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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205048
한자 龜山浦鎭
이칭/별칭 구산포진(龜山浦鎭)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제도/법령과 제도
지역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 구산면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최정용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제정 시기/일시 1614년연표보기 - 귀산포진 설치
폐지 시기/일시 1668년연표보기 - 귀산포진 철폐
재설치 시기/일시 1673년 - 귀산포진 재설치
최초 설립지 귀산포진 -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 구산면
성격

[정의]

조선 시대 경상남도 창원 지역에 있던 칠원현의 귀산포(龜山浦)에 설치된 진(鎭).

[개설]

조선 시대에도 군현의 읍명은 시기에 따라 통합과 이속이 반복되기도 하였다. 귀산(龜山)은 칠원현의 남쪽으로 70리에 있었는데 본래는 성법부곡(省法部曲)이었다. 고려 때 현으로 승격하여 귀산현[구산현]이라 칭하였다가 웅신현(熊神縣)에 예속시켰다. 후에 금주(金州)에 예속시켰다가 공양왕 때 칠원에 내속(來屬)시키고 별호를 은산(銀山)이라 하였다. 조선 시대에는 칠원현(漆原縣)의 속현으로 그 남쪽에 있었다. 그리고 그 영역의 일부는 창원부 서촌(西村)까지 월입(越入)되어 있었다. 임진왜란 후 전화(戰禍)로 읍리(邑里)가 황폐하여 현으로서 유지하기 어렵게 되자 한때 창원부에 예속되기도 하였다. 귀산현(龜山縣)은 1737년(영조 13) 복구되었으며, 마산포(麻山浦)·구산포(龜山浦)·여음포(餘音浦)·저도(猪島) 등의 포구가 번창하였다. 창원시 마산합포구 구산면은 옛 읍명을 취하여 이름붙인 것이다. 칠원현은 왜란 후에 읍이 쇠잔하여 1601년(선조 34)에 창원에 합속되었다가 1617년(광해군 9)에 다시 복현되었다.

귀산포진(龜山浦鎭)은 당시 창원에 합속된 칠원현의 귀산포(龜山浦)에 설치된 진(鎭)이었다. ‘진’이란 군사상 방어의 필요성에서 지방의 요충지에 설치한 군사 주둔 지역이다. 조선 시대 귀산포에 설치된 귀산포진(龜山浦鎭)은 1614년에 설치하고 첨사(僉使)를 두었다. 첨사는 조선 시대 각 진영(鎭營)에 속한 종3품의 무관으로 첨절제사(僉節制使)를 의미한다.

[건립 경위]

귀산포진임진왜란이 종결된 후 광해군 시기에 전후 각종 제도를 점검하고 보완하는 과정에서 군사상 남해안의 해안 방어를 보완하는 전략적 측면에서 설치된 것으로 짐작된다.

[변천]

귀산포진은 1614년(광해군 6)에 진이 설치된 후 50여 년간 존속하다가 1668년(현종 9)에 철폐되었다. 그러나 곧 1673년에 다시 설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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