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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201837
한자 城隍壇
영어음역 Seonghwangdan
영어의미역 Altar of Village Guardian
이칭/별칭 성황당,서낭당,성황사,성황신묘,성황신사
분야 생활·민속/민속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회원구 석전동 산56
집필자 노성미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현 소재지 천주산 - 경상남도 창원시 의창구 신월동 지도보기
원소재지 성황당 봉수 -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회원구 석전동 산56 지도보기
성격 유적|민간 신앙 유적

[정의]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회원구 석전동에 있는 성황신에 제사 지내던 제단.

[개설]

성황단은 성황신(城隍神)에게 제사를 지내는 단을 일컫는다. 성황단에 세워진 사당(祠堂)을 뜻하는 성황당(城隍堂)·성황사(城隍祠)·성황 신묘(城隍神廟)·성황 신사(城隍神祠) 등과 같은 뜻으로 쓰인다. 성황신은 도성(都城)을 지켜준다는 신으로 각 고을에서 매년 5월 21일에 제사를 지냈으나 차츰 민간으로 전해져 마을마다 고갯마루 등에 돌무더기를 쌓아 성황신을 모셨고, 민간에서는 서낭신으로 일컫게 되었다.

[위치]

창원시의 성황단은 여러 번 옮겨 설치되었다. 고려 시대에는 지금의 마산합포구 자산동회원현에 관아가 있었다. 1374년(고려 공민왕 23)에 왜구의 침입으로 회원현의 관아와 현성이 불타 버렸다. 이에 1378년(고려 우왕 4)에 현재의 합성동에 우병영성(右兵營城)인 경상 우도 병마절도사영을 설치하였다. 이 시기에 성황단을 현재의 창원시 마산회원구 석전동 산56번지 봉화산의 봉수에 합사하였다. 그래서 석전동 봉화산의 봉수를 성황당 봉수라고 하였다. 1603년(선조 36)에 우병영이 진주로 옮겼다. 이후 『신증동국여지승람』의 “성황사가 창원 도호부 검산 북쪽에 있다.”와 『창원 읍지』의 “성황단창원 도호부 북쪽에 있는 첨산에 있는데 관문에서 1리의 거리다.”라는 기록은 임진왜란 이후 창원 도호부성이 의창 읍성으로 옮겨온 때의 성황단을 말한다. 검산과 첨산은 현재의 천주산이다. 따라서 이 시기 창원의 성황단천주산에 있었다.

[의례]

고려 시대 현성이 있던 자산동의 환주 산성에는 민간 신앙의 제장(祭場)으로 산제당이 있다. 이곳은 1970년대까지 산왕대신을 섬기는 제장이었는데, 현재는 사찰이 자리하고 있다. 합포 진성(合浦鎭城) 시기의 성황단석전동봉화산에는 ‘산왕대신’이라고 새겨진 석단(石壇)이 있다. 이 단은 성황당 봉수 바로 아래 절벽에 위치해 있다. 현재 성황당 봉수가 있는 봉화산에서 석전동 주민이 동제 형식으로 봉화제를 지내고 있다.

[현황]

『세종실록 지리지』 1401년(태종 1)의 기록에 의하면, 봉화를 올리는 곳으로서의 성황당이 경상도의 창원 도호부에 있었다. 『창원부 읍지』 봉수에는 “성황당 봉수가 창원 도호부에서 서쪽으로 15리에 있다.”고 하였다. 이 시기 같은 장소가 성황당과 봉수로 각각 분류되어 있다. 창원의 성황단성황단의 설치와 변천 과정을 이해하는 참고 자료로서 의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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