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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물 캐는 게 우째 재미났던지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2E020204
지역 경상남도 창원시 의창구 북면 외감리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황은실

봄날이 찾아오면 마을 아낙네들은 이때를 놓치지 않고 삼삼오오 모여 천주산에 나물을 캐러 갔다.

벌써 30년도 지난 일이 되었던가. 열여덟 살에 함안 칠곡에서 시집온 신옥순(74세) 할머니는 그때의 추억을 떠올리며 이야기를 들려주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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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지봉에서 본 천주산

“둘이나 서이 어울려서 아침 먹고 천주산에 올라갔지. 점심도시락 싸들고 말야. 주로 봄에 (나물을) 뜯으러 많이 갔어. 산에 올라가면 심심하잖아 그럼 노래를 부르는기라. 산에 많이 나물 끊으러 다녔거든. 취나물, 고사리 그게 그렇게 맛났어. 산에 가면 고사리가 요래오래 버글버글 (모여) 있어 끊으면 재미났어. 깨치미도 모돌모돌하게 모여 있지. 그런데 그것은 둥치가 살이 쪄 맛이 없지. 맨날 가서 뜯어도 우찌 재미나던지.”

천주산에는 취나물, 매야초, 비비초, 뚜깔초, 귀수, 두릅, 합다리, 깨치미, 고사리 등 다양한 종류의 산나물들이 곳곳에 산재해 있었다. 신옥순 할머니는 무성하게 피어 있는 산나물을 보면 기분이 좋아져서, 그것을 뜯는 재미에 시간 가는 줄 몰랐다고 한다.

하루 종일 나물만 캐다 보면 심심하다. 온종일 험한 산을 오르고 내리기에 온 몸이 지치기까지 한다. 이럴 때 마을 아낙네들은 너나할 것 없이 다 함께 노래를 불러 피곤함을 달래곤 했단다. 그들이 부른 노래는 우리가 한 번쯤 들어봄직한 「청춘가」, 「오동동 타령」, 「밀양아리랑」, 「도라지 타령」 등이다.

인터뷰 도중 한 곡 청했더니 신옥순 할머니가 흔쾌히 노래를 불러주신다. 옆에서 조용히 노래를 듣고 계시던 할머니들도 덩달아 신이 나 어느새 한 바탕 노래와 춤사위가 벌어졌다.

「청춘가」

이팔청춘 소년들아 백발보고 반대마라/ 어정어정 청춘이지 백발이 잠시로다/ 노새노새 젊어서 노라. 늙고 병들면 못노라리/ 어정어정 소녀들아 오늘 백발이 잠시로다/ 얼씨구나 절씨구나 아니 노지는 못하리라

신작로 넓어서 길가기 좋구요/ 전기불 밝아서 좋다 임찾기 좋구나/ 술집에 아줌마 새고마여(?) 좋구요 전봇대 기다리는 좋다/ 모가야 좋구나/

후렴: 잘한다. 참 잘한다(김순득 할머니)

니가 잘나서 일생이 되어냐/ 내눈이 어둡아서 좋다. 간장이 떼놓으라/ 각시를 말은 안다. 각시를 말 안다/ 사람이 각시를 좋다 매거리 말어라

노래를 마치자 신옥순 할머니는 나물 캐는 일화를 연이어 들려주신다. 깊은 산 속에서 산나물을 캐다 보면 노루, 산고양이, 꿩, 뱀 등의 산짐승을 종종 만난다. 노루나 산고양이는 사람의 인기척에 놀라 ‘혼쭐내어’ 도망가기 바쁘지만 뱀들은 그렇지 않다고 한다. 뱀 중에 독사는 똬리를 틀면서 기다란 혀를 날름거리며 사람들을 위협하기 일쑤였다. 나물을 캐다가 실수로 독사를 밟아 물리는 사례가 빈번했다고. 하지만 나물 캐는 재미를 포기할 수 없었다고 회고한다.

인터뷰 내내 신옥순 할머니는 나물을 캐다는 말보다 ‘뜯다’, ‘끊다’, ‘긁다’라고 말씀하신다. 나물을 뜯는다는 말은 많이 들어 봤어도 ‘끊거나 긁는다’는 말은 생소하게 들렸다. 왜 끊거나 긁는다라고 말하는 것일까.

옛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보릿고개를 그나마 넘으며 살아날 수 있었던 것은 산나물 덕분이라는 말도 있다. 그런데 먹고 살아남으려면 누가 산나물을 발견하기 전에 ‘뜯거나 긁거나 끊어서’라도 많은 양의 산나물을 캐야만 했다. 저간의 아픈 사연을 간직한 이 말이 그들의 삶에 녹아 지금껏 사용되고 있는 것이다.

격동의 세월을 보낸 그들은 “참 잠시다. 우리도 엊그제 참 소녀이더만은 이렇게 될 줄 누가 알았겠노.”라며 말한다. 그때의 아낙네들이 지금은 할머니가 되어 있다. 흘러가는 세월을 붙잡지 못함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몸이 쇠약해진 그들은 이제 천주산에 올라가 나물을 캐지 않을 것으로 보이나 매년 봄마다 나물을 캐러 천주산을 수십 번 오르내린다. 몸이 아닌 마음으로. 그들은 지금도 그때의 그 시절로 돌아가 함께 노래를 부르며 산나물을 캐고 있을지 모른다.

[정보제공자]

신옥순(여, 1935년생, 외감마을 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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