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30122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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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大嶺山神贊竝書 |
영어의미역 | Record Written Laterally to Honor the Spirit of Daegwallyeong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 |
유형 | 작품/문학 작품 |
지역 | 강원도 강릉시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장정룡 |
[정의]
허균(許筠)이 김유신(金庾信) 장군이 대관령 산신이 되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기리는 뜻에서 쓴 글
[개설]
허균의 문집 『성소부부고(惺所覆瓿藁)』 권14 문부 11 「대령산신찬병서」에는 대관령 산신으로 좌정한 김유신[595~673] 장군의 연유와 그를 기리는 시를 쓴 두 편의 글이다. 이 글에 의하면 강릉단오제 초기에는 산신제를 중심으로 개최되었음을 알 수 있다.
[창작경위]
허균은 조선 선조 36년(1603) 여름 단오 무렵, 그의 나이 34세 때에 당시 수안군수를 역임하고 잠시 모친과 함께 외가인 강릉 사천의 애일당에 내려와 약 4개월 간 머물렀을 때 강릉단오제를 직접 보았다. 당시 이 행사를 주관한 책임자에게 산신제를 지내는 모습을 보고 신격이 김유신임을 알았다. 또한 지역에서 그를 신봉하여 산신제를 지내고 강릉으로 모셔 축제를 베푸는 것에 감동하여 두 편을 병서(竝書)로 썼다.
[구성]
허균이 쓴 글은 구성상 두 편으로 나뉘는데 전편은 산문으로 대관령 산신제에 대한 내용이 들어있고, 후편은 김유신의 공을 기리는 찬시(贊詩)이다.
[내용]
산문내용은 다음과 같다.
“계묘년(선조 36년, 1603) 여름이었다. 나는 명주[지금의 강릉]에 있었는데, 고을 사람들이 5월 초하룻날에 대령신(大嶺神)을 맞이한다 하기에 그 연유를 수리(首吏)에게 물으니, 수리가 이렇게 말하였다. ‘대령신이란 바로 신라 대장군 김유신(金庾信)입니다. 공이 젊었을 때 명주에서 공부하였는데, 산신이 검술을 가르쳐주었고, 명주 남쪽 선지사(禪智寺)에서 칼을 주조하였는데, 90일 만에 불 속에서 꺼내니 그 빛은 햇빛을 무색하게 할 만큼 번쩍 거렸답니다. 공이 이것을 차고 성내면 저절로 칼집에서 튀어나오곤 하였는데, 끝내 이 칼로 고구려를 쳐부수고 백제를 평정하였답니다. 그러다가 죽어서는 대령의 산신이 되어 지금도 신령스런 이적이 있기에, 고을 사람들이 해마다 5월 초하루에 번개(旛蓋)와 향화(香花)를 갖추어 대령에서 맞아다가 명주부사에 모신답니다. 그리하여 닷새 되는 날, 갖은 놀이로 신을 기쁘게 해드린답니다. 신이 기뻐하면 하루 종일 괫대가 쓰러지지 않아 그 해는 풍년이 들고, 신이 화를 내면 괫대가 쓰러져, 그 해는 반드시 풍재(風災)나 한재(旱災)가 있답니다.’ 이 말을 듣고 나는 이상하게 여겨, 그 날 가서 보았다. 과연 괫대가 쓰러지지 않자, 고을 사람들이 모두 좋아하고 환호성을 지르며, 경사롭게 여겨 서로 손뼉 치며 춤을 추는 것이었다. 내가 생각건대, 김유신 장군이 살아서는 왕실에 공을 세워 삼국 통일의 성업을 완성하였고, 죽어서는 수천 년이 되도록 오히려 이 백성에게 화복을 내려서 그 신령스러움을 나타내니, 이는 진정 기록할 만한 것이기에 드디어 다음과 같이 찬한다.”
후편은 4언 64구의 찬시로서 내용은 다음과 같다.
“갸륵하다. 귀족의 후손이여, 씩씩하고도 우람스럽도다. 나라의 용장되어, 북채 들고 단에 오르도다. 무장하고 군문에 나서니, 기상이 고구려·백제를 삼킬 듯하다. 비호같은 장수들을 채찍질하며, 용감한 정예부대 몰고 가네. 오구를 차고 가니, 곤오산의 쇠로세. 시뻘겋고도 아름다워, 붉은 불꽃 뿜어낼 듯, 웅진에서 말을 베고, 당나라 배 만 척이 와서 도왔네. 백마강에서 기약에 뒤지자, 백제 삼군은 겁에 질렸건만, 공의 수염이 분노에 뻗쳐, 칼을 어루만지며 고함지르니, 붉은 용이 번득이는 듯, 놀라운 번개가 칼집을 에워싸니, 왕사 드디어 힘을 어울러, 능히 백제를 멸망시켰네. 꿈틀대는 고구려족, 서녘 모퉁이서 날뛰네. 군졸을 풀어 가서 치니, 황제의 위엄 우뢰인 양 떨치네. 동쪽 군사 일만을 거느리고, 북을 치며 앞장서서, 긴 창 모아 굳세게 무찌르니, 멧부리 쪼개지고 연못은 치솟을 듯, 갑옷 쌓아 두고 창 던지니, 소라바다에 썩은 시체 답쌓여라. 이적이 웃음 지으니, 칠부 군종 땅에 무릎 끓고, 이웃 발악 제거함에, 나라의 걱정거리 없어졌네. 해와 달도 툭 트여 해맑고, 천지도 다시 빛나네. 삼한의 우리를 에워, 모조리 판도 안에 넣으니, 큰 공훈 정의와 기상에 새기고, 사책에 실어 영원히 빛나도록, 동해의 동녘에서, 그 공 미칠 이 없네. 웅장한 풍도에 영특한 기개, 이제 수천 년이 되었건만, 대령산 꼭대기에서, 아직도 제사 받아, 해마다 드리는 분향, 누구라서 감히 소홀히 하랴, 공의 넋은 어둡지 않거니, 복 내림도 크기도 커라. 구름타고 바람결에, 살포시 내려오네. 오곡은 무르익어 풍년들고, 백성에게는 재앙이 없어, 동해바다는 넘실대고, 오대산은 굽이굽이 들쭉날쭉, 천추만대에, 향화어이 그치리오. 이몸 또한 공과 같은 겨레요, 또한 같은 강릉 백성이기에, 내 이제 송(頌)을 지어, 우리 신명 찬양하노라.”
[특징]
이 글은 교산 허균이 대관령 산신인 김유신에 대하여 자세하게 기록한 글로 산신제의 역사를 밝히고, 그의 공적을 시로 읊은 명작이다.
[의의와 평가]
강릉단오제는 대관령산신제로부터 시작되었음을 명확히 보여주는 자료이고, 직접 산신제를 보고 기록한 자료로서 신빙성이 높다. 400년 전에는 산신인 김유신 장군을 강릉으로 모시고 5월 단오날에 축제를 베풀었다는 점에서 강릉단오제 원형을 되찾는다면 김유신 산신을 봉안하는 행사로 바뀌어야 하겠다. 기록 가운데 고을 사람들이 괫대받이를 하면서 잘 들리면 풍년이 든다고 하는 모습은 생생한 현장감이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