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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산 상곡리 기와 가마터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206393
한자 馬山上谷里-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터
지역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회원구 내서읍 상곡리 31
시대 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임동재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발굴 조사 시기/일시 1991년 - 마산 상곡리 기와 가마터 국립 진주 박물관에서 현장 조사 실시
발굴 조사 시기/일시 1991년 7월 18일연표보기 - 마산 상곡리 기와 가마터 국립 진주 박물관에서 발굴 조사 시작
발굴 조사 시기/일시 1991년 8월 28일연표보기 - 마산 상곡리 기와 가마터 국립 진주 박물관에서 발굴 조사 종료
현 소재지 마산 상곡리 기와 가마터 -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회원구 내서읍 상곡리 31 지도보기
성격 기와 가마터

[정의]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회원구 내서읍 상곡리에 있는 조선 시대의 기와 가마 유적.

[개설]

마산 상곡리 기와 가마터는 1991년 3월 경상남도 공영 개발단에서 시행하는 서민 주택 건립 예정지에서 부지 조성 작업을 하던 중 굴삭기에 의해 가마의 천정 일부가 파괴되면서 발견된 유적이다. 당시 창원 군청으로부터 가마터의 발견 신고를 받은 국립 진주 박물관에서 현장 조사를 실시하여 조선 시대의 가마터임을 확인하였다. 발굴 조사는 국립 진주박물관의 주관으로 1991년 7원 18일부터 같은 해 8월 28일까지 실시하였다. 발굴 조사 결과 조선 시대 기와 가마 1기를 확인하였고, 가마에서는 수키와 13점과 암키와 23점 등 모두 36점의 기와가 출토되었다.

[위치]

마산 상곡리 기와 가마터는 행정 구역상 창원시 마산회원구 내서읍 상곡리 31에 위치한다. 가마는 상곡리 마을의 서쪽에 있는 화개산[457m]에서 서남쪽으로 뻗어 내린 산기슭의 북사면에 위치한다. 상곡리 일대는 동쪽에 남북방향으로 이어지는 농경지가 펼쳐져 있으나 다른 세 방향은 낮은 야산으로 둘러싸여 지형적으로 매우 협소한 편이다.

[형태]

마산 상곡리 기와 가마터 유적의 가마는 상곡리 서쪽에 위치한 화개산 산기슭의 북사면을 옆으로 파 들어가 구축한 지하식 등요로 밝혀졌다. 아궁이와 연도를 잇는 가마의 주축 방향은 N-52°-E 방향이다. 가마는 아궁이·연소실·소성실 등 각각의 시설이 비교적 양호한 상태로 남아 있는데 천정은 부지 공사 중에 이미 무너졌고 연도는 가마의 폐기 이후 곧바로 유실된 것으로 보인다. 가마의 전체 길이는 7.8m이며 소성실의 최대 너비가 2m로 비교적 대형 가마이며, 연소실과 소성실 사이에는 90㎝ 정도의 높은 단벽이 형성되어 있다. 소성실은 경사도가 16.5°로 비교적 완만하며 상면에는 계단 시설이 없다.

아궁이의 천정은 유실되었으나 입구의 좌우측 벽면 하단에 할석 2매가 65㎝ 간격으로 놓여 있는 점으로 보아 아궁이는 굴광에 고임돌을 놓고 수 매의 할석을 조립하여 축조하였음을 알 수 있다. 원래 굴광 너비는 120㎝ 내외였으나 개축으로 인하여 65㎝ 정도로 축소되었다. 아궁이는 입구에서 65㎝ 정도 계속되다가 연소실과 이어지는데 바닥은 연소실 입구 쪽에서 급격히 낮아지면서 연소실의 편평한 바닥과 낙차가 거의 없이 연속된다. 아궁이의 양측 벽 상단부에 점토로 보강된 기와편이 남아 있어 조업 중에 보축된 것임을 알 수 있다.

연소실의 천정은 유실되었으나 측벽과 바닥은 양호하게 남아 있다. 연소실은 평면이 반타원형인데 소성실과의 사이에 높이 90㎝ 가량의 높은 단벽이 형성되어 있다. 소성실의 바닥은 편평하며 측벽은 약간 안쪽으로 기운 상태로 낮은 돔형을 이루며 천정과 연결되었다. 연소실은 길이가 1.7m, 최대 너비가 1.8m 정도로 비교적 큰 규모이다. 연소실의 바닥에는 최종 번와시 남겨졌던 탄재와 소토층이 두껍게 쌓여 있었다. 소성실과의 사이에 형성되어 있는 단벽과 연소실 측벽은 높은 화기를 받아 그 표면이 조금씩 탈락되었으나 보수한 흔적은 확인되지 않는다.

소성실은 천정의 선단부 일부가 유실되었으나 측벽 및 바닥은 원상을 잘 유지하고 있다. 천정은 반원상의 돔형을 이루며 16.5°의 완만한 경사도를 지니고 연도와 연결된다. 연도에 가까워질수록 천정이 점차 낮아지고 바닥의 너비도 급격하게 좁혀진다. 소성실의 전체길이는 5.7m이고 바닥의 최대 너비는 2m 가량인데 바닥에서 천정까지의 높이는 선단부가 130㎝이고 후단부는 60㎝ 내외이다. 천정과 측벽은 높은 화기를 받아 회청색으로 단단하게 경화되었는데 회청색 경화면의 두께는 20㎝ 가량이고 그 외측 적갈색 소토층의 두께는 25㎝ 정도로 요체의 벽면과 천정이 높은 화기를 받아 견고하게 고착되었음을 알 수 있다, 천정과 측벽에서 수리흔은 확인되지 않았다. 소성실의 선단부에서는 최종 번와 시의 암키와가 3열로 층을 이루면서 그대로 남아 있어 조업 당시의 적재 방법을 알 수 있다.

연도는 가마의 폐기 당시 크게 파괴되어 측벽과 배연구가 모두 유실되었고 바닥의 일부만 남아 있다. 소성실에서 연도로 통하는 소성실의 후미부는 가마 발견 시 견고하게 막혀 있었는데 이것은 최종 번와 이후 연도를 파괴시킨 다음 돌과 흙으로 채워 인위적으로 매몰시킨 것으로 보인다. 연도는 소성실 후단부와 연결되는 바닥의 너비가 좁은 편이나 후미에 이를수록 너비가 점차 확대되어 가마의 주축 방향과 평행하게 수키와 1매씩 4열로 바닥에 부설한 구조이다. 연도 후미의 좌측에는 배연구를 설치하기 위한 원형의 구덩이가 확인되었다.

요전부에서는 가마의 내부에서 꺼낸 목탄재·소토·와편 등이 혼합 퇴적된 회구부가 확인되었다. 여기에는 가마의 주축 방향과 동일하게 타원형의 구덩이 조성되었는데 길이 2.1m, 너비 2.9m, 깊이 70㎝ 가량으로 비교적 소형이다. 구덩의 중심부는 퇴적층의 두께가 약 120㎝ 가량인데 목탄재·소토·와편 등이 혼입된 층이 약 7개 층으로 구분된다. 이러한 층위는 대략 3개 층으로 구별되는데 이러한 점은 가마 내부에서 적어도 3회 이상의 조업이 이루어졌음을 의미한다.

상곡리 기와 가마의 조업 연대를 알 수 있는 충분한 자료는 확인되지 않았다. 그러나 가마의 형태가 지하식 등요로 분류되고 암·수키와에 나타나는 제작 기법과 표면에 타날된 고판문을 고려하면 상곡리 기와 가마는 조선 전기에 해당하는 15세기 전반에 조업이 이루어졌다고 추정된다.

[현황]

마산 상곡리 기와 가마터 유적은 현재 택지 조성 후 아파트 등 건물들이 들어서 도시화된 상태이다. 유적을 알릴 수 있는 표지판이나 보호 시설은 마련되지 않았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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