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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200352
한자 骨浦國
영어의미역 Golpo Country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지명/고지명
지역 경상남도 창원시
시대 고대/초기 국가 시대/삼한
집필자 남재우

[정의]

삼한시기 경상남도 창원 지역에 있었던 나라.

[개설]

흔히들 한국의 고대사회를 고구려, 백제, 신라를 중심으로 하는 삼국시대로 이해하고 있지만, 서력기원을 전후로 한 시기부터 한강의 남쪽 지역에는 많은 나라들이 자리 잡고 있었다. 『삼국지(三國志)』에 의하면 지금의 경기도·충청도·전라남도 지역에는 마한이, 낙동강을 경계로 동쪽에는 진한이, 서남부 지역에는 변한이 있었다. 마한·진한·변한의 각 지역에는 다양한 이름의 나라들이 있었다.

마한에는 백제국을 비롯한 54개국이, 진한에는 사로국을 비롯한 12개국이, 변한에는 구야국[현 김해]과 안야국[현 함안]을 비롯한 12개의 나라가 있었다. 이와 같은 삼한의 여러 나라 외에도 다른 나라들이 『삼국사기(三國史記)』와 『삼국유사(三國遺事)』에 등장하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포상팔국(浦上八國)인데, 그 중의 하나가 골포국(骨浦國)이다.

[위치]

골포국은 『삼국유사』에 합포[현 마산]로 지명 비정되고 있다. 그러나 유적과 유물의 분포로 보아 고대사회 마산·창원 지역에서 정치 집단이 형성되었을 가능성이 있는 지역은 창원 성산 패총 일대의 창원시 지역, 다호리를 중심으로 하는 창원시 동읍 일대와 마산시의 진동만 일대로 볼 수 있다. 따라서 합포마산만(馬山灣)을 가리키므로 마산의 중심지보다는 마산만을 끼고 있는 창원 지역일 가능성이 높다. 이 지역에는 청동기시대 이후부터 가야 시기까지의 유적이 골고루 분포되어 있다. 유적으로는 고인돌과 청동기시대 주거지·조개더미·고분군·수전지를 포함한 가음정동 유적, 창원 성산 패총, 창원 내동 패총, 창원 삼동동 고분군, 성산 외동 패총 등이 조사되었다.

[형성 시기]

골포국의 형성 시기는 창원분지 인근 지역에 위치한 창원시 동읍다호리 유적에서 출토된 목관묘나 성운경(星雲鏡)·오수전(五銖錢)으로 보아 A.D. 1세기에는 다호리에서 정치 집단이 형성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골포국이 위치했던 창원분지의 경우 골포국의 중요한 유적으로 보이는 창원 성산 패총을 통해서 골포국의 형성 시기를 추정할 수 있다. 창원 성산 패총에서는 청동기시대에서 철기시대, 삼국시대에 이르는 문화층이 확인되었다.

그 중 청동기시대는 그 상한이 전기에까지 이를 가능성을 제시하였지만 당시의 유구는 검출되지 않았다. 철기시대는 조개더미와 야철지가 형성된 시기로서 창원 성산 패총의 중심적 내용을 이룬다. 야철지의 조성 시기는 바로 위층에서 출토된 오수전으로 보아 서력기원을 전후한 시기로 추정된다. 하지만 현재까지의 조사 결과에서 다호리 지역과 비교해 볼 때 유적과 유물의 측면에서 뒤떨어지므로 골포국의 형성은 늦어도 2세기 대 정도로 볼 수 있을 것이다.

[교역]

골포국마산만을 끼고 있는 바닷가에 자리 잡은 나라였다. 당시 대부분의 정치 집단들은 중국이나 인근 지역과의 교역을 통하여 발전하고 있었다. 특히 위만조선이 멸망한 이 후 만들어진 낙랑군은 중국 한(漢)의 한반도 진출을 위한 전진 기지였으므로, 한나라는 낙랑을 통하여 한반도를 통제하고자 하였다. 낙랑은 한반도 통제의 수단으로 중국의 선진 문물을 가지고 각 정치 집단의 지배 세력을 회유하였다. 골포국 또한 자연지리적 조건으로 보아 교역을 통하여 성장 발전한 것으로 보인다. 골포국을 비롯한 경상남도 지역에 자리 잡은 정치 집단들은 낙랑이나 왜와의 교역이 활발하였다.

『삼국지』 위서동이전에 “변한의 나라에서는 철이 생산되는데 한(漢)·예(濊)·왜인(倭人)들이 모두 와서 사간다”, “왜와 가까운 지역이므로 남녀가 문신을 하기도 한다.” 등의 기록이 보이는데, 이는 중국과 왜와의 교류가 활발했음을 보여주는 단서이다.

골포국으로 추정되는 창원 지역에도 중국, 일본과의 교류를 보여 주는 유물이 조사되고 있다. 창원 성산 패총에서는 중국 한나라에서 주조하기 시작한 오수전과 일본계의 토기들이 출토되었으며, 도계동에서는 일본계인 철로 된 창, 삼동동에서는 일본계인 청동 화살촉이 조사되기도 하였다. 이로 보아 골포국은 남해안과 같은 교통로를 따라 중국의 군현이나 일본과 교역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수입품은 주로 의책·한경·칠기·유리제 장신구 등과 같은 신분과 부를 상징하는 물건이었을 것이고, 수출품은 철·포·생구(生口) 등이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철은 창원 성산 패총에서 철을 제련·생산하는 야철지가 조사됨으로써 철이 생산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것은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창원도호부 토산조에 불모산(佛母山)에서 철이 생산된다는 기록으로 방증된다. 따라서 창원 지역의 정치 집단인 골포국은 철을 한군현이나 왜, 그리고 인근 한(韓)의 여러 나라에 수출하였을 것으로 보인다.

[멸망]

골포국의 멸망은 포상팔국이 벌인 전쟁이 계기가 되었다. 포상팔국은 삼한 시기에 변한 지역에서 자리 잡고 있었으며, 바닷가와 접해 있던 여덟 개의 나라였다. 확인이 가능한 나라는 다섯 나라인데 지금의 위치로 비정이 가능한 것이 창원의 골포국을 비롯하여 사천의 사물국, 고성의 고사포국, 칠원의 칠포국이다. 이외에 보라국이 있지만 위치는 알 수 없다.

포상팔국은 해상에 위치하고 있었기 때문에 교역권의 확보나 농경지 확보를 위하여 김해 지역 혹은 함안 지역과 전쟁을 벌였으나 신라의 지원으로 패배하고 말았다. 이에 따라 골포국은 더 이상 발전하지 못하고 쇠퇴의 길을 걸을 수밖에 없자 또 다른 가야의 나라로 변화했다. 그것이 『일본서기』에 등장하는 가야의 탁순국(卓淳國)이었던 것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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