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80063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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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吳相根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충청남도 보령시 미산면 삼계리 3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정을경 |
출생 시기/일시 | 1883년 10월 8일 - 오상근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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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919년 4월 - 오상근, 독립만세운동 주도 |
몰년 시기/일시 | 미상 - 오상근 사망 |
추모 시기/일시 | 2011년 - 오상근 건국훈장 애족장 추서 |
출생지 | 충청남도 보령시 미산면 삼계리 |
활동지 | 충청남도 아산군 선장면 |
성격 | 독립운동가 |
성별 | 남 |
대표 경력 | 1919년 4월 독립만세운동 주도 |
[정의]
일제강점기 시기에 활동하였던 충청남도 보령 출신의 독립운동가.
[개설]
오상근(吳相根)[1883~?]은 보령 출신으로 1919년 충청남도 아산 선장면에서 3·1운동에 참여한 인물이다.
[활동 사항]
오상근은 1919년 3·1운동이 발발하여 전국에 전파되자 충청남도 아산군 선장면 선창리 정수길(丁壽吉)[25세], 같은 동네에 살고 있는 서몽조(徐夢祚)[45세], 군덕리 임천근(林千根)[29세], 인위면 도흥리 김천봉(金千鳳)[26세] 등과 함께 독립운동을 계획하였으며 주도한 인물이다. 이들은 1919년 4월 4일 선장면 선장시장에서 만세운동을 전개하기로 결정하였으며, 계획한 4월 4일 선장시장에서 오상근을 비롯한 주도 세력은 군중들에세 만세시위를 독려하는 등의 활동을 하였고, 군중에게 조선독립만세운동에 가담하도록 연설하여 약 200여 명이 조선독립만세를 절규하였다. 김천봉은 솔선하여 이를 도왔고 오상근과 정수길·서몽조·임천근은 군중을 지휘하여 오후 3시경 선장면 헌병주재소 구내에 몰려가 창문에 돌을 던졌다. 육군 헌병 조장(曹長) 장사손삼랑(庄司孫三郞)은 총기를 난사하여 군중을 해산시켰다. 김천봉은 붙잡혀 징역 2년 6월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상훈과 추모]
대한민국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1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