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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200360
한자 石器時代
영어의미역 Stone Age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경상남도 창원시
시대 선사/석기
집필자 이성주

[정의]

경상남도 창원 지역에서 역사상 금속기 제작 이전에 돌을 이용하여 도구를 만들어 썼던 시대.

[개설]

덴마크의 고고학자 톰센(C. J. Thomsen)은 1836년 박물관 안내 책자를 저술하면서 선사 시대 인류 문화의 발전 단계를 도구의 재질을 기준으로 하여 석기 시대, 청동기 시대, 철기 시대로 구분하였다. 이 후 영국의 러벅(J. Lubbock)은 석기시대를 뗀석기를 썼던 구석기 시대와 간석기를 주로 사용했던 신석기 시대로 구분하여 지금 우리가 사용하는 고고학적 시대 구분법이 완성되었다.

[문화 내용]

구석기 시대는 인류사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시대로 수렵·채집을 하며 이동 생활을 영위하였다. 사람 과로 분류될 수 있는 인류가 동부 아프리카에 처음 등장한 것은 지금으로부터 약 700만 년 전부터 400만 년 전 사이의 일이다. 그리고 조금 더 진화한 인류가 자갈돌을 깨트려 원시적인 석기를 만들어 쓰기 시작한 것은 250만 년 전의 일인데, 이로부터 약 1만 년 전까지가 구석기 시대에 해당한다. 이 기간 중에 인류는 10만년을 주기로 빙하기와 간빙기가 교대되는 전 지구적 환경 변화에 적응하면서 현대인으로 진화하여 왔다.

빙하기가 끝나고 후빙기가 시작되면서 기후가 따뜻해지자 몇몇 지역에서는 독자적으로 농경 생활이 시작된다. 농경으로의 전환은 단순한 생업 경제의 변화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복잡한 사회 문화 변동을 수반하게 된다. 농경 생활이 신석기 시대의 시작을 말해주는 기준이지만, 이때부터 간석기와 토기가 본격적으로 제작되었기에 이 세 가지가 신석기 문화를 대표하는 문화 요소이다. 이때부터 사람들은 마을을 이루고 살았으며, 이렇게 형성된 마을공동체 안에서는 새로운 사회 조직이 나타나게 되었다.

[변천]

구석기 시대는 보통 전기·중기·후기로 구분된다. 최초의 구석기는 자갈돌을 깨트려 날을 만든 부정형의 몸돌 석기였다. 다음에 오는 석기 문화는 아슐리안 공작으로 아프리카와 유럽의 전기 구석기 시대를 대표한다. 주먹 도끼라고 부르는 특징적인 석기가 포함되며 커다란 다용도의 몸돌 석기를 주로 사용하였다. 중기 구석기 시대에는 훨씬 정교해진 박편 석기를 사용하던 단계이며, 석기 제작에서 2차 가공이 훨씬 늘어나고 용도 별로 상당히 유형화된 석기를 제작·사용하였다. 후기 구석기 시대에는 현생 인류가 출현하여 발전시킨 돌날 기법을 기초로 하여 극도로 정제된 형태의 전문화된 석기를 제작하여 사용하였다.

북반구를 중심으로 후빙기에 접어들자 전문적인 채집 집단이 등장하여 정주 취락을 이루기 시작한다. 이들은 나무에 끼워 쓰는 극히 소형의 돌날 석기를 제작하여 썼는데, 농경 생활이 시작되기 전까지 이 단계의 문화를 중석기 문화라고 부른다.

우리나라에서는 농경의 개시보다 토기의 사용을 기준으로 신석기 시대 시작을 정의한다. 그래서 신석기 시대의 편년도 토기의 변천을 기준으로 하게 된다. 우리나라의 신석기 시대를 고 토기 문화기, 조기, 전기, 중기, 후기로 편년한다면 대체로 조기 이전에는 채집을 주로 하였고 집단의 규모도 작았다. 하지만 전기에 접어들면서 일부 집단이 소규모 농경을 시작하게 되었고, 후기로 가면서 신석기 시대의 주민들은 더욱 농경에 의존하는 생활을 하게 되었다.

[특징]

창원 지역에는 석기 시대의 유적이 그리 많지 않다. 특히 구석기 시대 유적이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 본래 이 시대에 사람이 살지 않아 유적의 형성이 없었던 것은 아니고, 지표에는 잘 드러나지 않는 충적층 하부에 잔존해 있을 것으로 보인다. 낙동강으로 유입되는 소 지류 주변에 삭박되지 않은 고 토양층에서는 구석기 시대 유적이 발견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신석기 시대 유적으로는 창원 지역에서 패총과 주거지가 발견된 바 있다. 창원시 동읍 합산리 패총주남 저수지 호안에 위치한 담수 패총으로 신석기 패총으로는 드문 사례이다. 빗살무늬 토기 조각이 채집되어 신석기 시대에 형성된 것으로 파악되었다. 진해시 안골동의 해안 계곡부 산 사면에 위치한 안골 패총에서는 신석기 시대 말기의 빗살무늬 토기 파편이 발견되었고, 진해시 수도동에 위치한 수도 패총에서도 신석기 시대 빗살무늬 토기 편과 마제 석부가 채집되었다.

창원 진해시 남양동 웅동만의 해안에 면한 곡부의 완사면에서 신석기 시대 마을이 조사되었다. 신석기 시대 유구로는 움집 6기를 포함하여 구덩이[竪穴] 7기, 집석 유구 1기가 발견되었다. 움집의 평면형은 대체로 원형에 속하고 집의 바닥에서는 빗살무늬 토기 편과 함께 석부, 고석 등 많은 수의 석기가 채집되었다. 수혈과 집석 유구들은 자갈돌이 피열되어 있거나 유기질 층이 깔려 있는 것으로 보아 생업 활동이나 의례 행위가 빈번히 이루어졌던 것으로 보인다. 유적에서 출토된 신석기 시대 토기 편으로 보아 신석기 시대 중·후기의 마을로 보인다.

창원 분지북면 일대의 곡저면과 동읍대산면 일대의 충적층이 형성되기 시작할 즈음에 신석기 시대 사람들의 활동으로 곳곳에 문화층이 형성되었을 것이다. 이웃한 창녕 비봉리 유적에서 확인된 신석기인의 생업은 채집, 수렵, 어로를 중심으로 하고 있어서 이와 비슷한 환경적인 조건을 지닌 동읍·대산면 일대에서도 신석기 시대 채집민의 문화가 발견될 것으로 기대 된다. 또 신석기 시대에는 농사도 지었지만 해양 자원을 집중적으로 이용하였으므로, 진해에서 마산에 걸치는 해안 지대에서 아직 확인되지 않은 패총과 마을들이 추가적으로 확인될 가능성이 크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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