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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릿고개 영세민 취로사업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2A010202
지역 경상남도 창원시 성산구 귀산동 석교리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정정헌

1959년 9월에 발생한 태풍 사라호로 마을 저수지가 무너지는 큰 피해를 입었으나, 몇 년 동안 복구할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었다.

당시 마을 이장이었던 이종현 옹은 영세민 취로사업과 복구공사를 병행하기로 작정하였다. 정부의 취로사업 목적은 영세민들의 연명(延命)에 있었는데, 이종현 옹은 연명과 저수지 공사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다고 여긴 것이었다. 이 시절은 봄에는 들로, 가을에는 산으로 쑥과 꿀밤을 줍는다고 인산인해를 이루었을 정도였으니 마을 사람들은 대환영이었다. 이 어렵고 힘든 시절에 밀가루 공사가 있으니 그 얼마나 반가웠던 일이겠는가.

1964년 봄 당시 영세민을 위한 취로사업으로 양곡(소맥분)을 각 마을마다 배정했는데, 1개 면에 한두 개 정도 배정되었다. 그때는 보릿고개 기간이라 어른들도 쌀알 하나 없는 시래기밥과 꿀밤으로 밥을 지어 먹으면서도 자식들에게는 밀가루라도 쑥에 섞어 털털이를 만들어 먹일 요량으로 애쓰던 시기여서, 영세민들의 취로사업은 그야말로 마른 땅에 단비 같았다.

취로사업이 시작되자 끼니가 없어서 못 먹고 살았던 영세민들이 무슨 힘이 생겼던지 700m나 먼 산과 들까지 가서 40~50㎏이나 되는 바위들을 지게에 지고 그 험한 산길을 올랐지만 힘들어하는 기색이라고는 전혀 없었다. 그들의 마음속에는 오로지 오늘 일한 대가로 받은 밀가루로 쑥털털이라도 푸짐하게 해서 온 가족이 배불리 먹을 수 있다는 생각밖에는 없었으리라. 중간에 취로사업이 중단되어 한때 어려움이 있었지만 저수지 복구공사만큼은 다시 마을 주민들만의 힘으로 마무리 지을 수 있었다.

[정보제공자]

이종현(남, 1935년생, 귀산본동 거주)

이두봉(남, 1930년생, 석교마을 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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