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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해 남양동 유적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206384
한자 鎭海南陽洞遺蹟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유적(일반)
지역 경상남도 창원시 진해구 남양동 37
시대 선사/석기
집필자 임동재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발굴 조사 시기/일시 2005년 - 진해 남양동 유적 부산 대학교 박물관에서 지표 조사 실시
발굴 조사 시기/일시 2008년 1월 - 진해 남양동 유적 동서 문물 연구원에서 시굴 조사 시작
발굴 조사 시기/일시 2008년 4월 - 진해 남양동 유적 동서 문물 연구원에서 시굴 조사 종료
발굴 조사 시기/일시 2008년 6월연표보기 - 진해 남양동 유적 동서 문물 연구원에서 발굴 조사 시작
발굴 조사 시기/일시 2008년 10월연표보기 - 진해 남양동 유적 동서 문물 연구원에서 발굴 조사 종료
현 소재지 진해 남양동 유적 - 경상남도 창원시 진해구 남양동 37 지도보기
성격 생활 유적

[정의]

경상남도 창원시 진해구 남양동 37 일대에 있는 신석기 시대에서 삼국 시대에 걸쳐 형성된 생활 유적.

[개설]

진해 남양동 유적은 2005년 부산 대학교 박물관에서 용역 수행한 ‘서부산 유통 단지 및 진해 남양 지구’ 문화재 지표 조사 과정에서 처음 확인되었다. 지표 조사에서 토기 조각이 산포되어 있고 옛 웅동만(熊東灣)과 관련된 항만 시설물의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동서 문물 연구원에서 2008년 1월부터 2008년 4월까지 시굴 조사를 실시하였으며, 시굴 조사 결과 신석기 시대의 유구와 유물 포함층, 청동기 시대의 유구, 삼국 시대의 유구 등이 약 1만 5000㎡ 범위에 넓게 분포하고 있는 것이 확인되어 2008년 6월부터 2008년 10월까지 조사 기간을 연장하여 발굴 조사를 실시하였다.

발굴 조사 결과 신석기 시대의 생활면 2개소·구덩 유구 5기·집석 유구 1기와 청동기 시대의 주거지 2동, 삼국 시대의 도랑형 유구와 구덩 유구 등 24기를 비롯해 모두 34기의 유구가 조사되었고 이들 유구에서는 신석기 시대의 빗살무늬토기, 청동기 시대의 민무늬토기, 삼국 시대의 경질·연질 토기 등 모두 124점의 유물이 출토되었다.

[위치]

진해 남양동 유적은 행정 구역상 창원시 진해구 남양동 37 일대에 위치한다. 조사 지역은 자마산과 남동 구릉 사이의 곡부에 해당하는 충적지대로 전체적으로 남쪽 밤갓산의 구릉 말단부가 비교적 완만하게 북쪽으로 떨어지는 반면 북쪽의 구릉부는 급경사를 보인다. 신석기 시대 문화층 바로 위에 근대 시기 논이 조성되면서 신석기 시대 문화층 대부분은 삭평되었고 하천 연변 일부에서만 미고지의 형태로 유구가 확인된다.

[형태]

진해 남양동 유적에서 조사된 유구 중 신석기 시대에 해당하는 2개소의 생활면은 구덩이 거의 보이지 않고 일정 범위 내에서 할석과 일부 유물이 정치된 상태로 출토되는 점으로 보아 야외 유물 산포지의 성격이 강하며 임시 주거를 위한 야외 캠프장으로 추정된다. 구덩 유구는 형태가 원형이며 일부 유구는 벽면이 비스듬하게 굴착되었다. 바닥이 편평하며 유물이 사용 당시의 상태로 출토되어 주거지로 볼 수 있으며, 일부는 내부에서 토기가 할석과 함께 다량으로 출토되어 야외 토기 가마의 성격으로 볼 수 있다.

신석기 시대의 유구에서는 신석기 시대 중기에 해당하는 내만 구연단에 밀집빗금무늬[短斜集線文], 가로생선뼈무늬[橫走魚骨文]이 시문된 토기를 시작으로, 신석기 시대 후기의 봉계리식 토기가 주로 출토되었으며, 신석기 시대 말기의 겹아가리토기도 출토되었다. 이곳에서 조사된 신석기 시대 유구의 수와 유물은 현저히 적은 편이지만 진해 지역에서 신석기 시대 유구의 조사 사례가 거의 전무하다는 점에서 남양동 유적은 진해 지역의 선사 시대 복원에 중요한 자료가 될 것이다.

신석기 시대의 유구와 중복된 움집 터에서는 내부에서 바리 모양[鉢形] 토기와 돌끌[石鑿] 등이 출토되어 청동기 시대의 주거지로 판단된다. 삼국 시대의 유구로는 도랑형 유구와 구덩 유구가 확인되었는데 이들 유구에서는 대체로 6세기 후반에 해당하는 신라 후기 양식 토기가 주로 출토되었다.

[현황]

진해 남양동 유적은 현재 택지 조성 후 아파트 등 건물들이 들어서 도시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유적의 흔적은 찾을 수 없고 유적을 알릴 수 있는 표지판이나 보호 시설은 마련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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