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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천구천에 매화가 피면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2E010202
지역 경상남도 창원시 의창구 북면 외감리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배상현

높고 푸른 가을 하늘 아래 병풍처럼 마을을 두른 천주산은 단풍으로 수를 놓았다. 멀리 백월산천주산을 향하여 눈짓하며 섰다.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기라도 하듯 옹기종기 집들이 둘러앉았는데 그 가운데로 맑은 신천천이 흐르고 있다. 여기가 외감마을이다. 마을에 들어서면 넓은 들을 배경으로 ‘달천구천(達川龜泉)’ 표지판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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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에서 바라본 천주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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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천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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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천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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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천구천

사실, 온천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북면 마금산을 찾는다. 외감마을은 그 길목에 있는데도 지나치기 쉬운 곳이다. 먼 데서 오는 사람들이 창원 하면 공업 도시를 연상하듯, 북면 하면 마금산온천만을 떠올리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넓은 들과 맑은 시내가 어울려 자연의 풍광이 빼어난 곳이 이곳 외감마을이다. 그래서일까, 이곳에는 17세기를 풍미한 미수(眉叟) 허목(許穆) 선생의 자취가 마을 곳곳에 서려 있다.

추수가 끝난 넓은 들녘을 가로지르면 금세 새터에 이른다. 단감나무가 숲을 이루었는데, 기와지붕이 보이는가 싶더니 곧이어 달천정(達川亭)이다. 한줄기 신선한 바람이 이마를 스친다. 방해문(放海門)! 분명 정문에 그렇게 적혀 있다. 넓은 바다를 향하여 열려 있다는 뜻일까? 마당에 들어서서 사방을 둘러보고 마루에 오르면 눌재(訥齋) 김병린(金柄璘)이 찬한 「달천정기(達川亭記)」가 눈에 들어오는데, 정자가 들어서게 된 내력을 이렇게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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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주산 진달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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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해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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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천정기」

“옛날 문정공(文正公) 미수 허 선생이 중년의 나이에 궁벽한 일을 만나 손님으로 숙식하며 영남에 머물렀는데 일찍이 선대의 별업(別業)이 있었던 까닭에 우리 고을에 오게 되어 이 동네에 머물렀다. 이로부터 달천동은 자못 더욱 명승지로 자리를 잡아 이 고을을 지나는 사람들이 들러 놀고 가지 않음이 없었다.”

미수 선생은 허목(許穆)으로 남인 실학의 거두였다. 그는 1595년(선조 28) 서울에서 태어나 1682년(숙종 8) 88세를 일기로 생을 마쳤는데, 사십대 후반 이곳 감계에 들어와 수년간을 머물며 지식인 사회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그리고 훗날 고장 사람들은 그가 머물던 자리에 정자를 지어 기렸던 것이다.

그러면 달천구천은 어디에 있을까? 달천정에서 남쪽으로 50~60m 남짓 거리에는 온 동네 사람들이 먹고 있는 작은 우물이 하나있다. ‘도지정 32호’라는 표석과 함께. 마을에서는 그냥 ‘거북샘’이라 부르는데, 안내판을 보니 거북처럼 생겼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란다. 주변은 축대처럼 돌을 쌓아 둘렀고 우물은 뚜껑이 덮여져 있다. 시멘트로 마감한 것이 짐작에는 1970년대 새마을운동의 한 증거가 아닐까 한다.

길을 넓혀 수레가 다닐 수 있게 하고 우물가를 깨끗이 정비하였으니 일거양득을 이룬 셈이다. 하지만 옛 정취를 잃은 것은 아쉬운 대목이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옛사람도 지금 사람도 모두 숙원으로 이룬 사업이었을 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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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천구천

그런데 우물 가까이 다가가서 보면 옛 모습이 없지는 않다. 뚜껑을 열어 우물 속으로 고개를 내밀어 보니 거북 한 마리가 살아 있는 듯 물속에 앉아 있는 것이 아닌가. 마음을 가라앉히고 가만히 살펴보아야 보인다. 그렇다 ‘구천’은 거북이 사는 우물이라는 뜻이다.

거북은 천년을 산다고 했던가? 거북샘은 지금도 마르지 않고 물 또한 차갑다. 아마 그 비결은 이 거북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거북은 미수 선생이 직접 돌을 깎아서 만든 것이라 한다. 샘은 아직도 새터의 젖줄이다. 비록 양수기로 퍼 올리긴 하지만 여전히 그 쓰임을 다하고 있고, 거북은 엄연히 살아 있는 듯하다.

그뿐이 아니다. 우물가에는 수백 년은 족히 됨직한 매화 한 그루가 서 있다. 이 또한 미수 선생이 직접 심은 것이라 한다. 지금도 봄철이면 꽃을 피우는데 그 향기가 온 마을에 넘쳐난다고 한다. 가까이 가서 살펴보니 원 둥지는 하나인데 썩은 지 오래고, 썩은 둥지에서 새 순이 여럿 나서 크고 작은 밑둥치를 이루고 있다. 마치 선생의 유묵을 만나기라도 한 듯 반갑다. 미수 선생에게 매화는 어떤 존재였던가? 「묵매(墨梅)」라는 시가 있어 한 대목 읊조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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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화나무

묵은 매화 언 가지[古梅寒杈枒]

반쯤 죽었는데[寒杈枒摧折半枯半死]

눈 가에 앙상한 몇 가지[雪邊瘐踈三兩枝]

기이한 꽃망울 터트렸네[吐奇葩]

밤하늘 수를 놓은 은하수 같고[夜如河]

둥근 달은 언 가지에 둥실 걸렸네[一輪明月上氷柯]

-『미수기언(眉叟記言)』 권63, 습유(拾遺) 시(詩) -

오랜 세월이 지났건만 선생이 머문 터에는 정자가 들어서 있고, 기리는 마음들이 이어지고 있다. 우물에는 또한 선생이 놓은 거북이 살고 있다. 그 우물가에 매화가 만발할 즈음이면, 매화 향기와 함께 선생의 체취가 느껴질 것만 같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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