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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산 청년회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205085
한자 馬山靑年會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지역 경상남도 창원시
시대 근대/근대
집필자 양미숙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설립 시기/일시 1924년 6월연표보기 - 마산청년회 설립
성격 사회주의 청년단체

[정의]

1924년 6월 경상남도 창원 마산 지역에서 마산 구락부 청년부원들을 중심으로 설립된 단체.

[주요 사업과 업무(활동 사항)]

마산 청년회마산 구락부의 재산을 넘겨받으려 하였으나 이루지 못하였다. 마산 청년회의 활동은 마산 구락부의 활동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다만, 계몽의 내용에 반제·반봉건사상, 특히 사회주의 사상이 많이 포함되었다. 창립 이후 마산 청년회는 뚜렷한 활동을 보이지 않았으나 조선 공산당 창립 이후 활기를 띠기 시작하였다. 강연회, 토론회, 웅변대회, 체육 대회, 음악 연예회, 동화회 등을 자주 개최하였다.

[현황]

마산 청년회는 18세 이상 35세 이하로 나이를 제한함으로써 노년층과 장년층의 참가를 막았다. 집행 위원제를 채택해 8인의 집행 위원들이 총무부, 교무부, 체육부를 맡았다. 초대 집행 위원으로는 김지철(金知喆), 백광흠(白光欽), 이용철(李用喆), 이정찬(李廷讚), 이택용(李澤龍), 장재륜(張在輪), 팽삼진(彭三辰), 황장오(黃長午)였다. 강령으로는 ‘조선 민중 해방 운동의 선구가 될 일’, ‘대중의 본위인 신사회 건설을 기도할 일’을 채택하여 명목상 사회주의 청년 단체를 표방하였다. 그러나 그 구성에서 보면 3·1 운동 등 민족 해방 운동 경역을 가진 전투적인 활동가, 팽삼진, 백광흠, 이정찬 등 사회주의자, 상업 자본가 등으로 구성되었다. 이런 구성은 정치 성향의 다양성을 나타내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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