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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206382
한자 鎭海頭洞遺蹟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유적(일반)
지역 경상남도 창원시 진해구 두동 산13-2
시대 선사/청동기,선사/철기,고대/고대,고려/고려,조선/조선
집필자 임동재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발굴 조사 시기/일시 2005년 - 진해 두동 유적 동아세아 문화재 연구원에서 1차 지표 조사
발굴 조사 시기/일시 2007년 - 진해 두동 유적 동아세아 문화재 연구원에서 2차 지표 조사
발굴 조사 시기/일시 2008년 - 진해 두동 유적 동아세아 문화재 연구원에서 시굴 조사
발굴 조사 시기/일시 2008년연표보기 - 진해 두동 유적 동아세아 문화재 연구원에서 발굴 조사 시작
발굴 조사 시기/일시 2009년연표보기 - 진해 두동 유적 동아세아 문화재 연구원에서 발굴 조사 종료
현 소재지 진해 두동 유적 - 경상남도 창원시 진해구 두동 산13-2 지도보기
성격 분묘 중심 유적

[정의]

경상남도 창원시 진해구 두동에 있는 고려~조선 시대의 분묘 중심 유적.

[개설]

진해 두동 유적부산 진해 경제 자유 구역청에서 시행하는 창원시 진해구 소사동~부산광역시 강서구 녹산동에 이르는 도로 개설 구간 중 창원시 진해구 두동 일대에서 확인된 고려~조선 시대 분묘 중심 유적이다.

두동 유적은 2005년 동아세아 문화재 연구원에서 실시한 도로 개설 예정 부지 전체에 대한 지표 조사에서 삼국 시대 소사 고분군과 삼국~조선 시대 죽항 고분군, 조선 시대 마천 분묘군·용재골 분묘군 등과 함께 확인되었다. 도로 부지에 매장 문화재가 집중 분포해 있음이 밝혀지고 아파트 건축 등으로 인하여 노선 변경이 불가피하여 지표 조사를 다시 실시하게 되었다. 2007년 변경 구간에 대한 지표 조사 결과 조사 대상 지역에 포함되는 두동 고분군에서는 시기를 알 수 없는 소형 분묘 10여 기가 확인되었다.

지표 조사 결과에 따라 2008년 동아세아 문화재 연구원이 시굴 조사를 실시하여 조선 시대 분묘 17기 및 백자·청동 합·청동 수저 등의 유물이 출토되어 발굴 조사의 필요성이 제기되었다. 2008년~2009년 발굴 조사를 실시한 결과 두동 유적에서는 청동기 시대의 돌널무덤, 삼국 시대의 돌방무덤, 고려~조선 시대의 분묘와 기와 가마 등의 유구 60기가 조사되었다.

[위치]

진해 두동 유적은 행정 구역상 경상남도 창원시 진해구 두동 산13-2 일대로 창원시 진해구 소사동~부산광역시 강서구 녹산동에 이르는 도로 개설 구간 중 일부에 해당한다. 이곳은 진해-부산 간 국도 2호선에서 두동 마을 쪽의 도로를 따라 약 400m 떨어진 곳으로 마봉산[401m]에서 남쪽으로 뻗어 내린 구릉의 지맥 말단부 해발 17~29m 지점에 해당한다.

[형태]

진해 두동 유적에서는 청동기 시대의 돌널무덤 1기, 삼국 시대의 돌방무덤 1기, 고려~조선 시대의 분묘 56기와 기와 가마 2기 등 모두 60기의 유구가 조사되었다. 이들 유구에서는 청동기 시대의 석창, 삼국 시대의 토기류, 고려~조선 시대의 도기류·자기류·청동기류·철기류·기와 등의 유물이 출토되었다.

청동기 시대 돌널무덤은 1기만 조사되었는데 주축은 남북 방향이며 기반층인 풍화 암반층을 굴착하여 무덤구덩이를 조성하고 그 내부에 돌덧널형 돌널을 조성하였다. 돌널의 규모는 잔존 길이 150㎝, 너비 30㎝, 잔존 높이 42㎝로 평면 형태는 세장방형이다. 사람 머리 크기의 할석을 이용하여 축조하였으며 양장벽은 2~3단이 남아 있는데 최하단은 가로 눕혀쌓기와 가로 세워쌓기를 혼용하였다. 3단이 잔존한 단벽은 가로 세워쌓기로 축조하였으며, 잔존한 벽석의 양상으로 볼 때 북단벽을 먼저 쌓고 양장벽을 나중에 쌓았다. 동장벽에 인접한 정지토 위에서 돌창 1점이 출토되었다.

삼국 시대의 돌방무덤도 1기 조사되었는데 주축은 남북 방향이며, 기반층인 풍화 암반층을 굴착하여 묘의 구덩이를 조성하고 그 내부에 돌방을 축조하였다. 돌방의 규모는 길이 226㎝, 너비 104㎝, 잔존높이 30㎝로 평면 형태는 장방형이다. 벽석은 동장벽만 3단이 잔존하고 나머지는 1단만 남아 있다. 벽석의 최하단은 가로 눕혀쌓기를 기본으로 일부 세로 세워쌓기로 축조하였으며, 2단부터는 가로 눕혀쌓기와 세로 세워쌓기를 혼용하여 부정연하게 축조하였다. 잔존 벽석으로 추정되는 벽석의 축조 순서는 북단벽→양장벽→남단벽이다. 바닥에는 2차에 걸쳐 주검바닥돌[屍床石]을 조성하였으며, 유물 출토 위치의 차이 등으로 볼 때 최소 2회 이상의 추가장이 이루어졌다. 벽석의 유실로 잔존 상태는 불량하지만 유물의 부장 위치가 북장벽에 집중되는 점, 단벽 중 남단벽이 나중에 축조되었고 경사 아래 면인 점 등으로 볼 때 앞트기식 돌방으로 추정된다. 유물은 북단벽의 1차 시상면 상부와 정지토에서 손잡이 달린 항아리·목 짧은 항아리·연질의 사발[盌] 각 1점이 출토되었다.

두동 유적에서 조사된 고려~조선 시대의 분묘는 모두 56기로서 매장 주체부의 구조는 모두 움무덤이고 33기의 널무덤과 23기의 직장묘(直葬墓)로 구분할 수 있다. 널무덤에서 출토되는 유물은 청동 수저·청동 발[합]·자기류·철기류·장신구류 등이며, 좌측과 우측에 고르게 설치한 감실에 유물을 부장하였다. 특히 청동 합과 청동 수저는 널무덤의 감실에서만 출토되었다. 대부분의 유물은 감실에 부장했지만 일부는 보강토 상부나 바닥에 부장되는 경우도 있다. 직장묘는 무덤구덩이 굴착 후 목관을 사용하지 않고 시신을 그대로 안치하는 구조로 일부에서만 감실이나 바닥에서 소수의 청동 숟가락·청동 발·자기류 등이 출토되었다.

진해 두동 유적의 고려~조선 시대 분묘의 배치상 특징은 병렬적 배치와 종렬적 배치가 비교적 양호하게 나타난다는 점이다. 유적의 남동쪽 능선 중심을 따라 북에서 남으로 조영된 1~11호 묘는 세대 간 종렬적 배치를 보인다. 중앙 사면부 높이 20.5~27m 선상에 입지하는 14호~41호 묘는 행렬 간 병렬 배치와 세대 간 종렬적 배치를 모두 보여 최소 4세대 이상의 친연 관계에 따른 묘역으로 추정된다. 높이 17~20m 선상에 입지하는 42~52호 묘는 동일 등고선상의 병렬적 배치와 3세대에 걸친 종렬적 배치가 비교적 뚜렷하게 보인다. 북서쪽 사면에 입지한 53~56호 묘는 동일 항렬 간 또는 부부 이혈 합장묘의 배치 양상을 보여 2세대 정도의 종렬적 배치로 생각된다.

[현황]

진해 두동 유적은 도로 공사가 진행 중이며 도로가 완공되면 유적의 흔적은 사라질 것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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