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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면 도상이운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200404
한자 南面道上二運
영어음역 Nam-myeon Dosangiun
영어의미역 Nam-myeon Dosangiun, Administrative Unit
분야 역사/전통 시대,지리/인문 지리
유형 제도/법령과 제도,지명/고지명
지역 경상남도 창원시
시대 조선/조선
집필자 하종근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제정연도/일시 1415년연표보기
시행연도/일시 1415년
폐지연도/일시 1895년연표보기

[정의]

조선시대 경상남도 창원 지역에 설치된 행정 단위.

[제정경위 및 목적]

조선 사회에서는 지방 군현제도의 정비 과정에서 면리제도가 등장하여 시행되었다. 창원도호부의 경우에도 각 고을들을 다섯 개의 면(面)으로 분류하였다. 면의 이름은 대개 동서남북의 방위면을 사용하였다. 창원도호부의 5개 면 중의 하나가 남면(南面)이다. 면 아래에는 운(運)을 두었는데, 창원도호부에서는 방(坊)을 운이라고 하였으며 모두 16개의 운을 설치하였다. 운의 이름은 일운·이운·삼운과 같이 순서대로 분류하였는데, 남면에는 모두 5개의 운이 있었다. 남면에 속한 5개 운 중의 하나가 도상이운(道上二運)이다. 도상(道上)이란 창원도호부에서 안민고개를 넘어 웅천현 보평역으로 가는 역로의 북쪽을 가리키는 말이다.

[관련기록]

『교남지(嶠南誌)』(1867~1873)·『영남읍지(嶺南邑誌)』(1895)·『창원읍지(昌原邑誌)』(1899) 등에 관련기록이 나타난다.

[내용]

남면의 도상이운창원도호부의 관문에서 남쪽으로 8㎞ 거리에 위치하고 있었으며, 7개의 리가 소속되었다. 소속된 7개의 리는 남신리(南新里)·신덕리(新德里)·고산리(高山里)·사파정리(沙芭丁里)·가음정리(加音丁里)·대방리(大舫里)·대범리(大帆里)이다.

[변천]

『경상도읍지』(1832)보다 약 40년 쯤 뒤에 편찬된『교남지』에는, 남면 도상이운에 속한 고을이 남신리·신덕리·고산리·사파정리·가음정리(加音亭里)·대방리·대범리로, 『경상도읍지』의 내용과 같다. 『경상도읍지』보다 60여 년 뒤에 편찬된 『영남읍지』에서는 남면 도상이운에 속한 고을이 7개이기는 하지만 변화가 있었다. 즉 남신리·신덕리·괴정리·사파정리(沙巴丁里)·가음정리·대방리(大方里)·대덕리(大德里)이다. 고산리와 대범리가 소멸되고, 괴정리와 대덕리가 등장하였다. 이는 고산리가 괴정리로, 대범리가 대덕리로 변화되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창원읍지』에서는 남면 도상이운에 속한 고을이 세 개로, 신리(新里)·대파리(大杷里)·사파정리(沙破亭里)이다. 남신리·신덕리·괴정리·가음정리·대방리·대덕리가 소멸되고 신리와 대파리가 등장하였다. 이는 괴정리가 고산리로 개칭되어 남면 도상일운에 소속되었고, 신덕리와 남신리가 통합되어 신리가 되었으며, 가음정리가 남면 도상삼운으로 편입되고, 대방리와 대덕리가 합쳐져 대파리가 되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남면 도상이운 지역은 창원도호부가 조선 말기 창원군이 되고 1908년 다시 창원부가 되면서 상남면(上南面)이 되었다.

[현황]

남신리 지역은 지금 창원시 용지동에 속한 신월동(新月洞)이 되었고, 신덕리 지역은 창원시 용지동에 속한 신월동상남동에 속한 토월동(吐月洞)이 되었다. 고산리 지역은 지금 창원시 상남동에 속한 토월동이 되었다. 사파정리 지역은 지금 창원시 사파동에 속한 사파동사파정동(沙巴丁洞)이 되었다. 가음정리 지역은 지금 창원시 가음정동에 속한 가음동가음정동이 되었고, 대방리와 대범리 지역은 지금 창원시 사파동에 속한 대방동(大方洞)이 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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