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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200381
한자 黃是憲
영어음역 Hwang Siheon
이칭/별칭 도부(道夫)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경상남도 창원시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최정용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충신
출신지 경상남도 창원시
성별
생년 1606년연표보기
몰년 1637년연표보기
본관 창원

[정의]

조선 중기 창원 출신의 충신.

[가계]

황시헌의 본관은 창원(昌原). 자는 도부(道夫). 아버지는 황집생(黃執生)이다.

[활동사항]

황시헌은 조선 중기 창원도호부 정계(井界)에 살았다. 1636년(인조 14) 병자호란으로 인조가 남한산성으로 피신하자 황시헌은 당시 창원의 부리(府吏)로서 국왕을 구원하기 위하여 창원부사 백선남(白善男)을 수행하여 군사를 거느리고 서북쪽으로 달려갔다. 1637년 1월 3일 남한산성을 30리 앞둔 경기도 광주 쌍령(雙嶺) 아래 남한강 변에서 적병의 기습공격을 받았다. 창원부사는 창원도호부를 상징하는 부인(府印)을 황시헌에게 넘겨주고 장렬히 전사하였다. 부사와 수행 관리들이 전사하고 군졸들이 도망쳤지만, 황시헌은 적의 칼에 양팔이 잘리고도 입으로까지 부인을 지키다가 31세의 나이로 순절하였다.

[상훈과 추모]

현종 때 공조정랑에 추증되었다. 숙종 대에 아들 황우룡(黃羽龍)이 선친의 행적을 조정에 알렸다. 관찰사가 지시를 받고 행적의 사실 여부를 조사하여 사실임을 확인한 후 1689년(숙종 15) 5월 25일 정려를 내렸다. 후손들이 경상남도 창원시 서상동황시헌의 충절을 기리기 위하여 충절비를 세우고 충절각을 건립하였다.

창원 지역에서 전해 오는 민속놀이의 하나로 문창제놀이가 있는데, 이는 황시헌의 충절을 기리고 추모하기 위하여 행하는 민속놀이이다. 이 놀이는, 창원도호부의 역대 부사들이 황시헌의 제삿날 그를 기리는 제사를 지내고 관기로 하여금 추모의 춤을 추게 하고 마을 사람들에게 음복 음식을 나누어 주어 놀게 한 것이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이때 군노(軍奴) 한 사람이 황시헌 순절시의 처참한 모습을 극적으로 연출한 것이 오늘에 전하는 군노놀이로서, 마을 사람들에 의해 전승되어 왔다고 한다.

문창제놀이는 일제 강점기에 단절되었다가 마산 지역에 살고 있는 정경수가 창원노인회의 자문을 받아 놀이 형태를 4과장으로 구성하여 재현하였으며, 1980년 경상남도 무형문화재 제5호로 지정되어 매년 음력 1월 3일 창원시 서상동에서 행해지고 있다. 황시헌을 추모하는 문창제놀이는 농민들의 꾸밈없는 가무이자 놀이로서 일반적인 민속놀이가 예능을 본위로 함에 반하여 충신을 기리는 데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특색을 지닌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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