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80115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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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平生儀禮 |
이칭/별칭 | 일생의례 |
분야 | 생활·민속/민속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충청남도 보령시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김효경 |
[정의]
충청남도 보령시의 주민들이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일생의 마디가 되는 시기에 행하는 출산, 혼례, 회갑, 상장례, 제례 등의 의례.
[개설]
인간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의례를 통해 사회적 성원으로 성장한다. 일생 동안 출생, 혼인, 회갑, 죽음, 죽음 이후 등 삶의 분기점에서 의례를 행한다고 하여 일생의례, 평생의례라고 부른다. 평생의례는 어느 지역이나 『주자가례(朱子家禮)』를 기준으로 한 조선 시대의 관행을 잇고 있지만, 그 안에는 지역별로 특색 있는 의례, 관행 등이 추가되어 있다. 평생의례를 관혼상제라 부르는 유교식 의례에는 출산의례가 빠져 있다.
[의례 유형]
출산은 임신, 아이의 성별, 난산(難産), 산모와 태아의 죽음, 새 생명의 탄생 등과 관련해 인간의 능력으로 해결할 수 없는 영역이 존재하므로 유교식 의례보다는 비유교식 의례로 치렀다.
혼례는 두 사람의 맺어짐을 상징화한 의례로, 보령시에서는 신부의 집에서 혼인을 치르는 방식이 발달되어 있으며, 여타 의례는 다른 지역과 유사하다. 신부와 신랑이 입는 혼례복은 마을에서 공동으로 마련해 두고 사용하였으며, 신랑은 말을 타고, 신부는 가마를 타는 등의 의례를 베풀었다. 다만 도서지역에는 거주 공간이 제한되고, 경제적 여건 탓으로 특별한 방식의 혼례를 치렀다.
어린 아이를 미리 시집 보내어 일정 기간 양육한 후 혼인시키는 민며느리제와 두 집안의 여성을 여러 번 바꾸어 혼인하는 누이바꿈 등의 혼인 방식이 확인된다. 물론 두 의례 모두 1940년대 이전에 이미 중단되었으나, 육지와 분리되고 소통이 원활하지 않았던 도서지역 주민들이 선택한 특별한 혼인방식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상장례와 제례는 유교식 의례 절차에 의해 거행되었다. 정상적인 죽음을 한 망자는 유교식 절차에 의해 죽음이 처리되고, 조상으로서 후손들에게 제사의 대상이 되었다.
보령시의 현대화 과정과 평생의례의 쇠퇴 과정은 반비례적인 현상을 띤다. 산부인과 병원이 늘고 찾는 이가 많아져 집 안에서 출산을 하지 않으면서 출산의례가 소멸되었고, 예식장과 장례식장이 들어서면서 전통 혼례식과 마을마다 마련해 둔 혼례복과 가마 등이 사라졌다.
가장 최근까지 유지되었던 의례는 상장례와 제례이다. 상장례는 2000년대 초반부터 장례식장이 들어서면서 급속도로 변모되었다. 마을 입구의 상엿집과 주민들이 계를 조직해 망자의 마지막을 보내던 상여도 사라졌다. 제례는 비교적 전통방식이 잘 전승되는 의례 중 하나이다. 문중별로 혹은 집안마다 조상의 기일에 묘사(墓祀)[조상의 묘소에서 지내는 제사]를 올린다.
의례 방식과 장소는 변화되었지만 의례에 담긴 인간 탄생에 관한 인식, 혼인하는 부부의 마음가짐, 망자를 보내는 설움과 효를 다하고자 하는 자손의 도리 등의 관념은 보령시민의 생활 속에 그대로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