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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원 유씨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200810
한자 昌原兪氏
영어의미역 Changwon Yu Clan
분야 성씨·인물/성씨·세거지
유형 성씨/성씨
지역 경상남도 창원시
집필자 박태성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씨 시조 유섭
입향 시조 유여눌

[정의]

유섭을 시조로 하고 유여눌을 입향조로 하는 경상남도 창원시 세거 성씨.

[연원]

창원 유씨(昌原兪氏)의 시조는 고려 때 정순대부(正順大夫)로 보문각 직제학을 역임한 유섭(兪涉)이다. 고려 중기 유여해(兪汝諧)는 이부상서로 기계 유씨(杞溪兪氏)의 시조가 되었고 그의 아우 유여눌(兪汝訥)은 호부 상서를 지냈는데 회원군(檜原君)에 봉해져 회원을 관향으로 삼게 되었다. 회원현이 조선 전기에 창원부로 승격되면서 창원 유씨가 된 것이다. 그러나 그 선계는 문헌의 실전으로 상고할 수 없고 후손들이 창원에 이거하여 살면서 본관을 창원으로 하여 세계를 이었다.

창원 유씨는 고려에서 조선에 이르기까지 고관 대작을 많이 배출하였다. 그로 인해 전국 각지에 분포하게 되었고 화성, 오산 등지에 많이 살고 있다. 시조의 아들 유경(兪冏)은 정당 문학을 지냈고, 증손 유귀생(兪貴生)은 조선 초에 공부 전서를 지냈다. 현손 유상지(兪尙智)는 1405년(태종 5) 진사에 합격하여 집현전 직제학과 승정원 좌부 대언 등을 지냈으며, 국사를 감수했다.

중종유언겸(兪彦謙)은 어려서 어머니가 죽자 3년 동안 시묘살이를 했는데 항상 두 마리의 호랑이가 지켜주며 식사를 함께 하는 등 여러 가지 기적 같은 사실이 일어났으며, 아버지 역시 유언겸이 철들기 전에 일찍 죽었기 때문에 미흡함이 많다고 하여 커서 다시 3년간 상복을 입고 시묘를 하였다. 명종유언겸의 효행이 나라에 알려져 효자문이 세워졌고 벼슬에 올라 선정을 베풀어 청백리가 되었다. 이외에도 인조 때 첨지중추를 지낸 유해(兪瀣)·유근(兪瑾)·유창(兪瑒)·유득일(兪得一)·유집일(兪集一)·유숭(兪崇) 등이 이름난 인물들이다.

[현황]

고려 시대 유여눌이 회원군에 봉해진 이후 창원을 관향으로 삼고 있으며, 조선 시대에도 창원에 일시 살았던 것으로 추정되나 현재는 후손이 거의 남아 있지 않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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