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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토의 교통도」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205124
한자 鄕土-交通圖
이칭/별칭 향토 교통로
분야 역사/근현대,문화유산/기록 유산
유형 문헌/문서
지역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회원구|마산합포구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허정도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작성 시기/일시 1932년 2월 1일 - 「향토의 교통도」 『향토의 연구』에 첨부되어 간행
소장처 경남 대학교 박물관 -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 월영북16길 11[월영동 449] 경남대학교 한마미래관지도보기
발급처 마산 공립 보통학교 -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 성호동 4길 21[성호동 57-3]지도보기
성격 지도
관련 인물 우에하라 사카에[上原榮]
발급자 마산 공립 보통 학교

[정의]

1932년에 마산 공립 보통 학교(馬山公立普通學校)에서 제작한 마산의 도시 지도.

[개설]

「향토의 교통도[鄕土の交通圖]」가 제작된 1932년은 한국인들이 거주한 마산포[원마산]와 일본인들이 거주한 신마산이 도시 연담화(都市連擔化)[Conurbation: 중소 도시 시가지가 서로 붙어 거대 도시를 이룸]되던 시기다.

1920년대 벽두에 조선 회사령이 철폐되자 일본인들은 기업을 앞세워 마산 전 지역에 진출하였고 마산의 한국인 자본가들도 회사를 설립하기 시작했다. 이런 변화는 마산 도시에 큰 변화를 가져왔다. 즉 1920년대 중반 이후 마산포[원마산] 지역의 도로 확장과 마산만 해안의 대대적인 매립, 그때까지 도시 지역이 아니었던 신마산마산포[원마산]의 중간 지역 즉 장군천몽고정 사이에 공공건물 위주의 새로운 공공 업무 지구 형성 등이 그것이다.

마산 도시 변화 중 가장 괄목할 만한 부분은 도로 체계의 변화였다. 원래 한국인들의 전통도시 마산포[원마산]의 길은 일본인들의 영향이 있기 전까지 폭 1~2m 정도의 자연 발생형 길이 전부였다. 개항 후 각국 공동 조계지였던 신마산 지역에 폭 넓은 직선형 근대식 도로가 뚫리고 그것이 점차 마산포[원마산] 지역으로 확산되면서 마산의 도로 체계는 큰 변화를 겪는다. 또한 1905년에 개통되어 삼랑진을 거쳐 경부선과 연결된 철도 마산선과 1926년 진주까지 연결된 철도 경남선의 두 철로가 놓이면서 마산 도시는 더 큰 변화를 맞는다. 「향토의 교통도[鄕土の交通圖]」는 이러한 변화 이후 그려진 지도이다.

「향토의 교통도[鄕土の交通圖]」는 과학적 측지법이 아닌 조감도 형식의 지도이므로 축척이 부정확하다. 또한 제목처럼 교통로 위주 지도이므로 도시 전체를 세밀히 알려주지는 않는다. 교통로 표시는 시내 교통로, 철도, 해로까지 표시되어 있어서 도시의 내·외부 도로 사정은 정확히 알 수가 있다.

[제작 발급 경위]

「향토의 교통도[鄕土の交通圖]」마산 공립 보통학교(馬山公立普通學校)에서 1932년 2월 1일 발행한 『향토 연구[鄕土の硏究]』 속에 첨부된 지도이다. 저자는 마산 공립 보통 학교(馬山公立普通學校)의 일본인 교장 우에하라 사카에[上原榮]이다. 그는 이 외에 1933년 마산 교육회가 펴낸 『향토의 조사[鄕土の調査]』와 1937년 마산 명승 고적 보존회가 펴낸 마산의 관광 리플릿 「관광 마산[觀光の馬山]」 등을 만들었다. 마산의 지역사에 관심이 많아 연구했던 일본인으로 추정된다. 『향토 연구[鄕土の硏究]』에 첨부된 저자 서문에 적힌 한국인와 일본인 26명의 연구 부원들은 교직원으로 우에하라 사카에[上原榮]와 함께 역사와 현황을 조사·연구했던 것으로 보인다.

1899년 개항 이후 마산에 정착한 일본인들은 1930년 경에 이르러 행정·산업·문화·교육 등 마산 사회의 모든 분야를 지배하게 된다. 당시 마산은 일본인이 건설한 근대적 도시로 일본인의 자부심을 만족시킬 만했다. 이러한 배경으로 『향토 연구[鄕土の硏究]』가 제작되었다 할 수 있다.

[형태]

마산 공립 보통 학교(馬山公立普通學校)에서 발행한 『향토 연구[鄕土の硏究]』의 제 9편 「향토의 교통 및 통신」 첫 페이지에 첨부되어 있다. 지도는 마산 도시가 그려진 세로 25㎝, 가로 36㎝의 등사본으로 수록된 책의 두 배 크기 용지에 인쇄하여 접혀 있다.

[구성/내용]

당시 도시 상황을 알 수 있는 교통로 중심의 지도이다. 상부에 복선으로 그린 사각형 안에 ‘향토의 교통도[鄕土の交通圖]’라는 제목이 있고 그 아래 마산의 지도가 그려져 있다. 시내 교통로와 해로는 단선으로, 철도는 정해진 표시 방법으로 그려져 있다. 외부와 연결되는 해로는 마산포[원마산] 항구에서는 부산과 진해로 가는 항로가 개설되었고 신마산 항구에는 통영, 여수, 목포, 진해와 함께 일본의 고베[神戶]와 오사카[大阪]로 가는 항로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도시 내 주요 시설은 건물의 모양과 함께 건물 명칭을 표시했으며 주요 하천과 무학산저도[돝섬]가 그려져 있다. 장군천을 기점으로 남쪽 해안인 지금의 중앙 부두 위치에 월포 해수욕장(月浦海水浴場)이 표기되어 있어서 말로만 전해져오던 마산 도시 내 해수욕장 위치를 정확히 알 수 있다는 점이 특이하다.

[의의와 평가]

「향토의 교통도[鄕土の交通圖]」는 1930년대 초반 마산[현재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마산회원구]의 도시 구조를 파악하는데 결정적인 정보를 제공하는 자료이다. 축척이 없고 표시가 불명확한 등사본이지만 표시된 내용들만으로도 도시 구조를 이해하는데 충분하다. 이 지도에는 도시의 범역 및 시내의 도로와 철도, 바다를 통해 외부와 연결되는 항로는 물론 시내의 주요 시설 들이 정확하게 나와 있으며 도시 내 하천과 해수욕장도 표시하고 있다.

「향토의 교통도[鄕土の交通圖]」는 1899년 개항부터 1930년대 초에 이르기까지 일제가 마산의 도시를 어떻게 변화시켰는지 알 수 있는 자료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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