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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200688
한자 東山先生實記
영어의미역 Literary Collection of Master Dongsan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기록 유산
유형 문헌/전적
지역 경상남도 창원시 의창구 동읍 석산리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최정용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시문집
관련인물 김규석|허전|이원조
저자 김명윤
간행연도/일시 1866년경연표보기
권수 1권
표제 東山先生實記
소장처 도봉서원
소장처 주소 경상남도 창원시 동읍 석산리 432-1 지도보기

[정의]

1866년에 간행된 조선 중기 문신 김명윤이 경상남도 창원 지역에서 머물며 지은 시문집.

[개설]

김명윤(金命胤)[1565~1609]은 부사 김한의 아들로 김해부 북문 답곡리에서 태어났다. 6세에 『효경(孝經)』을 읽고, 9세에 한림 유윤에게 나아가 『소학(小學)』을 배웠는데 충과 효에 대한 이해가 깊었다. 19세 되던 1583년(선조 16) 3월 문과에 급제하고, 이듬해 처음으로 현직 벼슬을 하여 사헌부감찰이 되었다가 선전관으로 승진하였다. 이 후 훈련부정·인동부사를 역임하였다.

1589년(선조 22) 김명윤창원부 동쪽 도산리[현 경상남도 창원시 동읍 석산리]로 이사하여 정자를 세우고 동산(東山)이라 하였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김명윤은 파주에서 매복 작전을 써서 여러 차례에 걸쳐 많은 왜군을 사로잡았고, 그 공으로 전마(戰馬)와 궁검(弓劍)을 하사받았다.

1594년(선조 27) 김명윤은 충주목사로 임명 받았는데, 이는 전란 중 군사 요충지가 된 충주에 무신을 목사로 임명하여 지역의 안정을 도모하려는 정책에서 나온 것이다. 그러던 중 1597년에 정유재란이 일어나 성이 포위당하자, 김명윤은 몸소 앞장서 독전하여 적장을 죽이고 승리하였다. 공을 인정받아 이듬해에 당상관인 통정대부에 올랐다. 이 후 여러 벼슬을 거쳤으며, 1609년(광해군 1) 45세의 나이로 죽었는다.

[편찬/발간경위]

『동산선생실기』로 표제된 문집이 처음 간행된 시점은 명확하지 않지만 1866년(고종 3) 이전에 행장과 서문 등이 완성되었고, 1866년에 후손인 김규석이 발문을 지은 것으로 보아 대략 1866년경으로 추정하고 있다. 두 번째의 간행은 1976년에 국역판으로 출간되었으며, 2002년에는 세 번째로 증보판이 간행되었다.

[서지적 상황]

『동산선생실기』김명윤의 덕행을 추모하기 위하여 세운 경상남도 창원시 동읍 석산리에 있는 도봉서원에 소장되어 있으며, 관리는 상산김씨 종중에서 하고 있다.

[구성/내용]

『동산선생실기』는 동산공실기 서(序)·동산선생 세계(世系)·연보·시·서(書)·기(記)와, 부록으로 「반교문(頒敎文)」·「가장(家狀)」·「묘갈명」·「도봉사봉안문」·「상향축문」·「상량문」·「승호고유문」·「승호후 봉안문」·「승호후 상향문」·「숙사재(肅事齋) 시」·「숙사재 기」·「숙사재 중수기」·「숙사재 서」·「숙사재 지」·「별사봉안문」·행장·「실기후지(實記後識)」·「실기발(實記跋)」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서문은 허전과 이원조가 서술하였고, 발문은 김규석이 작성하였다. 김명윤은 「동산정기(東山亭記)」에서 부친이 별세한 후 외로움이 심해져 3년상을 마치고 김해부 답곡리에서 외할아버지와 외숙이 살고 있는 창원부의 동쪽 도산리[현재의 동읍 석산리]로 이거하였음을 밝히고 있다. 그리고 도산의 동편에 정자를 세우고 회산과 도산의 동쪽에 위치하므로 편호를 동산(東山)이라 하였다 한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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