曺氏)의 본관은 문헌에 10여 본이 전해지고 있지만, 모두 창녕조씨의 분파라는 것이 통설이어서 오늘날에는 사실상 창녕 단본으로 통한다. 창녕조씨의 시조는 조계룡(曺繼龍)으로, 신라 제26대 진평왕의 사위로 알려져 있다. 그의 어머니는 한림학사 이광옥의 딸 예향(禮香)인데 창녕현 고암촌(鼓岩村) 태생이다.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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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창원시 의창동에 있는 조선 전기 창원도호부의 치소(治所) 외곽을 옹위하던 성. 세조 때 창원읍성을 쌓는 문제가 제기되었을 때, 창원은 절제사 군영과 아주 가깝고 절제사 군영의 성곽이 넓기 때문에 따로 읍성을 쌓을 필요가 없다는 의견이 있어 결론이 나지 않았다. 창원의 경우 당시 군자감 창고는 군영의 성곽 안에 있었으나 의창은 부에 있었으므로 군영의 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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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충준을 시조로 하고 황응견을 입향조로 하는 창원시 세거 성씨. 창원 황씨의 시조는 황충준(黃忠俊)으로, 고려 성종 때 문하시중의 벼슬에 오른 사람이다. 창원 황씨는 본관을 같이 하면서도 계보를 달리하는 3파가 있다. 황충준을 시조로 하는 시중 공파(侍中公派)[혹은 土黃이라 함] 외에, 고려 충정왕 때 문하평장사에 오른 황석기(黃石奇)를 시조로 하는 공희 공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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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32년(순조 32) 창원대도호부사 김이종이 편찬한 읍지. 『창원부읍지』는 당시 창원대도호부사이던 김이종(金彛鍾)이 조정의 명을 받아 저술하였다. 1700년대 후반에 편찬되었던 『여지도서(輿地圖書)』의 내용을 새롭게 보충하기 위해 편찬을 기획했을 것으로 생각된다. 총 20책으로 경상도 관할의 71읍 읍지가 모두 수록되어 있다. 『창원부읍지』는 서울대학교 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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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창원부사를 지낸 무신. 채학영은 1848년(헌종 14) 창원부사로 부임하였다. 1849년 윤4월 수군을 모아 이름을 불러 점검하는 일과 관련하여 계(啓)를 받고 파직되었다. 1849년 4월 채학영을 기리는 ‘행대도호부사채공학영영세불망비(行大都護府使蔡公學永永世不忘碑)’가 세워졌는데, 현재 경상남도 창원시 용호동 용지공원 안에 보존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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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창원 출신의 무신. 최숙손(崔叔孫)의 본관은 통천(通川). 자는 문약. 아버지는 좌의정을 지낸 최윤덕(崔潤德)[1376~1445]이다. 맏아들로 태어났다. 최숙손은 무과에 급제하여 1422년(세종 4) 직장(直長)으로 있었고, 1427년(세종 9) 사직(司直)으로 있었으며, 1433년(세종 15) 절충상호군이 되었다. 1435년(세종 17) 중추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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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경상남도 창원 지역에 설치되었던 물품 보관 창고. 『창원부읍지(昌原府邑誌)』에 의하면 창원도호부 관내에는 약 10개의 창고가 설치 운영되었는데, 해창도 그 중의 하나이다. 해창은 창원도호부 내의 곡식 등 물품을 보관한 창고로서 창원도호부에서 서쪽으로 8㎞ 거리에 위치하고 있었다. 나라에 바치는 세곡의 보관과 수송을 위한 조창(漕倉) 곁에 위치하고 있었다. 조선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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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원시 북면 외감리와 감계리 일대에서 우거(寓居)하였던 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양천(陽川). 자는 유악(維嶽)·수옹(壽翁). 할아버지는 이조판서를 지낸 허자(許磁)[1496~1551]이고, 아버지는 강호처사(江湖處士) 허강(許橿)[1520~1592]이다. 어머니는 진주강씨(晉州姜氏)[1523~1603]로 대제학을 지낸 김안국(金安國)[1478~1543]의 외손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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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창원 지역에서 우거(寓居)하였던 문신. 본관은 양천(陽川). 자는 문보(文父)·화보(和甫), 호는 미수(眉叟)·대령노인(臺嶺老人). 증조부는 이조판서 허자(許磁)[1496~1551]이고, 할아버지는 강호처사 허강(許橿)[1520~1592]이다. 아버지는 포천현감 허교(許喬)[1567~1632]이며, 어머니는 나주임씨(羅州林氏)로 백호(白湖) 임제(林悌)[1549~15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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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창원 지역에 우거(寓居)하였던 문신. 본관은 양천(陽川). 미수(眉叟) 허목(許穆)[1595~1682]의 일족인 것으로 보이나 가계에 대해 알려진 사실이 거의 없다. 허호(許䎁)는 1689년(숙종 15)에 사직서 참봉이 되었고, 1692년(숙종 18) 상서원 직장이 되었다. 1693년(숙종 19)에 전생서 주부가 되었다가 사헌부 감찰이 되었고, 1694년(숙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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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말기 창원부사를 지낸 무신. 홍길모는 1851년(철종 2) 평산부사, 1854년 철원부사가 되었다. 1857년 창원부사로 부임하였다가 1859년 전라좌도수군절도사가 되었다. 같은 해 5월 신병을 이유로 파직하기를 청하여 교체되었다. 창원부사로 재직 중 창원 지역 백성들을 위하여 자신의 돈 5천 냥을 내놓아 1천 가구의 백성들을 구제하였다. 또한 군포징수를 바로잡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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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창원대도호부사를 지낸 문신. 황경중(黃敬中)[1569~1630]의 본관은 창원(昌原). 자는 직지(直之), 호는 오촌(梧村). 창원황씨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영춘현감(永春縣監)을 지낸 황수(黃琇)[?~1617]이고, 어머니는 고성이씨(固城李氏)[?~1618]로 좌랑(佐郞)을 지낸 이준(李浚)의 딸이다. 황근중[1560~1633]의 아우이다. 황경중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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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문신. 황근중(黃謹中)[1560~1633]의 본관은 창원(昌原). 자는 일지(一之), 호는 월담(月潭). 창원황씨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영춘현감(永春縣監)을 지낸 황수(黃琇)[?~1617]이고, 어머니는 고성이씨(固城李南氏)[?~1618]로 좌랑(佐郞)을 지낸 이준(李浚)의 딸이다. 황경중(黃敬中)[1569~1630]의 형이며, 조선 현종 때 영의정을 지낸 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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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창원 출신의 충신. 황시헌의 본관은 창원(昌原). 자는 도부(道夫). 아버지는 황집생(黃執生)이다. 황시헌은 조선 중기 창원도호부 정계(井界)에 살았다. 1636년(인조 14) 병자호란으로 인조가 남한산성으로 피신하자 황시헌은 당시 창원의 부리(府吏)로서 국왕을 구원하기 위하여 창원부사 백선남(白善男)을 수행하여 군사를 거느리고 서북쪽으로 달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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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창원 출신의 무신. 황형(黃衡)[1459~1520]의 본관은 창원(昌原). 자는 언평(彦平). 창원황씨의 후손으로 증조할아버지는 고려시대 문하시랑 동중서문하평장사를 지낸 회산군(檜山君) 황석기[?~1364]이고, 할아버지는 대흥현감을 지낸 황선경(黃善慶)이며, 아버지는 선공감정을 지낸 황예헌(黃禮軒)이다. 어머니는 의령남씨(宜寧南氏)로 사헌부 감찰을 지낸 남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