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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원 도호부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200382
한자 昌原都護府
영어음역 Changwon-dohobu
영어의미역 Changwondohobu Administrative District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제도/법령과 제도,지명/고지명
지역 경상남도 창원시
시대 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최정용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제정연도/일시 1415년연표보기
시행연도/일시 1415년
폐지연도/일시 1601년연표보기

[정의]

조선 전기 경상남도 창원 지역에 설치되었던 행정구역.

[제정경위 및 목적]

1408년(태종 8) 7월 의창현(義昌縣)회원현(會原縣)을 합하여 창원부(昌原府)로 승격되었다가, 7년 후인 1415년(태종 15) 창원도호부로 승격되었다.

[관련기록]

『태종실록(太宗實錄)』과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등에 관련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내용]

창원도호부의 사방 경계는 동쪽으로 김해까지 6.8㎞, 서쪽은 함안까지 10.8㎞, 남쪽은 김해 관하인 웅신(熊神)까지 12.8㎞, 북쪽은 칠원(漆原)까지 9.6㎞이다. 호수는 1,094호이며 인구는 남자 4,955명, 여자 5,238명으로 모두 10,193명이다. 창원을 본관으로 하는 토성은 공(孔)·황(黃)·박(朴)·현(玄)이다. 이 지역의 특산물은 미역·우모(牛毛)·세모(細毛)·대구어(大口魚)·굴조개[石花]·해삼(海蔘)과 사철(沙鐵)·연동석(鉛銅石) 등이었다. 소금 굽는 곳이 세 곳이었으며, 염장관(鹽場官)이 감독하는 염창(鹽倉)이 있었다. 자기소(磁器所)가 한 곳이었으며, 부(府)의 북쪽 산북촌리(山北村里)에 있었다.

창원도호부에서 정부에 바치는 공물은 꿀·밀[黃蠟]·모래무지[沙魚]·건합(乾蛤)·죽순(竹笋)·죽피방석(竹皮方席)·왕대[簜]·어교(魚膠)·돼지털·사슴가죽·여우가죽·삵가죽·노루가죽·수달피(水獺皮)·칠(漆) 등이었다. 그리고 반룡산(盤龍山) 밑 해변에는 창원도호부에서 징수한 세곡(稅穀)을 서울로 운송하기 위하여 설치한 창고인 반산창(盤山倉)이 있었다.

1425년(세종 7)에는 창원 북배동에서 군정 30명이 15일 동안에 57냥의 구리를 제련해 냈으며, 1426년(세종 8)부터는 창원도호부에서 100근씩을 해마다 제련하여 바치도록 하여 이듬해까지 200근을 제련하고 있었다. 구리 제련은 적어도 1438년(세종 20)경까지 지속되었던 것 같다. 1439년(세종 21) 창원에서 나는 동철(銅鐵)은 노력이 많이 들고 힘들기 때문에 캐기가 어렵다는 경상도관찰사의 보고가 있었고, 현지 조사 확인 결과 앞으로 구리를 캐는 일은 중단시키도록 조치하였다.

[변천]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창원성은 진주로 향하는 왜군 주력부대에 포위되어 3일 만에 함락되었으나 창원도호부의 군민이 합심하여 성을 사수하였다. 전란 중 적에게 항복한 사람이 한 사람도 없었으므로 1601년(선조 34) 창원대도호부로 승격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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