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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210024
한자 緣島女子喪輿-
분야 생활·민속/민속,문화유산/무형 유산
유형 놀이/놀이
지역 경상남도 창원시 진해구 연도동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정정헌

[정의]

경상남도 창원시 진해구 연도에 전승되는 민속놀이.

[연도 개관]

연도(緣島)는 시에서 동남쪽으로 17.2㎞정도 떨어진 면적 0.26㎢의 작은 섬으로 언제부터 사람이 살았는지는 명확하지 않다. 그러나 고려 시대에 왜구들이 이 섬 주민들의 가재도구를 약탈하여 도주한 기사로 미루어 350여 년 전에 청주 한씨가 들어와 정착하였다는 주민들의 말과는 달리 이미 오래 전에 사람이 생활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섬의 대부분이 깎아 세운 듯 절벽으로 이루어진 해식애(海蝕崖)의 가파른 구릉(丘陵)[해발 107m]으로 이루어져 있고 경지 면적이 계단식으로 이루어진 0.1㎢ 미만의 발이 고작이라서 어업(漁業)으로 생활을 꾸려 왔다.

[생성 배경]

연도의 남자들은 고기떼를 찾아 전라도나 강원도 등지로 명절 때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떠나 있었기 때문에 상(喪)이 날 경우 어쩔 수 없이 여자들만으로 장례를 치러야 했다. 이러한 일이 자연스레 연도의 고유한 장례 풍습으로 굳어진 것이다.

연도는 워낙 작은 섬이어서 묘지 조성으로 그나마 작은 생활 터전이 잠식되는 것을 막기 위해 마을 앞에 위치한 무인도(無人島)인 솔섬을 공동묘지로 사용하였다. 따라서 마을에서 치러지는 장례는 여인들로 구성된 상여꾼에 의해 본섬에서 솔섬까지 옮겨지는데 이때 구연되는 상여 소리가 ‘연도 여자 상여 소리’이다.

[노랫말의 구성과 특징]

‘연도 여자 상여 소리’는 발인제 때 부르는 소리는 회심곡을 담고 있으며, 4음보 1행을 취하고 있다. 그리고 운상(運喪)할 때는 산염불이 가미된 소리로 역시 4음보 1행의 틀을 유지하고 있다. 또 물의 상여소리는 처음부터 끝까지 “어어화”형 하나만을 구연하는 단일형을 취하고 있다.

‘연자 여자 상여 소리’는 상두꾼도 여자고 앞소리꾼도 여자이다. 요령(謠鈴) 대신 꽹과리와 징이 등장하는 것도 내륙 지방과는 사뭇 다르다. 그리고 「회다지 소리」나 「달구 소리」와 같은 「묘 다지기 소리」는 없고, “어어넘자 가래야”만 반복한다든지 아니면 “어어여루 가래야”를 반복하면서 봉분 짓는 작업을 한다. 봉분이 완성되고 나면 봉분 주위를 돌면서 「칭칭이 소리」를 한다는 것도 특이하다. 이는 일종의 뒤풀이로 상주와 상여꾼을 위로하기 위해 구연한다고 한다.

[과정]

1. 하직 인사(下直人事)를 하는 출상 전야(出喪前夜)

출상(出喪) 전날 밤 상두꾼들이 앞소리꾼의 만가(輓歌)에 맞춰 빈 상여를 메고 동네를 한 바퀴 돌면서 망자(亡者)가 이웃에게 하직 인사를 고하는 의식을 치른다. 망자의 하직 인사를 빌어 상두꾼들이 장례를 치르는 예행연습이라고 볼 수 있으며 마을의 잔치나 큰일을 치르는 전야제와 같은 성격을 지녔다.

2. 발인제(發靷祭)

영구가 부두로 운송되기 직전 행하는 의식이다. 발인제는 고인의 집 앞에서 행하기도 하지만 대개는 마을 중앙에서 행한다. 고인이 평생을 살아온 정든 섬을 이제 영원히 떠나는 것을 아쉬워하며 섬마을 사람들이 모두 참석하여 애도한다. 이때 부르는 소리는 인생무상, 불효 의식, 석별의 정을 담고 있는 회심곡이 중심이 된다. 먼저 상여를 어르면서 앞소리꾼이 “어이화 어이화 에가리넘자 어어화”하고 매기면 상여꾼들이 뒤따라 “어이화 어이화 에가리넘자 어어화” 하고 받는다. 구연되는 노랫말은 다음과 같다.

세상천지 만물 중에 사람밖에 또 있던가/ [후렴 : 어어화 어어화 에가리넘자 어어화]/ 여보시오 시주님네 내 말 잠시 들어보소/ [후렴]/ 아버님 뼈를 타고 어머님 살을 빌려/ [후렴]/ 칠성님께 명을 빌고 석가여래 복을 빌어/ [후렴]/ 세상 탄생 나가지고 한두 살에 철을 몰라/ [후렴]/ 부모은공 내 못하고 오늘 백발 잠시구나/ [후렴]/ 어제 그제 소년이더니 저녁 나절 병이 오네/ [후렴]/ 잔약한 이내 몸에 태산 같은 병이 오네/ [후렴]/ 인삼 녹용 쓰기런들 그 약인들 소용 있나/ [후렴]/ 무녀들이 굿을 한들 그 귀신들 소용 있나/ [후렴]/ 경문쟁이 데려다가 경 읽은들 소용 있나/ [후렴]/ 부르는 것 엄마로다 찾는 것이 냉수로다/ [후렴]/ 일가친척 많기런들 대신갈이 뉘 있겠노[후렴]/ 친구들이 많다 해도 동정할 이 뉘 있겠노/ [후렴]/ 삽작걸에 처사손님 날 데리러 왔다하여/ [후렴]/ 쇠뭉치로 등을 치며 어서가자 재촉하네/ [후렴]/ 서른셋 상두꾼아 요령 소리 발맞춰라/ [후렴]/ 날씨 좋고 해도 길어 많이 놀고 내가련다/ [후렴]

3. 운구(運柩)

발인제가 끝나면 관을 상여에 실어 집을 나서는데 망자의 집 앞에서 왼쪽으로 세 번을 돌고 상여의 앞부분이 집을 향해 목례하듯이 세 번을 숙여 하직 인사를 하고 출발한다. 상여는 큰길로 마을을 한 바퀴 돌아 부두에 이르며 범선(帆船)으로 장지인 솔섬으로 이동하며 마을이 한 눈에 들어오는 지점에 이르면 타원을 그리며 배를 한 바퀴 돌려서 혼백이 다시는 오지 못할 고향과 하직 인사를 하도록 하여 섬사람들이 건너야 할 숙명적인 통과 의식을 보여 준다. 배가 장지인 솔섬에 닿으면 미리 파 둔 모혈(摹穴)까지 가파른 산길을 오르는데 이때는 상여에 줄을 매어 문상객까지 합세하여 끌어 준다. 다음은 발인제를 마치고 떠날 때 하는 소리이다.

북망산천 멀다더니 대문밖이 북망산이네/ [후렴 : 어어화 어어화 에가리넘자 어어화]/ 명사십리 해당화야 꽃 진다고 서러마라/ [후렴]/ 필적에는 고이피고 질 적에는 슬퍼지네/ [후렴]/ 명년삼월 봄이 오면 너는 다시 피건마는/ [후렴]/ 불쌍한 사람인가 한번가면 못 오는고/ [후렴]/ 벽상에 그린 닭이 홰치거든 오실런가/ [후렴]/ 높은 산정 고목나무 움나거든 오실런가/ [후렴]/ 움이 난들 싹이 난들 온다소리 할 수 있나/ [후렴]/ 떠나는 이 마당에 자공이나 찾아보자/ [후렴]/ 우리 자공 이리 와서 노잣돈이나 많이 달라/ [후렴]/ 일가친척 많다 해도 노자 한 잎 안 놓구나/ [후렴]/ 서산에 해가지니 내 갈 길이 바쁘구나/ [후렴]/ 이내몸이 떠날 때는 인사 없이 떠날소냐/ [후렴]/ 동네어른 잘 계시오 이내 몸은 떠납니다/ [후렴]

연도에서 솔섬까지 가장 가까운 거리가 400m 정도고 부두에서는 대략 500m 거리이다. 상여를 배에 싣고 바다를 건너면서 구연하는 소리는 다음과 같다.

섬아 섬아 연도 섬아 오늘날에 이별이야/ [후렴 : 어어화 어어화 에가리넘자 어어화]/ 고향산천 떠나가면 언제다시 또 오리까/ [후렴]/ 모진강풍 불지마라 이 강으로 건널란다/ [후렴]/ 늙고 젊고 내 친구야 신나게도 잘 가구나/ [후렴]/ 날씨 좋네 날씨 좋네 오늘날에 날씨 좋네/ [후렴]/ 인간 팔십 다 살아도 가는 길이 서글 퍼라/ [후렴]

4. 솔섬에 내려 장지까지

솔섬에는 연도 사람들의 공동묘지가 별도로 마련되어 있다. 개별적으로 묘소를 마련하는 사람도 있지만 대개는 공동묘지를 이용한다. 연도 부둣가에서 상여를 실은 배가 솔섬에 도착하면 대개는 제바이 끝 쪽에서 장지로 오른다. 솔섬은 주위가 가파른 절벽으로 되어 있고 장지까지 가는 길도 험하다. 따라서 노랫말 없이 뒷소리 일부인 “어어화 어어화”로 앞소리꾼과 상여꾼이 메기고 받으면서 장지로 오른다.

5. 장지에서 무덤을 만들 때

묘혈까지의 운구가 끝나면 바로 상두꾼들은 봉분을 만들 흙을 옮겨오게 되는데 이 고된 작업도 여자들 몫이다. 바위가 많은 솔섬은 흙이 귀하여 여자들이 사방으로 흩어져 바지게, 함태기 등으로 흙과 잔디를 운반하여 봉분을 짓는다. 이때 앞소리꾼이 “어어넘자 가래야” 또는 “어어여루 가래야”하고 메기면 일꾼들도 같은 소리를 반복으로 받으면서 봉분을 짓는다. 뭍에서처럼 「회다지 소리」나 「달구 소리」가 없는 것도 특징이다.

어어여루 가래야 가래소리도 잘하구나/ [후렴 : 어어여루 가래야]/ 힘차게도 잘도 한다 우리 대맥군 잘 하누나/ [후렴]/ 떼도 이고 흙도 여서 이 봉분을 지어볼까/ [후렴]

6. 봉분을 다 짓고 작별을 할 때

봉분을 다 짓고 평토제가 끝나면 상여꾼들이 무덤 주위를 돌면서 소리를 한다. 이때 구연하는 소리는 「쾌지나 칭칭나네」이다. 앞소리꾼이 앞소리를 메기면 상여꾼들은 “쾌지나 칭칭나네”로 뒷소리를 받는다. 이는 망자를 보내고 슬픔에 젖어있는 가족들과 문상객들의 마음을 위로하고 상여꾼들의 피로를 풀기위한 것이다. 이때도 꽹과리와 징이 동원된다. 이 역시 뭍의 내륙 지방에서는 찾아 볼 수 없는 특이한 과정이다.

오늘날에 하직이야/ [후렴 : 쾌지나 칭칭나네]/ ○씨 망령 들어보소/ [후렴]/ 우리 친구 떠납니다/ [후렴]/ 새 잔디로 옷을 삼고/ [후렴]/ 황토 흙을 밥을 삼고/ [후렴]/ 주야평생 누웠으니/ [후렴]/ 어느 친구 찾아올까/ [후렴]/ 내 누운 무덤 위에/ [후렴]/ 논을 친들 내가 알까/ [후렴]/ 밭을 친들 내가 알까/ [후렴]/ 한심하기 짝이 없네/ [후렴]/ 많이 노소 많이 노소/ [후렴]/ 늙고 젊고 많이 노소/ [후렴]/ 살아생전 많이 놀고/ [후렴]/ 이 시간에 이별이야/ [후렴]

연도로 되돌아오는 뱃길에서도 이 의식과도 같은 여흥은 계속되며 우스갯소리와 섬 아낙네들 특유의 걸쭉한 육담(肉談)으로 슬픔에 젖어 주체하지 못하는 상주를 웃기기도 하면서 바다 위에서 춤과 소리, 그리고 웃음판이 한데 어우러져 계속된다.

[현황]

연도의 장례 풍속도 지금은 옛날과는 사뭇 다르다. 1970년대 이후부터 번거롭고 까다롭던 장례 절차가 사라지기도 하고, 더러는 간소화되어 지금은 육지에서 행하는 새로운 장례 문화와 다를 바가 없게 되었다. 다행히도 ‘연도 여자 상여 소리 보존회’가 결성되어 마산에서 개최된 제32회[2003. 7. 19~7. 20] 경상남도 민속 예술 축제에서 장려상을 받기도 하였다. 시간과 공간적 제약 때문에 의식의 절차와 상여 소리가 축소되고 변형되어 비록 원형과는 거리감이 있지만 이는 어쩔 수 없는 상황 변화이다.

한편, 민속적인 측면에서 연구되어져야 할 또 다른 연유(緣由)가 구전되어 오고 있어서 밝혀 둔다. 오래 전 이 섬의 동쪽에 장사샘이 있어서 남정네가 이 샘물을 마시면 악인의 운명을 지닌 장사(壯士)가 되거나 불구가 되곤 하여 견디다 못한 마을 사람들이 이 샘을 메워 버린 후로 힘센 남자를 기피하는 경향이 생겼다. 그래서 여자들이 생활을 주도하게 되었다고 한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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