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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산마을의 불종과 충효비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2B020208
지역 경상남도 창원시 의창구 동읍 석산리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이상현

지방도 30호선에서 석산마을을 동서로 가로지르는 길이 있다. 바로 석산마을 입구에서 마룡으로 넘어가는 신작로로서 일제강점기에 개설된 길이다.

불종과 충효비는 이 길의 중심부 가장자리에 자리하고 있는데, 충효비는 북쪽에, 불종은 남쪽에 자리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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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로 변의 불종과 충효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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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로

이 충효비는 1979년 1월 25일 건립되었다.

인근 창원시 북면 무곡리 양촌마을에 세워진 충효비가 1979년 4월 28일 건립된 것보다 조금 이른 시기에 건립된 것으로, 충효비의 아랫부분에는 동양사상의 근본은 忠과 孝라. 忠은 국가와 민족에 대한 충성이고, 孝는 부모를 잘 섬기는 효도를 말한다.”는 설명문까지 적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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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효비

충효비는 또한 마을 사람들이 가장 빈번하게 다니는 마을 중심 길에 위치하여 마을을 출입하는 사람들은 누구나 정신을 가다듬도록 하였다. 이 충효비는 조선시대 사회윤리였던 ‘집안에서는 부모님께 효도를 하고, 집 밖에서는 국가에 충성을 다하여라[內孝外忠]’를 이어받은 것으로, 이 마을 주민들이 마음속에 무엇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는지를 알 수 있게 하는 하나의 상징적인 표상이며, 마을 주민이 생활하면서 가슴 속에 품고 있는 화두(話頭)와 같다고 할 수 있다.

충효비 옆의 불종은 위급할 때 사용하는 비상종으로, 마을에 불이 나거나 도둑이 들어 위급한 상황이 생겼을 때 사용하려고 구입, 설치한 것이다.

최근 불종을 사용한 것은 2001년 초저녁에 마을 위쪽의 끝 집인 김재순 옹 집에 화재가 났을 때이다.

당시 화재를 제일 먼저 목격한 주민이 불종을 “따따따따~” 하고 급하게 울려 마을 주민에게 위급한 상황을 알렸다. 불종 소리를 듣고 달려 나온 주민들은 화재를 확인하고 모두 물동이와 괭이, 삽, 빗자루 등 소방 기구를 들고 김재순 옹 댁으로 가서 불을 껐다.

이렇게 석산마을에서는 충효비를 통해 마을 사람들의 정신을 충효로 가다듬으며, 불종을 통해 마을에서 발생한 위기를 마을 주민이 혼연일체가 되어 함께 극복하고 있다. 사회가 발달하고 경제가 성장해 가면서 희미해져 가는 충·효의 정신과 공동체 정신을 일깨워 주는 석산마을의 충효비와 불종은 다른 마을과는 구별되는 이 마을만의 특징이라 할 수 있다.

[정보제공자]

김재순(남, 1920년생, 석산마을 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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