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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205073
한자 熊川靑年會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지역 경상남도 창원시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양미숙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설립 시기/일시 1924년 3월 27일연표보기 - 웅천 청년회 설립

[정의]

일제 강점기 경상남도 창원 진해 지역에 있었던 청년 단체.

[변천]

1924년 3월 27일 조성복, 주국녕, 문석주 등 5명이 중심이 되어 80여 명으로 웅천 청년단에서 웅천 청년회로 개편을 하였다. 당시 웅천 청년단의 주기철이 평양 신학교로 유학을 가게 되어 청년단에서 청년회로 개편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중·일전쟁의 발발로 일본 제국주의의 청년 운동에 대한 탄압이 날로 심해지고 1943년에는 회관마저 압수당함으로써 활동의 터전도 잃게 되어 청년 운동을 계속 이어갈 수 없었다. 웅천 청년회의 회관 자리에는 웅천면사무소[현 웅천동사무소]가 건립되었다.

[주요 사업과 업무(활동 사항)]

웅천 청년회는 웅천 청년단의 사업 계획을 이어받아 청년 회관 건립을 당면 사업으로 추진하여 지방 유지의 도움 등으로 성내동 375번지에 회관을 건립하였다. 웅천 청년회에서는 주로 청년들의 교양 향상, 사회사업, 체력 향상을 위하여 강습회, 교양 강좌, 체육회 등을 개최하였으며, 모임은 남문리 817번지 문석주의 집에서 주로 열렸다.

[현황]

1924년 웅천 청년회로 개편될 당시 위원장은 조성복이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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