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20035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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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仇史城 |
영어의미역 | Gusaseong Fortress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지명/고지명 |
지역 | 경상남도 창원시 |
시대 | 고대/남북국 시대/통일 신라 |
집필자 | 남재우 |
경상남도 창원 지역에 있던 신라시대 성곽.
구사성(仇史城)은 구사군(仇史郡) 지역에 있던 방어 시설인 성곽으로 추정된다. 구사군의 공식 명칭은 의안군(義安郡)이다. 구사군의 위치에 대해서는 합천 초계, 월성, 창원 등의 다양한 견해가 있으나 견훤의 진격로와 진례성과 인접한 위치 등으로 미루어 볼 때 창원 지역일 가능성이 높다. 문헌에는 후삼국시대에 견훤이 대량군(大良郡)과 구사군을 공략하고 이어서 진례성으로 진출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창원시 북동부에 있던 조선시대 창원도호부 읍성으로 보거나, 창원시 동읍 덕천리와 북면 지개리 일대의 구룡산 정상에 있는 구룡성으로 보는 견해가 있다.
『삼국유사(三國遺事)』 3권 「탑상(塔像)」 남백월이성노힐부득달달박박(南白月二聖努肹夫得怛怛朴朴)조에 구사성과 관련한 기록이 보인다. “백월산 양성성도기에 말하기를, 백월산은 신라 구사군의 북쪽에 있다. 옛날에는 굴자군이었는데 지금은 의안군이다[白月山兩聖成道記云 白月山在新羅仇史郡之北 古之屈自郡 今義安郡].”
『고려사(高麗史)』 1권 태조 3년(920) 10월조에는 “견훤이 신라를 침공하여 대량, 구사 두 군을 빼앗고 진례군에 이르렀다. 신라가 아찬 김율(金律)을 보내 구원을 요청하므로 왕이 군사를 보내 구원하였다. 견훤이 그 소식을 듣고 퇴각하였는바 이때부터 그는 우리와 불화하게 되었다[甄萱侵新羅取大良仇史二郡至于進禮郡新羅遣阿粲金律來求援王遣兵救之萱聞之引退始與我有隙]”고 기록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