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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205179
한자 金炯善
이칭/별칭 김원식(金元植),최명환(崔明煥)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경상남도 창원시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남재우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904년연표보기 - 김형선 출생
수학 시기/일시 1917년 - 김형선 마산 공립 보통학교 졸업
몰년 시기/일시 1950년연표보기 - 김형선 사망
성격 사회 운동가
성별
대표 경력 조선 공산당원|건국 준비 위원회 교통부 위원

[정의]

일제 강점기 경상남도 마산 출신의 사회 운동가.

[활동 사항]

김형선(金炯善)[1904~1950]은 1917년 마산 공립 보통학교를 졸업하고 마산 공립 간이 농업학교에 입학했으나 학비 때문에 퇴학했다. 상점원 및 부두 노동자로 일하다가 마산 창고 회사 사무원으로 5년간 근무했다. 1924년 8월 마산 공산당 결성에 참여했고, 1925년 4월 경남 사상 단체 동인회(同人會)에 발기인으로 참가했고, 5월에는 마산 청년회 운동부원이 되었다. 7월에 조선 공산당에 입당하고 마산 야체이카와 고려 공산 청년회에 입회하여 마산 제1야체이카에 배속되었다. 9월 마산 노동 동우회 교무부 책임자가 되고, 12월 ‘제1차 조공사건’에 연루되어 마산 경찰서에서 검속되었고, 같은 달 마산 청년 연합회 총무부 상무 집행 위원이 되었다.

1926년 봄 조선 일보 마산 지국을 경영했고, 3월 마산 기자단 집행 위원, 4월 마산 노동 연맹 발기 준비 위원, 경남 기자 동맹 서무부 책임자, 5월 마산 노동회의 벽신문 『첫소리』 통신부원이 되었다. 8월 ‘제2차 조공 사건’에 연루되어 중국 상해를 거쳐 광동으로 망명했다.

1927년 1월 중국 중산 대학(中山大學)에 입학했고, 1928년에 중국 공산당에 입당하였다. 1929년 6월 재중국 본부 한인 청년 동맹에 가입하여 10월 유호(留滬) 한국 독립 운동자 동맹 결성에 참여하고 총무 부장이 되었다.

1931년 2월 조공 재건 운동을 위해 입국했다. 1932년 4월 반일 격문을 인쇄하여 배포했다. 1933년 7월 영등포에서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1934년 12월 치안 유지법 및 출판법 위반으로 징역 8년을 선고받았다. 1945년 8월 해방과 함께 출옥하여 건국 준비 위원회 교통부 위원이 되었다. 9월 조선 인민 공화국 경제 부장 대리로 선정되고, 조공 결성에 참여하여 조직국원이 되었다. 1946년 2월 민주주의 민족전선 결성에 참가하고 중앙 위원으로 선출되었다. 11월 남조선 노동당 결성 대회에 참석하여 의장단의 한사람으로 선출되었다. 12월 남로당 중앙 감찰 위원회 부위원장이 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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