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렉토리분류

처가 도움으로 장사를 시작하고 - 달천동가든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2E020303
지역 경상남도 창원시 의창구 북면 외감리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황은실

외감마을 입구에서 달천계곡 방면으로 400m 즈음 가면 우측 편에 깊숙하게 들어간 곳에 자리한 집 한 채가 보인다.

집 입구로 들어서면 넓은 주차공간과 운동시설이 준비되어 있고, 마당 한켠에 닭장과 그 앞으로는 텃밭이 자리하고 있다. 이곳이 바로 달천동가든(북면 외감리 453-1번지)이다.

달천동가든의 주인은 최은주(43세) 씨이다. 이름만 보고 여성이라 생각할지 모르나 170㎝가 조금 넘는 키에 풍채가 좋은 남자다. 이름의 숨은 뜻은 은나라 은(殷), 기둥 주(柱)인데 나라의 기둥이 되라고 하여 아버지가 지어 주신 이름이란다.

 

웹사이트 플러그인 제거 작업으로 인하여 플래시 플러그인 기반의 도표, 도면 등의
멀티미디어 콘텐츠 서비스를 잠정 중단합니다.
표준형식으로 변환 및 서비스가 가능한 멀티미디어 데이터는 순차적으로 변환 및 제공 예정입니다.

달천동가든 주인 최은주 씨

최은주 씨의 고향은 통영이다. 고향을 떠나 이곳에서 식당을 열기까지 그 사연은 이러하다. 그는 통영의 홀리골이라는 작은 어촌마을에서 5남 2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마을 앞에는 대섬이라는 섬이 있었는데 그 섬은 어릴 적 아이들의 놀이터였다고 한다. 친구들과 함께 1시간을 헤엄쳐 대섬에 도착하면 해삼, 게 등 잡으면서 놀았다고. 지금은 대섬이 매립되어 추억만이 아련히 남아 있다고 한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스물한 살에 통영에서 나와 형님의 소개로 경상남도 지역 일대에서 서비스업에 종사하게 되었다. 그 경험이 지금은 장사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고. 그러다가 서른이 되어 부인과 선을 보고 결혼하게 된다.

결혼 후 외감마을과 5㎞ 떨어진 소답동에서 영업직을 하면서 살고 있었는데 처가가 외감마을이라 처남이 이곳에서 식당을 열어 보라고 권유하였다. 그 당시 천주산 등산객을 대상으로 대나무집 한 집만이 장사를 하고 있었는데 온종일 손님들로 북새통을 이루었다고 한다. 때마침 달천계곡으로 올라가는 길목에 처남의 땅이 있어 그곳에서 식당을 차리게 된 것이다.

달천동가든이라는 이름은 작명소의 도움을 받았다. 물이 들어가는 이름을 지어야 장사가 잘 된다고 하여, 이곳이 달천계곡이 흐르고, 달천동이라는 지명이 있어 그 이름을 짓게 되었다고 한다.

최은주 씨는 장사를 시작하여 5~6년은 고전했다. 대나무집이 장사가 잘되어 손님들이 많으면 이곳으로 와서 식사를 했었는데 그런 손님들이 단골이 되었다고 한다. 지금은 맛있다는 입소문을 번져 많은 손님들이 찾아온다.

달천동가든의 주 메뉴는 촌닭백숙, 옻닭, 닭도리탕, 오리로스, 오리주물럭, 오리백숙, 염소불고기이다. 이 중 이 집의 자랑은 닭요리이다. 천주산 중턱 농장에서 닭을 놓아 길러서인지 쫄깃쫄깃한 육질의 닭고기를 맛볼 수 있다. 또한 텃밭에서 손수 기른 각종 채소들(배추, 고추, 오이, 부추, 콩 등)을 재료로 사용하고 있다. 이 집의 별미는 물김치이다. 달천계곡의 맑은 물로 담근 물김치는 옛 어머니의 손맛이 그대로이다.

 

웹사이트 플러그인 제거 작업으로 인하여 플래시 플러그인 기반의 도표, 도면 등의
멀티미디어 콘텐츠 서비스를 잠정 중단합니다.
표준형식으로 변환 및 서비스가 가능한 멀티미디어 데이터는 순차적으로 변환 및 제공 예정입니다.

달천동가든 앞 텃밭

 

웹사이트 플러그인 제거 작업으로 인하여 플래시 플러그인 기반의 도표, 도면 등의
멀티미디어 콘텐츠 서비스를 잠정 중단합니다.
표준형식으로 변환 및 서비스가 가능한 멀티미디어 데이터는 순차적으로 변환 및 제공 예정입니다.

달천동가든-동치미

 

웹사이트 플러그인 제거 작업으로 인하여 플래시 플러그인 기반의 도표, 도면 등의
멀티미디어 콘텐츠 서비스를 잠정 중단합니다.
표준형식으로 변환 및 서비스가 가능한 멀티미디어 데이터는 순차적으로 변환 및 제공 예정입니다.

달천동가든-동치미를 담아놓은 항아리

식당을 운영한 지는 13년이 되었다. 그 세월만큼이나 단골손님이 꽤 많아졌다고 한다. 그는 손님들에게 종종 “사장님 좋다.”라는 말을 듣는다고 하는데, 이는 아마도 10년 넘게 마을에 살면서 시골의 넉넉한 인심이 몸에 배였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정보제공자]

최은주(남, 1966년생, 외감마을 거주)

등록된 의견 내용이 없습니다.
네이버 지식백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