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80063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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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柳浩根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충청남도 보령시 청라면 옥계리 |
시대 | 근대/개항기,일제 강점기 |
집필자 | 정을경 |
출생 시기/일시 | 1853년 9월 9일 - 유호근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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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919년 - 유호근, 3·1운동 참여, 파리장서 서명 |
몰년 시기/일시 | 1925년 10월 23일 - 유호근 사망 |
추모 시기/일시 | 1995년 - 유호근 건국훈장 애족장 추서 |
출생지 | 충청남도 보령시 청라면 옥계리 |
성격 | 의병 |
성별 | 남 |
대표 경력 | 홍주의병 참여|3·1운동 참여|파리장서 서명 |
[정의]
일제 강점기 시기에 활동하였던 충청남도 보령 출신의 의병이자 독립운동가.
[개설]
유호근(柳浩根)[1853~1925]은 충청남도 보령 출신으로 민종식이 이끄는 홍주의병대에서 활동하였으며, 1919년 파리강화회의에서 사용될 독립청원서[파리장서]에 서명한 인물이다.
[활동 사항]
유호근은 국내 항일의병운동과 파리장서사건에 참여한 독립운동가이다. 유호근은 윤석봉(尹錫鳳)[1842~1910] 등과 함께 1896년 2월 유인석(柳麟錫)[1842~1915]에게 격려문을 보내어 의병을 지원하였다. 1906년 5월에는 민종식(閔宗植)[1861~1917]의 홍주의병에 가담하여 의병 활동을 전개하였다. 민종식을 주축으로 하는 의병대는 충남 홍주에서 거의(擧義)하여 홍주성을 점령하는 등 각 지역의 유생들이 가세하면서 한때 1,000여 명이 넘는 규모를 이루었다. 이때 유호근은 홍주의병에 가담하였으며, 홍주성 점령 후 일본군의 공격에 의해 패퇴할 때까지 의병대에 참여하였다.
[파리강화회의의 독립청원서 서명]
유호근은 1919년 3·1운동 직후 파리강화회의에서 사용될 독립청원서 서명 활동에도 참여하였다. 유림들은 독립청원서를 통해 파리강화회의에서 한국의 독립을 청원하고자 하였다. 김복한(金福漢)[1860~1924]을 중심으로 한 호서유림과 곽종석(郭鍾錫)[1846~1919]을 중심으로 한 유림 137명이 참여함으로써 명실상부한 유림의 항일운동이었다. 파리장서의 요지는 일제가 자행한 명성황후(明成皇后)[1851~1895] 시해와 한국 주권의 찬탈 과정을 폭로하면서 한국 독립의 정당성과 당위성을 주장하는 것이었다. 유호근도 호서 유림을 대표하여 독립청원서에 서명하였다.
[상훈과 추모]
대한민국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1995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