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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201534
한자 音樂
영어의미역 Music
분야 문화·교육/문화·예술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경상남도 창원시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박현수

[정의]

경상남도 창원 지역에서 목소리나 악기를 소재로 박자·선율 등을 일정한 법칙과 형식으로 종합하여 사상과 감정을 나타내는 시간 예술.

[개설]

마산, 창원, 진해의 3개 도시를 통합한 창원시의 탄생은 역사적·지리적·문화적 측면에서 매우 의미가 깊다. 마산의 문화, 진해의 항만·물류, 창원의 산업 단지를 기반으로 한 동북아 거점 도시로 성장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하며 문화 예술계도 한걸음 더 성장할 수 있다는 것이다. 2010년 7월 1일 마산, 창원, 진해의 3개 도시가 통합이 되어 새로운 창원으로 출발이 되면서 창원의 음악도 각기 새로운 특색을 가지며 활동하는 동시에 시립 단체들은 통합을 이루어 더 큰 꿈을 이루기에 이르렀다.

[변천]

2010년 7월 1일 3개시가 통합이 되기 전 까지 각 시별로 활동을 해 왔고 통합이 되고 나서도 시립 단체들을 제외한 모든 민간 단체와 개인은 계속 그 지역에서 활동을 해 오고 있다.

1. 옛 마산시

1) 1901~1940년

일반적으로 우리나라에 서양 음악이 유입된 것은 기독교의 전래와 함께였다. 마산의 음악도 1901년 문창 교회가 세워지면서 안란 목사를 중심으로 음악 감상회를 열면서 시작이 되었다. 동요 작곡가였던 이일래는 1938년 자신의 동요곡을 엮은 『조선 동요 작곡집』을 출판하였으며 1949년에는 김춘수 대본에 윤이상이 작곡한 창작 음악극 「마의 태자」, 「백합 공주」를 공연하였다. 또 다른 작곡가 이상근의 작곡 발표회도 그 해의 일이었다.

2) 1950년대

6·25 전쟁의 발발과 전세에 의해 남쪽인 마산으로 많은 음악인들이 모여 들어 활동을 하였는데 홍지유, 조두남, 김중건, 이안드레아, 한동훈, 홍난수 등이었다. 1954년 1월 재마 동인 음악회가 국제 극장에서 첫 문을 열었다. 1954년 3월 비원 다방에 만들어진 고전 음악 감상실에서 레코드 콘서트라는 음악 감상회를 가졌다.

1955년 12월 9일 마산 문인 협회 주최의 ‘시민의 밤’ 음악 연주회가 있었으며 1955년 12월 조두남 문하생 피아노 연주회가 열려 마산 음악 교육 활동의 선도적인 구실을 하였다.

1956년의 주요 음악회는 3월에 제37회 3·1절 기념 경축 소문화제, 이승만 대통령 탄신 기념 경축 문화제, 6월에 바리톤 김대근의 제15회 독창회, 부산 합창단 대연주회 등이었는데 이상의 음악회 장소는 모두 국제 극장[후에 강남 극장]이었다. 1958년의 대표적인 마산 음악은 바리톤 김대근과 김석준의 독창회였으며, 1959년은 8월에 마산 문화원 주최의 하프 음악의 밤, 10월에 해군 군악대 특별 연주회, 10월에 제1회 정영혜 독창회, 제1회 전정자 독창회 등이 열렸다.

1950년대는 지역 음악인과 외지 음악인들의 화합된 활동을 통해 전쟁의 시름에 휩싸인 시민들에게 위안을 주었을 뿐만 아니라 정서를 한층 드높였다. 그리고 서울 수복으로 서울 지역 음악인들이 떠난 후 조두남을 중심으로 결성된 음악가 협회가 마산 음악의 활력을 불어넣는데 열과 성을 다하였다.

3) 1960년대

1962년에는 마산 음악의 연주 활동 단체의 하나로 마산 합창단이 3월에 이종억, 고봉선, 이수인, 이종은의 지휘 체제로 창립이 되었다. 4월에는 신신 음악실에서 마산 일보 주최의 우리 가곡과 가요의 밤, 육군 군의 학교 주최의 마산 합창단 위문 음악회, 대광 예식장에서 임마뉴엘 합창단의 가곡의 밤이 열렸다. 그리고 5월에 제일 극장에서 무대를 연 마산 합창단 주최의 5·16 실내 음악회와 신신 음악실에서의 5·16 1주년 기념 음악회 등이 1962년의 상반기 중요 음악회였다.

4) 1970년대

1973년에는 마산 지역에 전문 음악인을 배출하는 경남 대학 음악교육과가 개설이 되어 마산 음악의 발전에 도화선이 되었다. 그리고 마산에서 이루어진 1975년 2월 마산 가톨릭 문화원에서의 마산 실내악단 창단은 악단 운동의 본격적인 출발을 의미한다. 실내악 운동으로 출발한 이 악단은 후일 마산의 관현악 운동의 원류가 되었다.

1975년의 마산 음악계에 2권의 서적이 출간되었다. 하나는 이일래의 『조선 동요 작곡집』의 출판이며 또 하나는 조두남의 수상집 『선구자』의 출판이다. 1976년 5월에는 안종배 지휘의 지역 최초 2관 편성 관현악과 이근화 지휘의 합창은 특히 주목을 받았다. 그리고 11월에 마산 교육 대학의 갈마 음악회에서도 임정기 지휘의 현악 합주와 전정자 지휘에 의한 마산 교대 합창단의 열성이 돋보였다. 대학에서의 음악 활동이 후일의 마산 음악에 많은 기여가 될 것으로 희망적인 조짐을 보였다.

1978년 들어 마산 음악계에 가장 중요한 사실은 마산 대학이 음악과를 개설한 것이었다. 이미 5년 전에 음악 교육과를 개설한 경남 대학과 더불어 마산 대학 음악과는 마산 음악계에 중추적 역할을 맡게 되었다. 이는 실로 마산 음악의 풍요로운 미래를 전망할 수 있는 일이었다.

5) 1980년대

1980년 지휘자 오호걸을 중심으로 경남 대학 음악 교육과 졸업생이 주축이 된 마산 관악 합주단이 창단이 된다. 1983년에는 마산 음악에 획기적인 행사가 열렸다. 다름 아닌 경남 대학교 오페라단이 펼친 마스카니의 오페라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의 공연이었다. 경상남도 전역을 통틀어 이 공연이 지역 대학인들에 의한 오페라 공연으로서는 효시가 되었으며 이것으로 마산 지역에서의 오페라 운동의 발전 가능성을 능히 가늠할 수 있었다.

마산 시립 교향악단의 창단은 1984년도의 마산 음악에 가장 큰 일이었다. 마산 시립 교향악단이 6월 29일 경남 대학교 완월 강당에서 창단식을 겸한 기념 연주회가 있었다. 상임 지휘자 안종배, 부지휘자 박현수, 단무장 신동영, 악장 김기원으로 출발한 마산 시립 교향약단은 그 첫해에 특별 연주회 1회, 정기 연주회 1회, 지역 음악 학도들을 위한 청소년 협주곡의 밤 등 활발한 연주 활동으로 시민들로부터 호응과 기대를 모았다. 1984년 이근화 지휘의 경남 대학교 오라토리오 「천지창조」 공연으로 마산 지역을 위시한 경상남도의 음악계에 활력을 불어넣게 되었다.

이렇듯 여러 면에서 마산 음악의 1984년은 도약대를 마련했지만 손실도 있었다. 작곡가로서 우리 가곡사를 빛냈을 뿐만 아니라 향토 음악계에도 큰 공헌을 했던 조두남이 73세를 일기로 타계하였다. 1951년 이래 마산에 머물면서 많은 후진을 양성했는데 특히 피아노 지도에 대한 열성이 대단하여 숱한 문하생들을 배출했다.

1985년 성악 분야에서 전문 음악인들을 단원으로 한 마산 합창단의 창단과 이근화의 지휘로 경남 대학 음악과의 헨델의 오라토리오 「메시아」 공연, 이계희, 황영일 2인 연주회 등으로 괄목할만한 성과를 거두었다.

한편 마산 실내악단 창단 지휘자로 악단 운동에 열성을 바쳤던 윤병구가 영면하였다. 마산 지역 악계에 큰 아쉬움을 남긴 채 그는 향년 44세의 일기를 마감했다. 1989년 마산은 드디어 시립 합창단을 보유하게 되었다. 그러나 재정의 뒷받침이 미약하여 전도를 걱정해야만 했다. 마산시 어머니 합창단의 정기 연주회는 비록 아마추어 단체이기는 하나 정기 연주회를 통해 합창의 대중화 운동을 성실히 수행했다.

이계희와 요시노 미도리의 2인 음악회가 열렸다. 1989년에는 경남 작곡가 협회 주최의 창작 가곡의 밤, 김봉천의 창작 뮤지컬 「합포만의 노래」로 창작 음악 운동이 활발했다.

6) 1990년대

1990년도에 들어서면서 마산 시립 교향악단이 교향악 축제가 열리는 예술의 전당 무대에 서기 시작한다. 마산 시립 교향악단의 이름을 전국에 알리기 시작하지만 추경 재원이 어렵게 되어 단원들에 대한 기본적인 수당조차 지급되지 못하는 운영상의 허점이 드러나기도 했다. 이러한 사정은 마산 시립 합창단의 경우에도 다를 바 없었다. 1993년 창신 전문대학에서 음악과를 개설하게 되고 경남 대학교 음악 교육과는 학과 개설 20주년을 맞이하여 기념 음악회를 개최하게 된다. 1995년 합포만 현대 음악제는 조두남 음악을 재조명하는 내용이 충실한 지역 음악 세미나를 개최하였다.

7) 2000~2010년

2000년 마산 시립 교향악단이 이동신 지휘자의 영입으로 조직 정비와 함께 새로운 씨앗을 뿌린 해였다. 마산 시립 합창단은 지휘자의 공백이 장기간 계속되면서 부지휘자 체제로 정기 연주회를 비롯한 각종 연주회를 가졌지만 지휘자 공백을 채울 만큼의 역량을 보여주지는 못했다. 마산 청소년 관현악단과 마산 쳄버 오케스트라가 꾸준한 연주력 향상을 보이기도 하였다. 2002년은 창작 분분의 합포만 현대 음악제에서 실내 창작곡들이 대거 선을 보였으며 경남 대학교 음악과의 피아노 이경미와 이소진, 소프라노 강미자, 바이얼린 차문호 교수 등이 왕성한 연주활동을 보였다.

2003년 마산 음악계에 가장 큰 이슈 중 하나는 마산 시립 교향악단 오디션 파문이다. 2002년 연말 기존 단원들을 대상으로 치러진 오디션 결과에 대해 오디션 탈락 단원들이 부당성을 제기하면서 시작된 이 사태는 이후 단원 복직을 주장하는 노조와 불가로 맞서는 시의 갈등으로 커졌다. 2003년 7월 양쪽이 합의를 하면서 매듭지어졌지만 음악계 전체 분위기를 침체시켰으며, 사태 해결 후에도 일회적이라는 현행 오디션 제도 자체의 근본적인 문제점은 그대로 여서, 오디션 사태 재발 방지를 위한 제도 개선 연구라는 과제를 남기기도 했다. 2003년은 음악회가 가장 많이 열리는 가을에 태풍 매미로 인하여 연기 또는 취소, 축소되어 12월에 송년음악회와 더불어 연말행사를 풍성하게 하기도 하였다.

조두남의 친일 논란으로 ‘조두남 기념 음악관’은 2005년 6월 마산 음악관으로 명칭이 변경되어 개관이 된다. 2007년에는 각 단체들이 클래식 음악의 저변 확대를 위하여 '찾아가는 음악회'가 많았던 한 해였다. 2008년에는 마산 예술계에 큰 경사가 있는 해였다. 바로 1,182석 규모의 대극장과 485석 규모의 소극장 기능을 가지고 있는 3·15 아트센터가 2008년 5월 20일 개관을 하여 마산 시민들에게 좋은 공연을 선사할 수 있게 되어 지역 문화 예술의 발전에 더욱 박차를 가하게 되었다.

2010년 빅 이벤트 중의 하나로 세계적인 프랑크푸르트 방송 교향악단의 내한 공연이 3·15아트센터에서 열려 많은 시민들이 찾았다.

2. 진해

1) 8·15 해방 전

1905년 11월 8일 통영에서 온 최한주가 진해시 덕산동 소재 반춘업 사랑방에서 첫 예배를 드리면서 경화 교회가 시작되었다. 진해의 서양 음악은 경화 교회의 교회 음악으로부터 출발되었다. 그리고 진해의 합창 음악 출발은 1943년 11월 24일 경화교회 이용실 외 17명으로 구성된 성가대 활동이다.

2) 8·15 해방 후

1946년 서울에서 해안 경비대 군악대가 조직이 되어 있다가 11월 해안 경비대가 진해로 옮겨짐에 따라 진해에서 해군 군악대로 출발을 하게 된다. 당시의 해군 군악대는 우리나라 전체를 통틀어서 유일무이한 합주단이었으며 음악 수준이나 연주 내용도 괄목할 만 하였다.

이후 해군 군악대의 질적 향상을 위해 1949년 4월 해군 군악 학교를 설치하여 교육하였다. 이처럼 해군 군악 학교는 수준 높은 양질의 교육을 통하여 음악의 전문 인력을 끊임없이 양성하였는데 당시 오케스트라 하나 없는 양악의 불모지였던 우리나라 음악사적 상황을 고려할 때 해군 군악대의 음악사적 의미는 실로 지대하였다고 인정된다.

3) 1950년대~1960년대

진해의 최초 음악 감상회는 1957년 태양 다방에서 이루어졌으며 현 흑백 다방의 전신인 카르멘 다방에서도 이루어졌다. 이후 유명한 음악 다방으로 자리매김된 흑백 다방에서는 조두남, 나운영 등의 음악 해설로 월 1회 음악 감상회를 가졌으며 인근 마산 음악인들까지 모이는 음악인들의 만남의 장소가 되었다.

1960년대 들어 해마다 군항제 행사의 일원으로 전국 학생 음악 경연 대회를 개최하였으며 이 행사는 지금도 꾸준히 개최하여 오고 있다.

4) 1970년대~1980년대

1970년 한국 음악 협회 진해시 지부 총회에서 새 지부장이 이동명이 된 후 1973년 이정용, 1974년 이근우 등이 지부장을 맡으며 군항제 행사의 일원인 전국 학생 음악 경연 대회를 열었다. 1974년 봄 진해 여자 중학교 김술근 교사의 노력으로 현악 합주단이 창단되었다. 1975년 해군 군악대 연주가 오호걸 대위의 지휘로 4월 20일 오후 중원 로타리에서 있었으며 인근 지역인 마산의 오케스트라 태동과 발전에도 오호걸 대위가 영향을 끼치게 되었다.

1976년 6월에는 진해시 어머니 합창단이 창단 발표회를 하며 합창 음악을 전파하기 시작하였다. 1985년 진해시 어머니 합창단이 약 2년간 활동을 중단하고 있을 때 이를 안타깝게 여기던 진해 지역의 음악인들과 시 관계자들의 노력으로 11월 진해 시립 여성 합창단의 창단발표회가 열렸다. 이후 이 합창단은 혼성으로 개편되어 진해 시립 합창단으로 운영되고 있다.

5) 1990년대

1992년 3월경에 대학을 갓 졸업한 바이올리니스트 손봉준을 중심으로 진해 쳄버 오케스트라[지휘 이종헌]가 창단이 되어 진해 지역 합주 발전에 초석이 되었다.

1993년 4월 1일 진해 시민과 예술인들의 오랜 숙원이었던 규모는 작지만 395석 규모의 진해 시민 회관이 개관이 되며 진해 지역 문화 예술 발전에 청신호가 열렸으며 진해의 음악 문화 발전에 불을 지피는 계기가 되었다.

3. 창원

1) 1985년 이전

1976년 경상남도 직할 창원 출장소가 설치되고, 1980년 18개 행정동으로 창원시가 생겨났다. 이러한 연유로 창원 음악의 역사는 타 도시에 비해 짧은 편이나, 30년도 채 안 되는 기간에 타 시도를 뛰어 넘는 그야말로 괄목할 만한 성장을 보이며 오늘에 이른다. 1982년 창원 어머니 합창단이 창단되어 활동을 하다 1985년 창원 여성 합창단으로 승격되어 창원시 최초의 음악 문화 단체가 되었다.

2) 1986~1900년

1986년 한국 음악 협회 창원 지부가 결성되어 음악회를 주최하고, 저명 음악가를 초청하여 연주회를 여는 등 창원의 음악 문화 발전을 위해 체계적이며 구체적인 활동을 시작하였다[지부장 전정자, 부지부장 신용철·박현수]. 또한 이 해는 창원 음악 협회의 창원 시민의 날 기념 축하 음악회를 시작으로 창원 대학 관악 합주단의 연주, 청아 합창단[전 민정 합창단]의 연주회 등 관악과 합창이 선두 역할을 하였으며, 젊은 성악가인 유영성과 김성중 등의 열정어린 무대가 빛나는 한 해였다.

1987년은 의미 있는 한 해였다. KBS 창원 방송 총국 새 사옥을 마련하고 1,800석 규모의 다목적 KBS 창원홀을 개관하였다. 다목적 KBS 창원홀은 개관 기념으로 열린 KBS 교향악단의 연주를 시작으로 창원 뿐만 아니라 인근 마산과 진해의 예술인들을 위한 좋은 공연장이 되었다. 1987년 실내악단인 아카데미 신포니에타가 창단되면서 실내악 운동에 선구적인 역할을 하였다. 아카데미 신포니에타는 이후에 창원 교향악단, 즉 오늘날의 창원 시립 교향악단으로 발전되는 계기가 되기도 하였다.

1988년은 올림픽의 해로 세계적인 음악가나 단체들의 질 높은 공연을 지방에서도 감상할 수 있었던 해였다. 모스크바 볼쇼이 합창단의 공연과 루드밀라 남 독창회, 세계적 금관 5중주단인 아르방 금관 5중주단의 연주, 한동일의 피아노 독주회, 파리 나무 십자가 합창단의 초청 연주 등이 감동을 주었다. 또한 창원 대학교 음악과 정기 연주회, 한일 고교생 취주악단 교환 연주회, 창원시 여성 합창단 정기 연주회, 나래 합창단, 해바라기 합창단, 샹그리라 합창단 등 지역 단체들의 활동도 왕성하였다.

1989년은 창원 금관 앙상블과 창원 교향악단의 창단이 눈에 띈다. 그리고 한국 작곡가 협회 경남 지부가 결성되어 창작 음악 발전의 모태가 되었다. 1990년 1월 창원시 여성 합창단이 창원 시립 합창단으로 이름을 바꾸어 활동을 시작하였다. 개인 독주회[공누이]와 독창회[이혜연]의 활동도 돋보였다. 창원 필 하모닉 예술단이 창단됨으로써 기악 분야의 튼튼한 기둥 역할을 담당하였다.

3) 1991~1995년

1991년 창원시는 창원 시립 교향악단, 창원 시립 합창단, 창원 시립 소년 소녀 합창단, 창원 시립 무용단 등 4개의 예술 단체를 묶어 창원 시립 예술단으로 출범시켰다. 1991년도에 가장 큰 성과라 할 수 있는 것은 경남 오페라단의 창단이다. 또한 창원 관악 합주단이 창단되어 현악의 창원 필하모닉 쳄버 오케스트라와 더불어 기악 단체의 발전에 지대한 공을 끼쳤다. 음악협회의 활동이 왕성해지기 시작했고, 여기에 더하여 KBS 창원 어린이 합창단과 창원 시립 소년 소녀 합창단 등이 활동을 하면서 어린이 합창이 자리를 잡기 시작하였다.

1992년은 공단 도시의 특성을 가지고 있는 지역적인 성격을 살려 기업체 순회 연주회가 시작되었다. 경남 오페라단의 베르디 오페라 「춘희」 창단 공연이 성공적으로 열려 이 지역에 오페라 문화의 전망을 밝게 하였다. 영·호남 합창단 발표회는 지역감정을 해소하는 데 큰 역할을 하였다. 창원 필하모닉 쳄버 오케스트라가 꾸준히 활동을 했으며, 창원 관악 합주단이 창원 윈드 오케스트라로 이름을 바꾸어 여름 콘서트 등 활발한 활동을 보였다.

1993년은 창원 시립 교향악단이 ‘1993 전국 교향악 축제’에 참가하여 호평을 얻었으며, 이후 16회 이상의 연주를 통해 다양한 활동을 펼쳐 시립 교향악단의 면모를 보여 주었다. 창원 시립 합창단은 약 10여회의 연주회를 개최하였다. 경남 오페라단이 「카르멘」을 공연하였고 창원 필하모닉, 창원 윈드 오케스트라, 창원 합창 연합회, KBS 창원 어린이 합창단, 해바라기 합창단, 경남 작곡가 협회의 창작 가곡 발표회 등이 열리면서 양적인 면과 질적인 면에서 한층 더 발전한 한 해였다.

1994년 창원 시립 교향악단은 70여 명에서 90여 명으로 3관 편성을 이루었고, 창원 윈드 오케스트라의 활동으로 창원 관현악은 풍성함을 맛보았다. 합창 음악은 창원 시립 합창단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오페라 활동도 경남 오페라단의 「토스카」와 창원 대학교의 개교 25주년 기념공연인 「사랑의 묘약」이 공연됨으로써 창원 지역에서도 오페라가 자리매김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었다. 또 창원 필하모닉, 창원 금관 앙상블, 현울림 합주단 등 실내악이 왕성한 활동을 보인 한 해였다.

1995년은 광복 50주년으로 초대형 기획물들이 쏟아져 물량으로는 최고의 한 해였으며, 각 단체들의 활동도 매우 왕성하였다. 창원시는 용지 공원에 노천 무대를 만들어 야외에서 자연스럽게 음악을 접할 수 있게 하여 음악의 대중화에 크나큰 역할을 하였다. 소비자들에게 감사하는 의미로 기업 고객 사은 음악회가 줄을 이었는데 쌍용 그룹이 코리안 심포니와 함께 한 사랑의 음악 여행, 서광 모드의 황금의 테너들 +1, 호남 정유와 수원 시립 교향악단의 클래식 콘서트, 대우 증권의 고객 사은 신년 음악회, 농협 경남 지역 본부창원 시립 교향악단의 늘푸른 음악회, 하나 은행의 하나 자연 사랑 늘푸른 음악회 등이 그 주역들이다.

여기에 더하여 경남 오페라단의 제4회 공연 「리골레토」가 공연되며 안정기에 접어들었고, 창원 윈드 앙상블과 창원 필하모닉 등이 장애인을 위한 음악회·병원 음악회 등을 개최하면서 소외 계층에게도 눈을 돌리기 시작한 한 해였다. 창원 시립 소년 소녀 합창단은 제주 국제 관악제 초청으로 제주에서 3회의 연주를 가져 이후 이 단체가 성장하는 데 큰 역할을 하였으며, 지역 작곡가들에게 위촉된 창작 동요곡을 선보여 발전된 모습을 보여 주었다.

4) 1996~2000년

1996년에는 야외 음악회가 많이 열려 문화·예술·환경의 활성화 차원에서 아주 바람직한 일로 받아들여졌다. 창원 시청 앞 광장에서 시민의 날 기념 야외 음악회, 창원시 종합 운동장에서 KBS 열린 음악회, 그리고 창원 시립 교향악단·창원 시립 합창단·창원 시립 소년 소녀 합창단·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 등이 여름 시즌 매주 토요일 저녁 용지 공원에서 공연을 가져 유럽의 ‘프롬나드 콘서트’를 표방한 토요 상설 음악회가 정착되었다.

1996년 경상남도와 경남 음악 협회가 『경남 탄생 100주년 기념 경남 음악사』를 편찬한 것은 비단 창원 지역뿐만 아니라 경상남도 지방의 음악 역사를 재조명할 수 있는 기회가 되어 음악인에게 환영을 받았다. 또 창작 분야에서는 창작인들의 축제 한마당인 합포만 현대 음악제가 창원 대학교 콘서트홀에서 열려 현대 음악의 다양성과 국내외 유명 창작곡들을 접할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되었다. 창원 시립 예술단은 찾아가는 작은 음악회를 기획하여 시민들에게 알차고 잘 꾸며진 음악회라는 찬사를 받았다.

2000년 4월 25일 창원시에는 1,720석의 대규모 공연장인 성산 아트홀이 개관되었다. 이에 따라 비단 예술인뿐만 아니라 창원 시민들에게도 양질의 공연을 접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져 창원의 음악계에 큰 전환점이 되는 시기이기도 하였다. 2000년 경남 예술단의 한 단체로 창단된 경남 팝스 오케스트라는 창원 지역뿐만 아니라 경상남도 내 전역을 돌며 알기 쉽고 친숙한 곡들로 시민들과 함께 하는 음악회로 인정을 받았으며, 매회 공연장을 가득 메운 시민들의 사랑을 꾸준히 받고 있다. 실내악 분야에서는 경남 유스 오케스트라, 창원 필하모닉, 아방가르드 앙상블, 뚜띠 앙상블, 트루베르 챔버 오케스트라 등이 왕성한 활동을 하여 실내악 부분의 전성기를 맞이하였다

5) 2001년~현재

창원 시립 교향악단은 2002년 4월 상임 단체로 새롭게 출발하였다. 상임 지휘자도 국내 최상급의 장윤성[2003~2007], 정치용[2008~현재]이 위촉되어 중앙의 어느 악단과도 실력이 뒤떨어지지 않는 단체로 사랑받고 있다.

경남 오페라단은 2000년 「라 트라비아타」, 2001년 「라보엠」, 2002년 「사랑의 묘약」, 2003년 「피가로의 결혼」, 2004년 「라 토스카」, 2005년 「창작 오페라 논개」, 2006년 「나비부인」, 2007년 「오르페오와 에우리디체」, 2008년 「세빌리아의 이발사」, 2009년 「카르멘」, 2010년 「리골레토」, 2011년 「투란도트」, 2012년 「춘향」 등을 공연하여 지역민들에게 접하기 어려운 오페라의 무대를 한껏 보여줌으로써 창원 음악계의 중심에 우뚝 섰다.

합창 분야에서는 창원 시립 합창단이 2002년 4월 상임 단체가 되었다. 창원 시립 합창단은 정기 연주회를 비롯하여 아파트 음악회, 오페라 공연 참가, 각종 기념 행사, 경남·부산·울산·타 시도 교류 공연, 찾아가는 음악회 등 활발한 활동을 보이며 창원이 합창 음악의 메카로 성장하는 데 중심 역할을 하였다. 경남 합창 연합회, 프리모 앙상블, 프리마 앙상블, 레이디스 싱어스 등의 활약도 성악 부분 발전에 큰 힘이 되었다.

창작 분야에서는 경남 작곡가 협회가 꾸준히 활동해 왔으며, 창원 작곡가 협회가 발족되어 창원 지역을 중심으로 창작 활동에 새로운 바람을 일으켰다. 합포만 현대 음악제, 아방가르드 앙상블 단체의 창작곡 연주 등과 한국 예총 창원 지부에서 주관한 지역 기업에 사가(社歌) 만들어 주기 운동 등은 창작 분야가 새롭게 탈바꿈하는 계기가 되었다. 특히 2008년에는 경남 메세나 협회가 출범하여 ‘기업과 문화 예술의 행복한 동행’을 기치로 내걸고 척박한 문화 예술계의 토양에 단비와 같은 역할을 하였다.

4. 통합 창원

1) 2010년 통합 이후

행정상으로는 3개 도시가 통합이 되었지만 3개 도시의 예총이나 음악 협회 등은 3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헤게모니 문제로 통합이 되지 않고 따로 행사를 하며 한 지붕 세가족의 형태로 운영이 되고 있다. 관계자들이 몇 번의 모임을 가져 통합을 시도하였지만 아직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통합의 당위성은 알기에 계속 노력을 하고 있는 상황이며 각 시별로 음악 단체들은 활발히 예전처럼 활동을 하고 있다.

2011년에는 국외로부터 반가운 수상 소식들이 속속 날아들어 왔다. 2011년 7월에는 창원 출신 소프라노 서선영이 차이콥스키 국제 콩쿠르에서 1위를 차지하고, 역시 창원 출신 소프라노 김지숙은 이탈리아 벨리나 국제 콩쿠르 3위에 입상했다. 또 11월에는 마산 출신 소프라노 고은영이 러시아 미아스니코바 국제 콩쿠르에서 1위에 입상하는 등 창원을 음악의 영재들을 길러내는 도시로 부각시켜 놓았다.

청소년 합창 분야에서도 마산 제일 여자 고등학교마산 제일 여자 중학교, 창원 명지 여고 등이 전국 및 국제 대회에서 상위에 입상하며 경남 학생 합창의 저력을 다시 한번 전국에 각인시켰다. 이런 성과에 힘입어 2011년 11월에는 일본 최고의 합창 실력을 가진 오카자키 고등학교와의 교류 음악회를 성사시키기도 했다.

시립 단체들은 마산 시립 교향악단과 창원 시립 교향악단이 통합을 하여 정치용 지휘자를 중심으로 130여명에 달하는 전국 최대 규모의 시립 교향악단과 윤의중 지휘자를 중심으로 한 120여명의 시립 합창단이 탄생하였다. 창원 시립 교향악단은 2013년 전국 교향악 축제에 130명 전 단원이 참가하여 수준 높은 음악을 선사하여 호평을 받음으로써 국내 음악계의 새로운 아이콘으로 부상하였다.

[의의와 평가]

창원시의 음악은 통합을 통해서 더욱 발전된 모습을 보이리라고 본다. 음악의 역사가 깊은 마산과 진해, 신도시 형성과 더불어 시작된 창원은 이제 하나라는 생각으로 통합 창원의 음악을 발전시켜 나가야 할 것이다. 창원 예술인 모두와 시민들이 일심동체가 되어 노력을 해야 하며 또한 교육 기관의 충실한 역할, 시의 전폭적인 지원, 전문 공연장의 활용, 성숙한 시민들의 문화예술 의식 등이 함께 어우러져 창원 음악인들이 자부심을 느끼도록 해야 할 것이다.

[참고문헌]
이용자 의견
강** 34년동안 200명이상의 음악전공자를 배출하고 교도소,나병환자촌,양노원,고아원,등 수많은 봉사활동을하고,
수십년을 관청지원안받고,정치꾼예술활동 안하고 순수하게 스스로 공연활동을해온 합창단은,관심법에따라서
파묻어버렸군요!!??대단하십니다.
2014.0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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