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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남저수지에 잠긴 옛길의 추억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2B010103
지역 경상남도 창원시 의창구 동읍 석산리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이상현

석산마을 동쪽에는 철새도래지로 유명하여 2008년 제10회 람사르총회 공식방문지로 지정된 주남저수지가 자리하고 있다.

주남저수지 동쪽에는 낙동강 하류에 형성된 충적평야인 대산평야가 위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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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남저수지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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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남저수지 전경

현재 주남저수지는 북에서 남으로 내려오면서 산남저수지, 주남저수지, 동판저수지 등 크게 3개 구간으로 나누어져 있다. 주남저수지가 이와 같은 모습을 갖추게 된 것은 일제강점기(1922년) 이후이다. 1920년에 시작된 제1차 산미증식계획의 수립과 함께 낙동강 하류의 배후 습지를 둑으로 둘러막아 현재와 같은 형태의 주남저수지를 만들었던 것이다.

1922년 이전의 주남저수지는 북에서 남으로 곳곳에 5개의 작은 저수지와 늪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이 작은 저수지의 주변으로는 억새와 갈대 등의 목초지가 형성되어 있었다. 1916년 측량하여 만들어진 위치도에서는 작은 저수지 5개소가 확인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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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석산마을 위치도」

현재 석산마을에 거주하는 마을 사람들에 따르면, 이 작은 저수지의 사이사이로 난 길을 따라 석산마을에서 인근 대산면과 김해시 진영읍은 물론이고, 인근의 신방초등학교도 다녔다고 한다. 더불어 50~60년 전까지 주남저수지 인근에 소를 풀어 키웠다고 한다. 마을 주민 김기수 씨는 어릴 적 이곳에 소를 풀어 키우다가 잃어버려 찾는 데 애를 먹었다고 한다. 그 시절에는 주남저수지 인근 동읍대산면 일대에서 소를 풀어 키우는 사람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 당시만 하더라도 석산마을 사람들은 주남저수지 주변에는 소를 놓아 키우고, 저수지에서는 민물고기를 잡아서 생계를 유지하였다고 한다. 김상균 씨의 경우, 주로 통발과 가래로 잉어를 잡았다. 김상균 씨는 초등학교에 다니던 시절, 아버지가 16㎏ 정도 되는 큰 잉어를 가래로 눌러 잡아서는, 이것을 지게에 지고 현재의 창원시 봉림동에 살고 계시는 외할머니께 가져다 드렸던 기억을 가지고 있다. 김보원 씨에 따르면, 약 20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주남저수지에서 30분 정도만 그물질을 하면 민물새우와 민물조개 등을 사과상자 하나 채울 만큼 잡을 수 있었다고 한다. 이렇게 불과 몇십 년 전만 하더라도 주남저수지에서는 다양한 민물 어류가 살았으며, 이를 인근 주민들이 포획하여 생활하였던 것이다.

그러다가 1964년 「어업진흥법」이 마련되면서 고기잡이가 허가제로 바뀌었고, 1967년에는 석산마을 김태희 씨가 어촌계를 조직하여 내수면 어업을 조직적으로 실시하게 되었다.

현재는 동읍의 내수면어촌계장 김산 씨와 김일·김용희 씨 등 석산마을 사람 세 명이 어촌계원으로 주남저수지에서 민물양어장과 고기잡이를 하고 있다. 김용희 씨에 따르면, 과거에는 주남저수지에서 민물장어가 많이 잡혔으나, 1983년부터 시작된 낙동강 하구의 제방공사가 이루어진 후부터는 잡히지 않는단다.

이와 같이 주남저수지는 작은 저수지들로 이루어졌던 과거에는 석산마을 사람들은 물론이고 근처 마을 사람들이 그 사이로 난 길을 교통로로 이용하며 주변 목초지에서 소를 키우고 여가 시간에는 민물고기 잡이를 하였으나 1922년 일제에 의해 현재와 같은 모습으로 확장·정비되고, 1980년대 낙동강 하구 제방공사가 이루어지면서 지금의 모습으로 정비되는 변화를 겪었다. 그 후로도 주남저수지는 어촌계의 생업 공간으로 여전히 제 몫을 담당하고 있으며, 인근 논과 밭에 농업용수를 공급해 주고는 있으나 주위 목초지에서 방목하던 소는 더 이상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정보제공자]

김기수(남, 1928년생, 석산마을 거주, 석산마을 경로회장)

김보원(남, 1932년생, 석산마을 거주)

김상균(남, 1941년생, 석산마을 거주)

김용희(남, 1948년생, 석산마을 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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