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마니촌 지명 유래」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201245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유형 작품/설화
지역 서울특별시 동작구 사당동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김국제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관련 지명 가마니촌 - 서울특별시 동작구 사당로 90[사당동 181번지]지도보기

[정의]

서울특별시 동작구 사당동에 있었던 가마니촌의 지명 유래담.

[개설]

「가마니촌 지명 유래」는 2021년 3월 기준 서울특별시 동작구 사당2동·사당3동 우성/롯데캐슬아파트가 들어선 구릉지에 있던 가마니를 덮어 놓은 움막집들을 보고 붙여진 지명에 대한 유래이다.

가마니촌6·25전쟁이 끝난 후 피난민들과 1968년 서울특별시 중구 양동, 용산구 이촌동 등에서 철거 및 이주해온 이주민들이 가마니를 덮어놓은 움막집에서 살았다고 해서 붙여진 지명으로, 1980년대 재개발로 인하여 모두 사라져 버렸다.

[채록/수집 상황]

「가마니촌 지명 유래」와 관련하여 「사당동 가마니촌·양지마을 7만6천 평 재개발」[『중앙일보』, 1985. 9. 16.]을 비롯하여 2019년 동작뉴스에서 출간된 『동작구 땅위에 새겨진 우리의 역사』 등에 기록되어 있다.

[내용]

서울특별시 동작구 사당동 가마니촌사당2·3동 일대 구릉지에 위치해 있던 마을로 6·25전쟁이 끝난 후 피난민들과 1968년 서울특별시 중구 양동, 용산구 이촌동 등에서 철거 및 이주해온 이주민들이 가마니를 덮어놓은 움막집에서 살았다고 해서 붙여진 지명이다.

가마니촌은 1981년부터 시작된 서울특별시 동작구 사당동 산 22번지 일대 재개발 사업으로 인하여 변환기를 맞게 된다.

사당동 산 22번지 일대 재개발 추진 과정에서 1981년 11월 약 1천 6백 여 명의 철거반원 등이 들이닥쳐 약 5백 여 가구의 판자촌을 강제 철거시키며 시작된 1차 재개발 사업을 통하여 우성아파트와 삼성아파트가 건축되었으며, 1985년부터 불기 시작한 아파트 광풍은 아직 개발이 시작되지 않은 나머지 판자촌 일대와 양지마을 일대에 걸쳐 총 2천2백72채의 불량주택을 철거한 후, 7만6천6백20평 부지위에 15층아파트 39동 3천9백96가구를 건설하는 대규모 재개발 사업을 시작하게 되었다.

대규모 재개발 사업 과정에서 철거민들은 1985년 1,052세대를 중심으로 결성된 세입자대책위를 중심으로 무려 2년 6개월 동안 재개발법 철폐와 생존권 보장 등의 요구조건을 내세우며 기나긴 싸움을 전개해 나갔다.

사당동 투쟁은 철거에 대응하여 경찰서, 국회, 민정당사 농성, 구청 항의방문, 가두시위 등 공세적이고 지속적인 투쟁으로 평가된다.

세입자보호를 위한 법적 근거가 마련되지 못하고 조합 측에서 간단한 이주비를 받는 것이 전부였던 이전까지에 비하여 사당동 투쟁은 세입자 특별분양권 보장과 특별분양권에 대한 340여 만 원에 상당하는 전매보상책을 받는 등의 성과를 남겼다.

또한 1992년부터는 재개발이 이루어지지 않은 나머지 땅에 대해 극동·우성·신동아 등 3개 건설사가 투입되어 가마니촌 일대에 대규모 아파트단지를 만들었고, 이로 인하여 과거의 가마니촌은 모두 사라지고 사당2·3동은 대규모 아파트 단지로 남게 되었다.

[모티프 분석]

가마니촌6·25전쟁의 아픈 상처와 함께 1980년대 재개발의 아픔이 남아 있는 서울특별시 동작구 사당동 지역의 대표적인 집단 이주민 마을이었다. 현재 가마니촌 일대는 과거 실향민들의 가난한 이미지였던 흔적은 전혀 남지 않은 채 초고층 아파트들이 들어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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