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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200344
한자 昌原進禮山城
영어의미역 Jillyesanseong Fortress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유적(일반)
지역 경상남도 창원시 성산구 토월동 산44-1
시대 고대/남북국 시대/통일 신라
집필자 남재우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문화재 지정 일시 1993년 12월 27일연표보기 - 창원 진례산성 경상남도 기념물 제128호 지정
문화재 지정 일시 2021년 11월 19일 - 창원 진례산성 경상남도 기념물 재지정
성격 석성
양식 포곡식 석축산성
건립시기/연도 통일신라시대
관련인물 김인광|김율
둘레 4.5㎞
면적 806,234㎡
소재지 주소 경상남도 창원시 토월동 산44-1 지도보기
문화재 지정번호 경상남도 기념물

[정의]

경상남도 창원시 토월동에 있는 통일신라시대 석축 산성.

[개설]

조선시대에 편찬된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 따르면 진례성은 김해부 읍치(邑治)의 서쪽 35리에 있으며, 통일신라의 김인광이 진례성제군사(進禮城諸軍事)였던 것으로 보아 통일신라 때에 축성되었음을 알 수 있다. 다만 이 책이 편찬될 무렵에는 이미 폐성이 되어 옛터만 남아 있었다. 면적은 80만 6,234㎡이고, 김해시 진례면과 경계를 이루는 높이 510m에 축성된 석성으로 둘레가 4㎞에 이르는 포곡식(包谷式) 산성이다. 1993년 12월 27일 경상남도 기념물 제128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경상남도 기념물로 재지정되었다.

진례성은 통일신라 말의 후삼국 쟁패기에 후백제가 경상도 지역으로 진출하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하는 요충지였다. 따라서 진례성은 후백제와 신라, 그리고 후백제의 군사적 진출을 견제하기 위해 신라를 도와주었던 고려에게도 중요한 지역으로 인식되고 있었다.

이것은 기록에서도 잘 나타나고 있다. 『삼국사기(三國史記)』「열전」 견훤에 의하면 “견훤이 보병과 기병 1만 명을 이끌고 대야성을 함락시키고, 진례성으로 군사를 이동시키자 신라왕이 아찬 김율태조 왕건에게 보내어 구원을 요청하였다.”라고 하였다. 『고려사(高麗史)』 태조 3년(920) 10월조에도 견훤은 대량군[현 합천군]과 구사군[현 창원시]을 공략하고, 이어 진례군으로 진출하였다면서 진례성을 진례군으로 표기하고 있으며, 이 사건을 계기로 견훤왕건의 사이가 벌어졌다고 기록하고 있다.

진례성의 위치에 대한 의견도 분분하다. 무주(茂朱), 청도(淸道) 오례산성(烏禮山城), 김해 등으로 비정되고 있다. 하지만 견훤의 진격로나 조선시대 지리지의 내용으로 보아 김해시 진례면과 창원시의 경계선에 있는 석축의 성을 진례산성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최근 석축의 진례산성을 발굴한 견해에 따르면 진례산성의 출토 유물과 축성 수법으로 보아 조선시대에 축성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그리고 『김해읍지(金海邑誌)』나 『김해부읍지(金海府邑誌)』의 기록에서는 진례성이 토성이었다는 것에 근거해 통일신라 말의 진례성은 토성일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현재의 김해시 진례면 송정리에 있는 토성으로 비정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 또한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발굴 결과 진례산성의 축성 수법이 조선시대라든지, 출토된 유물이 조선시대의 것이라는 지적에는 문제가 있다.

우리나라의 산성은 삼국시대 이래 처음 축조된 산성이 이후 조선시대까지 시대의 필요에 따라 증축, 개축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현재의 진례산성의 발굴만으로 산성의 시대를 단정하는 것은 문제가 있는 것이다. 1980년대에 조사한 바에 의하면 산성의 중앙부에 해당하는 계곡 주변에서 신라와 가야 토기인 도질토기편이 채집된 것으로 보아 진례산성은 통일신라 이전에 처음 축조되었고, 현존 상태의 성곽은 조선시대 개축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위치]

창원시와 김해시 진례면과 경계를 이루는 비음산 높이 510m 지점에 있다.

[형태]

포곡식(包谷式) 석축산성(石築山城)으로 비음산에서 발원하여 북류하는 계곡을 따라 축조되어 있으며, 북으로는 창원시 동읍, 남쪽으로는 진해만, 동쪽으로는 김해시 진례면과 부산 사상 일대, 그리고 서쪽으로는 창원과 마산만을 조망할 수 있는 천혜의 요지이다.

체성은 자연 지세를 최대한 이용하여 축조하였는데, 내외의 경사도가 큰 곳은 편축으로, 경사도가 작은 곳은 협축으로 축조하였고, 관문의 동쪽에 위치한 체성은 계곡과 평행으로 축조함으로써 성문의 방어력을 제고하였고, 체성의 폭은 180~320㎝ 정도이다.

[현황]

성벽은 대부분 붕괴되어 형태만을 알 수 있는 정도이나 성의 남쪽 부분은 잔존 상태가 비교적 양호한 편이다. 현재 확인되는 성의 부속 시설로는 관문으로 추정되는 문지를 비롯하여 서쪽과 남쪽의 문지 등 3개소가 남아 있는데 그 중 남문지는 잔존 상태가 양호하여 성문의 축조 수법을 잘 보여주고 있다. 치는 서쪽과 남쪽에서 2개소가 확인되는데, 동쪽에서도 치로 보이는 석렬을 확인하였으나 잡목이 우거져 있어 정확한 양상은 알 수 없다. 망루지는 5개소가 확인되었으며, 건물지는 1개 동이 확인되었다.

[의의와 평가]

현재의 창원 진례산성이 통일신라 말의 기록에 등장하는 진례성인지에 대해서는 아직 이견이 있다. 창원 진례산성에 대한 전면적인 조사뿐만 아니라, 송정리 토성에 대한 조사도 필요하다.

[참고문헌]
[수정이력]
콘텐츠 수정이력
수정일 제목 내용
2013.02.08 오타 수정 오 : ...동쪽으로는 진해시 진례면과... 정 : ...동쪽으로는 김해시 진례면과...
이용자 의견
관** 디지털창원문화대전을 이용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좋은 지적 감사드리며, 해당 부분 수정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2013.02.08
내***** '진해시' 진례면이 아니라 '김해시' 진례면입니다. 2013.0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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