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 강점기 창원 지역에서 민족의 독립을 위해 전개되었던 항일 운동. 1910년 일제는 조선을 식민지로 만들고 조선인의 저항을 막고 영구적으로 지배하기 위하여 무단 통치를 시작하였다. 이에 따라 조선 전역은 수탈과 착취 아래 놓였고 조선의 백성들은 일제의 식민 지배로부터 벗어나기 위하여 항쟁하였다. 창원 지역도 예외는 아니어서 청년 운동·문화 운동·3·1 만세 운동·농민·노동 운동...
월하(月下) 김달진(金達鎭) 시인은 아버지 김규석(金圭奭), 어머니 조용락(趙鏞樂) 사이에서 1907년 2월 4일 경상남도 창원군 웅동[현 창원시 진해구 소사동]에서 태어났다. 어릴 적부터 향리에서 야은(野隱) 선생으로부터 한학을 배웠으며, 항일 민족 기독교 학교인 계광 보통학교에 들어가 13세인 1920년에 졸업하였다. 서울로 올라와 중앙 고등 보통학교를 다녔으나 앓게...
1910년 국권 강탈 이후 1945년 해방될 때까지 창원 지역에서 이루어진 일본 제국주의의 식민 통치 시기. 1. 마산 1914년 3월 1일 부·군제의 실시와 함께 창원부 외서면 마산포 일대는 마산부로 개칭되었다. 당시 마산포의 인구는 2만 3000여 명에 불과하여 부(府)의 기준에 미달하였다. 그러나 마산항의 병참 기지로서의 중요성과 대일 교역상의 입지적 특성이 중시되어 부로 편...
진해 청년단과 대동 구락부가 통합하여 창립된 어용적 성격을 띤 단체. 1921년 4월에 진해 청년단과 대동 구락부가 통합되어 창립되었다. 진해 청년단의 단장 김병일(金秉一)과 대동 구락부 부장 홍수오(洪守五) 사임 후 두 단체의 의견을 모아 진해 구락부로 개칭하고 구자원(具子源)이 부장에 선출되었으며, 또 부무(部務)가 일층 확장되었다. 진해 청년단은 1915년 창립되었...
1926년 진해 지역의 소년들의 사회 운동 참여를 위해 조직된 단체. 회원 20여 명으로 창립되었다. 일본 경찰의 탄압으로 활동이 자유롭지 못하게 되어 성주사 진해 포교당[현 정암사]으로 사무실을 옮겨 명칭을 불교 소년회로 개칭하였다. 이후 종교 집회를 가장하여 활동을 계속하였지만 일본 경찰이 포교당의 잦은 집회를 구실로 포교당 주지에게 압력을 가해 포교당을 더는 집회 장소로 이용...
경상남도 창원군 진해면에서 1925년 설립된 청년 운동 단체. 경남 창원군 진해면에서 1919년 창립한 진성회(進誠會)가 1925년 12월 13일 오전 11시 임시 총회를 개최하고 진해 제4 청년회로 명칭을 변경하였다. 학원을 설립하여 문맹 퇴치 운동을 하였다. 1926년 10월 31일 제2회 정기 총회에서는 회관 건축, 교양 문제, 재정 문제, 경남 사회 운...
일제 강점기 경상남도 진해 지역에서 활동했던 항일 청년 운동 단체. 1923년 4월 진해 청년 구락부가 정기 총회를 열어 진해 청년회로 개칭하였다. 1915년 진해 청년단을 출발로 해 1919년에는 대동 구락부와 통합하였고 1923년에는 진해 청년회가 되었다. 1923년 10월 13일 일본 토요야마 대학 졸업생 엄용식, 쥬오우 대학 졸업생 이영실을 초청하여 경화동 불교 포교당[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