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8013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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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沈永澤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인물/문인·학자 |
지역 | 충청남도 보령시 |
시대 | 근대/개항기 |
집필자 | 정을경 |
[정의]
조선 후기부터 개항기에 활동하였던 충청남도 보령 출신의 문인.
[개설]
심영택(沈永澤)[1867~1901]은 어렸을 때부터 부친 심의덕(沈宜悳)[1845~1910]으로부터 학문을 수학하였으며, 문인들 사이에서 문장 및 식견이 뛰어나 신망을 받던 개항기의 인물이다.
[가계]
심영택은 충청남도 보령 지역 출신의 유학자로서 성리학 연구에 힘쓰던 심의덕의 아들이다. 심영택의 본관은 청송(靑松), 자는 명보(命甫)이며, 호는 옥담(玉潭)이다. 심영택의 호인 ‘옥담’은 주자의 고향 옥산(玉山)과 율곡의 고향 석담(石潭)의 글자에서 영감을 받아 한 가지 글자씩을 취해 만들어졌다.
[활동 사항]
부친 심의덕이 그동안 세거지였던 경기도 김포에서 보령 궁촌동으로 이거함에 따라 심영택도 함께 정착하였던 것으로 판단된다. 심영택은 이른 나이에 부친에게 성리학을 배웠는데, 어려서부터 학문이 뛰어나고 문장력이 빼어난 것으로 유명하였다. 심영택은 심의덕과 함께 호론(湖論)[인성과 물성이 다르다는 주장을 하는 성리학파 가운데 기호학파의 한 파]을 지지하며 보령 유림계에서 활동하였으며, 많은 이들의 신망을 받았다. 그러나 너무 이른 나이인 35세에 사망하면서 학문적인 뜻을 펼치지 못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