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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202056
한자 -故鄕-山-李元壽-故鄕-
영어의미역 The Hometown I Had Lived is the Blooming Mountain Valley, Yi Won-su and 「Spring of Hometown」
분야 문화·교육/문화·예술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기획)
지역 경상남도 창원시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김일태

[개설]

한국인이라면 누구에게나 익숙한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이라는 구절로 시작하는 「고향의 봄」은 한국의 대표 동요이다.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 우물처럼 깊게 배인 이 동요를 한국인의 가슴에 새겨준 사람은 동원 이원수이다. 이원수는 경상남도 양산에서 태어나 열 달 만에 창원으로 이사하여 어린 시절을 보내고, 다시 마산으로 이사하여 마산공립보통학교를 다니던 열다섯 살 때, 돌아가신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과 창원에서의 어린 시절에 대한 추억을 담아 동시「고향의 봄」을 썼다.

「고향의 봄」은 1926년에 『어린이』 4월호에 입선작으로 당선되었고, 「산토끼」를 작곡한 이일래가 곡을 붙여 마산 일대에서 불리어지다가 홍난파가 다시 곡을 붙인 이래 아리랑만큼이나 민족애를 느끼는 동요로 전국적으로 애창되면서 오늘날까지 전해져 오고 있다.

[시대의 굴곡과 함께 한 생애]

이원수는 1911년 음력 11월 17일 경상남도 양산 북정리에서 아버지 이문술과 어머니 진순남의 외아들로 태어났다. 태어난 지 10달 만에 창원읍 중동리 100번지로 이사해 11살까지 어린 시절을 보냈다. 가난한 생활 속에서도 소답리 서당에 다니며 글공부를 하였고 마산으로 이사한 뒤 1923년에는 마산공립보통학교(지금의 성호초등학교) 2학년으로 편입하였다.

이 무렵 방정환이 펴낸 『어린이』를 애독하면서 창원에서의 어린 시절을 떠올리며 「고향의 봄」이라는 동시를 썼고, 이 작품이 1926년 『어린이』 4월호에 입선작으로 당선되었다. 1927년 『기쁨사』의 동인이 되면서 본격적인 활동을 펼치게 되었다. 마산공립보통학교를 졸업하고 마산상업학교(지금의 마산용마고등학교)를 나와 함안금융조합에서 일을 하다가 함안독서회를 만들어 활동하였다. 1935년 2월에는 경남문청동맹 사건에 연루되어 마산과 부산에서 10개월 동안 감옥 생활을 했다. 감옥 안에서 쓴 시가 「두부장수」이다. 이 후 해방 전까지 「보오야 넨네요」, 「종달새」, 「고향 바다」, 「밤 시내」 같은 동시를 발표하였다.

해방 후에는 마산에서 서울로 옮겨 주로 동화와 소년소설을 쓰면서 해방 후 혼란에 빠진 조국과 어린이들의 참상을 글로 표현하였다. 한국전쟁으로 자녀 두 명을 잃는 비운을 겪어야 했던 이원수는 자신이 겪은 그 비극을 동화 「꼬마 옥이」에 담아내기도 했다. 4·19혁명과 유신독재정권의 암흑기를 거치는 동안에는 왜곡된 정치와 사회 모순에 대한 정의감과 분노, 약한 자에 대한 동정과 격려, 그리고 사랑에 대한 찬가, 생명의 소중함 등의 주제로까지 작품 세계를 넓혀 나갔다. 1971년 한국아동문학가협회를 창립하여 초대 회장을 맡았고, 1981년 1월 24일 71세를 일기로 서울 사당동에서 구강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이원수는 15세 때 동시 「고향의 봄」으로 문단에 등단한 이후 56년간의 작품 활동을 통해 동시 309편, 동화와 소년소설 217편, 시 56편, 수필 및 수상 200편, 평론 86편, 아동극 대본 24편, 전래 동화 94편, 역사 전기 소설 8편 등 모두 994편에 달하는 방대한 문학 작품을 남겼다.

[아동문학의 나침반]

이원수는 생애 만 70년 중에서 해방 전에 30년을 살고, 해방 후에 40년을 살았다. 해방 전에는 일제강점기 어린이의 삶을 구체적인 모습으로 그려 보이는 현실주의 동시를 써서 어린이들이 누구나 쉽게 읽고 부를 수 있도록 했으며, 해방 후에는 전쟁과 같은 어려움 속에서도 아동문학의 기초적인 이론을 만들어서 지금처럼 아동문학이 바른 길을 가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이원수의 작품 활동은 아동문학의 모든 장르에 걸쳐 있었다. 그는 동시와 아동 소설의 영역에서 이미 움직일 수 없는 확고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지만, 분단시대에 이룬 이론적 성과 역시 양으로나 질로나 독보적이라 할 만하다. 또한 한국아동문학가협회 초대 회장을 거치며 한국의 예술적 아동문학의 터를 닦았고, 항상 어린이들 편에서 동심을 담은 작품을 써 왔기 때문에 ‘아동문학의 거목’, ‘삶과 글을 통해 이 땅의 어린이들에게 희망을 준 거울’로 평가받고 있다.

이원수의 모든 작품의 뿌리가 되는 것은 바로 시다. 이원수의 시 세계는 어둡고 슬픈 역사를 살아온 우리 민족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이 가운데 동시는 어린이의 꿈과 희망을 위해 현실을 바로 보고 고쳐 나가야 한다는 외침이었다. 시는 곧 마음의 표현이며 시가 주는 감동은 생각과 느낌을 여러 사람이 나누는 것이라고 보았던 것이다. 이러한 특징은 민족의 현실을 시의 소재로 쓰면서 우리 민족이 겪어왔던 아픔과 슬픔, 안타까움과 그리움 같은 민족 정서를 표현하려 한 것에서도 나타난다.

이원수는 어린이를 글 가운데 두고 어린이다운 마음의 울림을 목표로 시를 썼다. 그러면서도 어린이의 눈으로 본 현실 세계를 꾸밈없이 표현했다. 이 지점에서 이원수는 그때까지의 아동문학의 한계를 넘어 뚜렷이 다른 작품 세계를 만들어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동시집으로는 1947년에 처음으로 『종달새』를 발표한 이래, 『나무야 나무야 겨울나무야』, 『너를 부른다』 등이 있다.

또한 동화도 마찬가지다. 이원수는 다투며 지내온 역사의 귀중한 순간을 가장 날카롭게 포착하여 어린이에게 그대로 들려주고 있다. 동심주의, 천사주의, 교육주의 따위를 내세운 상업주의 아동문학이 넘치는 가운데에도 자신의 작품 세계를 꿋꿋하게 지켰다. 이원수가 동화에서 다루는 주제는 통일, 민주주의, 생명 존중, 더불어 사는 삶, 정의 등 사람이 살아가면서 겪는 모든 문제들이었다. 이원수는 이 모든 문제들을 어린이의 눈으로 보고 있다. 이러한 투철한 역사의식과 인간에 대한 사랑이 바로 그의 작품 세계를 이루는 뼈대인 것이다.

대표작으로는 장편 동화 『숲속 나라』, 『잔디숲 속의 이쁜이』, 소년소설 『오월의 노래』, 『민들레의 노래』, 『메아리 소년』, 『해와 같이 별과 같이』, 단편 동화 「꼬마 옥이」, 「불새의 춤」, 「호수 속의 오두막집」 등이 있다. 요컨대 이원수는 해방 직후의 혼란기에 민족주의 갈래의 아동문학 분야의 자리를 지켰을 뿐만 아니라, 6·25전쟁 이후 황폐해진 정서를 회복하는 데 따뜻한 문학 작품으로 기여했고, 1960년대 산업구조의 변화하던 시기에는 그늘진 곳에 버려진 동심을 구원하고자 혼신의 노력을 기울였던 아동문학의 나침반 같은 존재였던 것이다.

[민족 정서의 원형이 담긴 노래]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 이렇게 시작되는 「고향의 봄」은 한국 사람이면 누구나 잘 아는, 외국인들이 아리랑과 같은 한국의 민요라고까지 기억할 정도로 한국인의 정서가 곱게 스며있는 대표 동요이다. 누군가 앞 구절을 시작하면 스스럼없이 이어 부르기도 하고 콧노래를 흥얼거리기도 해서 서로가 같은 민족임을 확인시켜주는 노래이기도 하다.

「고향의 봄」이 우리 민족의 노래가 된 데에는 우리가 아픈 역사를 지나왔기 때문이다. 일제강점기에는 고향이 곧 나라였고 고향의 정서는 잃어버린 나라의 정서와 맞닿아 있었다. 그리고 해방 뒤 6·25전쟁을 겪으면서 고향을 떠나 살 수밖에 없었던 수많은 전쟁 이재민들은 그 허전함을 달래기 위해 「고향의 봄」을 불렀고, 그 뒤 1960년대부터 해외로 일을 찾아나간 동포들은 애국가보다 「고향의 봄」을 먼저 불러 떠나온 고향을 그리워했다. 동요 「고향의 봄」이 아리랑만큼 애창되는 것은, 길지 않은 이 노래 속에 민족 정서의 원형이 들어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이 노래가 많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위안을 주고 즐거움을 주는 것은, 노래 말 구절구절 표현된 고향의 모습이 우리네 전형적인 고향을 떠올리기에 충분하고 또 어린 시절의 추억까지도 우려내기 때문이다. 복숭아꽃, 살구꽃, 아기 진달래..... 이런 봄꽃들이 만발한 우리네 뒷산과 나지막이 자리한 집들은 누구에게나 한 번쯤 다시 돌아가고 싶은 어린 시절에 대한 아련한 그리움을 샘솟게 하기에 충분하다. 이처럼 한국인의 가슴에 그리움을 우물처럼 깊게 새긴 대표 동요가 「고향의 봄」인 것이다.

[창원이 이원수 문학의 산실임을 기리다]

이원수가 일제강점기 이래 현대에 이르기까지 아동문학에 쌓은 심대한 공적은 생전에도 여러 차례 평가받았다. 1970년에 노래동산회와 서울교육대학이 제정한 ‘고마우신 선생님상’을 받은 것은, 훌륭한 사회 교육자답게 정서 교육의 제일인자로서의 공로를 인정받은 것이라 할 수 있다. 이 후 1973년 11월에는 한국문학상, 1974년 12월에는 대한민국 문화예술상을 연이어 받았다. 그리고 1978년 대한민국 예술원상, 1980년 10월 대한민국 문학상 아동문학 부분 본상을 수상했다.

1981년 1월 24일 타계한 후에는 금관문화훈장이 1982년에 추서되었다. 이 후 창원시 용지공원, 마산시 산호공원, 양산과 수원에도 시비가 세워졌으며, 서울어린이대공원에는 문학비가 세워졌다. 각 지역에서 분산적으로 펼쳐지던 이원수 문학에 대한 추모기념사업은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창원시를 중심으로 본격적으로 벌어졌다.

창원시에서는 고난과 격변의 시대를 살아오면서 늘 어린이들을 위해 다양한 작품 활동을 해온 이원수의 문학을 기리고, 또한 「고향의 봄」의 창작 무대이자 이원수의 수많은 작품의 산실이 창원시임을 알리고 기념하기 위해, 2001년 시민 단체인 ‘고향의 봄 추진위원회’가 만들어졌다. 이 후 ‘고향의 봄 기념사업회’를 거쳐 2008년에는 사단법인으로 새롭게 출범하여 이원수 문학에 대한 학술 세미나를 비롯하여 고향의 봄 창작 기념 공연, 고향의 봄 문학 기행, 이원수 독서 교실 등 다양한 기념사업을 펼치고 있다. 또한 창원시와 마산MBC는 1999년부터 10년 넘게 ‘고향의 봄 창작 동요제’를 펼쳐오고 있으며, 한국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 창원지부는 매년 창원 시민의 날을 즈음해서 ‘고향의 봄 축제’를 열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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