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80072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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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冠堂里 茂松 尹氏 世居地 |
분야 | 성씨·인물/성씨·세거지 |
유형 |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
지역 | 충청남도 보령시 웅천읍 관당리 |
시대 | 조선/조선 후기,근대/개항기,근대/일제 강점기,현대/현대 |
집필자 | 문광균 |
[정의]
충청남도 보령시 웅천읍 관당리에 있는 무송 윤씨 세거지.
[개설]
충청남도 보령시 웅천읍 관당리의 무송 윤씨는 1599년(선조 33) 14세손 윤순(尹洵)이 남포현으로 이주하면서 입향하게 되었다.
[명칭 유래]
관당리(冠堂里)는 갓굴의 한자식 표현인 관동(冠洞)과 당재[갓굴 북쪽에 자리한 마을]의 한자식 이름인 당현리(堂峴里)에서 따온 명칭이다.
[현황]
과거 관당리에서 무송 윤씨가 가장 많이 거주하는 지역은 관당1리 덕메마을[관당리 북동쪽 할미재 서쪽에 있는 마을]이었지만, 현재는 후손들이 거의 거주하지 않는다.
[입향경위]
1599년(선조 33) 14세손인 윤순(尹洵)이 남포현으로 입향하면서 세거하기 시작하였다. 정확한 입향 사유를 알 수는 없지만, 입향 시기가 임진왜란(壬辰倭亂)[1592~1598] 직후인 점을 고려하면 전란으로 인하여 살던 서울을 떠나서 피난의 과정을 통해서 남포현으로 입향한 것으로 추정된다. 피난 이후 거주하면서 보령에 세거하게 되었다.
[관련유적]
무송 윤씨의 사당인 문헌사(文獻祠)가 충청남도 남포현 웅천읍 소황리에 자리하고 있다. 문헌사는 예종 대 우의정을 역임한 윤자운(尹子雲)[1416~1478]을 모시는 사당이다. 문헌사 앞에는 업적을 기리는 사적비도 있다. 본래 1494년(성종 25)에 경기도 양주군 백석면 홍죽리에 부조묘(不祧廟)[불천위 제사의 대상이 되는 신주를 둔 사당]로 건립되었으나, 경기도 양주에 사는 윤자운 후손들이 점차 지역에서 쇠퇴하면서 관리가 이루어지지 못하게 되었다. 1725년(영조 1)에 충청남도 보령시 웅천읍 소황리에 거주하는 후손들이 위패를 모시고 오면서 재건립되었지만, 사당 자리에 군사시설이 들어오면서 1992년에 관당리로 이전하게 되었다. 이전하기 전 문헌사는 전통적인 사당 건축 양식을 잘 보존하고 있었으나 1992년 이전 과정에서 새로 만들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