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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비탈에서 천석을 이룬 지풍헌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2B010201
지역 경상남도 창원시 의창구 동읍 석산리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이상현

석산마을은 현재 상산김씨 동성 마을이다. 이 마을에서는 상산김씨가 살기 전엔 전의이씨가, 그 이전에는 충주지씨가 자리를 잡고 살았다고 전한다.

마을 사람들에 따르면, 석산마을에 처음으로 터를 잡은 사람은 천석꾼으로 알려진 지풍헌(池風憲)이라고 한다.

석산마을에 지씨가 살았다는 것은 여러 가지 면에서 확인된다. 먼저 충주지씨 족보를 살펴보면 충주지씨 26세손 지몽동(池夢東)부터 창원시 동읍 석산리에 거주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또 현재 백월산 자락에 위치한 충주지씨 묘를 비롯하여, 1827년 4월에 동면(東面) 가월리의 효자 류광익을 관아(官衙)에 천거하는 장계(狀啓, 관아 사또에게 올리는 글)의 각 마을 추천인을 기록하는 난에 석산마을 대표로 지중린(池重鱗)·김봉세(金奉世)·김봉상(金奉尙)이 표기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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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산마을과 백월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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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면각리거민소장」

이로써 추정컨데 당시 석산마을의 지중린은 같은 마을에 거주하는 김봉세와 김봉상 보다 나이가 많은 연장자이거나 마을에서 차지하는 위상이 높은 사람으로 추정된다. 지중린의 이름은 『충주지씨상원수공파보』에서도 확인되는데, 충주지씨 32세손으로 자(字)는 윤오(閏五)이며, 부인은 김해김씨이다.

충주지씨의 족보를 살펴보면, 1400년대 초기 충주지씨 26세손인 지몽동이 석산마을로 들어와 32세손인 지중린을 거쳐 33세손인 지달원까지 거주하였고, 1850년대 후기 34세손인 지경칠 대에서 인근 창원시 북면 동전리로 이거한 것이 확인된다. 그렇다면 충주지씨는 석산마을에서 26세손~33세손까지 총 8대, 약 240년간 거주한 것이다.

현재 석산마을 인근에 거주하고 있는 충주지씨 37세손 지봉재 씨와 지청수 씨에 의하면 윗대 어른들은 굉장한 부자였으며, 증조부 대에 동면 석산리에서 북면 동전리로 이거했다고 한다. 석산마을에 선조들이 거주할 당시, 충주지씨는 다른 마을 사람이 (석산) 마을 앞을 지날 때 함부로 말을 타고 지나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고 한다. 또 두 사람은 어릴 적 매년 시월이면 묘사를 지내기 위해 석산리를 찾았다고 기억하고 있다.

동읍 일대에 전해 내려오는 전설에 의하면, 조선시대 풍수지리와 관련하여 유명했던 성지[일명 성지도사] 스님이 동읍 일대에 산재한 모든 마을들을 둘러보고 생업과 세거지의 좋고 나쁨을 매겼는데, 첫째는 산남이요, 둘째는 석산이며, 셋째는 다호로서, 특히 그 중 둘째인 석산은 학자와 선비가 많이 배출될 지형이라 했다고 전한다. 그만큼 석산마을에 풍수적으로도 뛰어난 명당이 많다는 이야기이다. 천석꾼 지풍헌은 이러한 점을 생각하여 지금의 석산마을회관에서 백월산 쪽으로 올라가는 안쪽[현 윗마을]에 터를 잡은 것으로 생각된다.

윗마을의 북쪽에는 서에서 동으로 흐르는 개울이 있었다. 마을 사람들은 마을 안쪽에서 바깥쪽의 석산마을회관으로 내려오는 시멘트 포장된 길이 원래 개울이 흘렀던 곳이라고 한다.

현재와 같이 포장되기 전에 이 길은 리어카가 다니기도 힘들 정도로 좁은 길이었다고.

이를 토대로 살펴보면 지풍헌이 터를 잡은 윗마을은 인근 지역의 명산인 백월산을 주산으로 하고, 마을의 좌향을 동으로 잡아 좌청룡 우백호가 좌우로 서 있는 마을 안쪽 높은 곳이 된다. 그리고 남북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막고, 마을 옆을 흐르는 개울물을 식수로 사용하며, 마을 아래 경작지에 물을 관개하여 생업 활동을 한 것으로 생각된다.

그 후 차례로 석산마을에 들어오게 되는 전의이씨상산김씨는 석산의 윗마을에 들어오지 못하고 마을입구 쪽 아랫마을에 자리 잡게 된다.

현재 마을 주변 안돌미골과 비정골에는 지풍헌 및 지씨의 묘역이 자리하고 있다.

이 묏자리는 인근 지역에서 가장 좋은 명당자리로 알려져 있다. 이는 지씨 문중 사람들이 그만큼 이른 시기에 묘를 썼기 때문에 좋은 터를 차지할 수 있었던 것으로 생각되며, 또한 이를 통해서도 석산마을에 가장 먼저 들어온 성씨가 지씨였음을 추정케 한다. 그리고 1827년 효자 류광익을 천거하는 장문의 기록으로 보아 19세기 초까지 충주지씨의 세력이 석산마을을 비롯한 동읍 일대에서 일정한 영향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정보제공자]

김기수(남, 1928년생, 석산마을 거주, 석산마을 경로회장)

김근희(남, 1935년생, 창원시 동읍 금산리 거주, 상산김씨종중수성회 회장)

지봉재(남, 1935년생, 창원시 북면 동전리 출신, 마산시 양덕동 거주)

지청수(남, 1948년생, 창원시 북면 무곡리 거주, 충주지씨영남종회 총무)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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