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801109 |
---|---|
한자 | 揷矢島 堂祭 |
분야 | 생활·민속/민속 |
유형 | 의례/제 |
지역 | 충청남도 보령시 오천면 삽시도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김효경 |
의례 장소 | 제당 - 충청남도 보령시 오천면 삽시도 마을 뒷산 |
---|---|
성격 | 마을신앙 |
의례 시기/일시 | 음력 정월 보름날 |
신당/신체 | 당집 |
[정의]
충청남도 보령시 오천면 삽시도에서 음력 정월 보름날에 마을의 안녕과 평안을 기원하는 마음에서 지내던 마을 공동의 종교 의례.
[연원 및 변천]
삽시도 당제를 언제부터 지냈는지는 알 수 없으나, 1930년대에 크게 번성하기 시작하였다고 한다. 마을 유력자인 박영삼이 당제를 큰 행사로 발전시켰으나, 이후 기독교 교세가 확장되면서 당제에 대한 회의가 생기고 새마을운동 등으로 근대화에 대한 인식이 확산되면서 1960년대에 자연스레 중단되었다.
[신당/신체의 형태]
마을 뒷산인 장골에 본래 당집이 있었는데, 본래의 당산을 ‘낡은 당산’이라 불렀다. 1907년(고종 44)에 군대 해산 이후 군인이 녹도로 들어와 일본의 소금배를 탈취하였는데, 일본인이 군인을 찾기 위해 당산에 불을 지르면서 당집이 전소되었다.
1930년대에 마을 유지가 웃말 뒷산[높이 38m]으로 당집을 옮겼는데, 길조로 간주되었던 백조가 수없이 날아들었기 때문이었으며, ‘새당산’이라 불렀다. 새당산은 4~5평[약 13.2~16.5㎡]의 당집형 제당이었다. 당집 안에는 당각시 당신도가 봉안되어 있었는데, 초록 저고리에 붉은 치마를 입은 모습이었다. 6·25전쟁 이후 당집을 없앴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당집을 부순 사람의 꿈에 당각시가 나타나 “너 때문에 여기서 더 이상 못 살고 떠난다.”는 말을 했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절차]
음력 섣달 스무날에 대동회에서 당주(堂主)와 숙수(熟手)를 선출하고, 정월 열나흗날에 마을에 도착하도록 미리 장배[장을 보러 다니는 배)]를 띄워 대천장에서 제물을 구입해 왔다. 음력 열나흗날에 제당에 올라 노구제[산제]를 지냈다.
보름날 아침에는 당주집에 꽂아 둔 당기를 들고 당산에 올랐는데, 이때 무당이 함께 가서 열두 거리 굿을 하였다. 뱃기에 길지(吉紙)를 묶어 주면 자기 배로 가서 뱃고사를 지냈다. 방앗간 옆 하당터에서 굿을 베풀고, 재주꾼이 재주도 부렸다.
열엿새날에 제를 지낸 음식을 나누어 먹고, 당제를 지내고 사흘이 지난 후에 노구메[산천의 신령에게 제사 지내기 위하여 놋쇠나 구리로 만든 작은 솥에 지은 메밥]를 지어 올리면 모든 제사가 끝이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