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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영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200402
한자 題詠
영어의미역 Composing and Reciting Poetry Whose Subjects were Beautiful Scenery and Traditional Landscapes in Changwon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경상남도 창원시
시대 조선/조선
집필자 박태성

[정의]

경상남도 창원 지역의 풍광이나 정자·재실·사찰 등을 대상으로 읊은 시가.

[개설]

제영(題詠)의 사전적 의미는 정해진 제목에 따라 시를 읊거나 또는 읊은 시가(詩歌)를 말한다. 그러나 지리지나 읍지 등에 실려 있는 제영(題詠)은 주로 경승지(景勝地)를 대상으로 읊은 자연에 대한 찬미의 내용이 대부분이며, 이외에도 재실이나 사찰·누각·정자 등을 대상으로 읊은 한시이다. 창원 지역은 도처에 아름다운 풍광이 펼쳐져 있다. 창원의 천주산과 청룡산·태복산·봉림산·정병산·비음산·대암산·불모산·장복산·반룡산으로 둘러싸인 분지형 지형은 산수가 아름답다. 또한 마산 지역의 무학산광려산·여항산과 그 일대, 마산 앞바다의 아름다운 풍광과 여러 섬들도 제영의 대상이 되었다.

천주산의 달천동 및 불모산 계곡과 성주사 계곡·장복산 계곡과 같은 아름다운 절경이 있고, 봉암으로 이어지는 강과 강 주변의 넓은 갈대밭, 그리고 여러 갈래의 맑은 하천과 강 끝으로 펼쳐지는 고요하고 아름다운 바다는 마치 호수를 연상케 한다. 또한 북면과 동면, 대산면으로 이어지는 창원의 동북쪽 지경은 낙동강이 흘러 장관을 이룬다.

마산의 옛 진해 지역인 현 진동 앞바다의 풍광과 아름다운 해안선, 그리고 섬들도 무척이나 아름답다. 창원은 이러한 아름다운 강산과 바다, 넓고 풍성한 들을 배경으로 많은 인물들을 배출하였고, 많은 시인 묵객들을 불러 들였다. 이들은 발길이 닫는 곳마다 그들이 느낀 것을 시로 표현하였고, 스스로 정자나 집을 지어 이름을 짓고 그 이름에 어울리는 시를 지어 주련으로 걸어두었다. 이처럼 문인들 즉 시인 묵객들이 지은 시로써 창원 지역을 대상으로 쓴 시들을 창원의 제영(題詠)이라고 한다.

[작가와 대상]

창원의 제영을 지은 작가들은 대개 창원에 벼슬을 온 사람들이거나 여행객 또는 창원 출신의 문인들이다. 정지상·김극기·서거정·정이오·허목·정구·이첨·김려 등 각종 지리지나 읍지, 군지 등에 기록된 인물들은 뛰어난 학자이자 시인으로 고려 시대와 조선 시대의 문인들이다. 박홍미·전광훈·이세근 등은 창원 부사로 벼슬을 하며 치적을 남긴 사람들이다. 노경종·박신윤·김명윤·안명하·김상정·김기호·김병린·김상욱·김만현 등은 창원 출신 문인들로 그 업적이 높은 사람들이다. 이들이 제영을 남긴 대상은 뛰어난 경관을 가진 경승지이거나 누각과 재실 및 서당 등이다.

창원에서 빼어난 경관을 가진 경승지로 읊어진 곳으로는 현재 창원 대학교 뒷산인 전단산, 북면 외감리의 달천동, 창원 천선동 성주사 계곡을 일컫는 요천, 창원과 진해의 경계가 되는 장복산, 동읍북면의 분수령이 되는 구룡산, 창원으로 진입하는 바닷길의 초입부인 봉암진, 마산 앞바다를 내려다보는 무학산과 그 앞바다, 그리고 그곳을 마주한 창원의 최남단 적현 등이다. 또한 진동 앞의 바다를 노래한 시들과 기록물들도 가치가 크다.

선대 문인들의 발길이 닿았던 누각과 재실 및 서당으로는 마산 월영동의 월영대와 서원골의 관해정, 동읍 석산의 동산정과 소요정, 창원의 남산정, 사파동의 소산정, 적현동의 장산재, 동읍 금동의 금호재, 화양리 화목용계 서당용산재 등이 있으며 옛 진해의 재실과 사당에 대한 몇몇 시들도 남아 있다.

경물을 대상으로 한 제영은 주로 지명이 제목으로 정해지고 그것의 아름다움을 노래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누정시는 누정명이 시제(詩題)가 되고 누정과 누정 주변에 펼쳐진 자연 경물을 노래하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것을 누정 제영이라 한다. 누정 제영은 누정을 지은 사람에 대한 동경과 연모, 누정의 이름에 대한 철학적 해석, 누정 주변의 경물에 도학적 의미 부여 등이 주된 내용이다. 창원 지역에서 누정 제영은 관해정과 월영대를 제외하면 그렇게 많지 않다. 나머지는 대부분 재실과 서당·정사(精舍)·사찰을 노래한 것들이다.

[의의와 평가]

근세 창원 사람들은 창원을 ‘문창(文昌)’이라 하였는데, 예부터 문물(文物)의 자취가 뛰어난 곳이라 하여 최치원에서부터 근세까지 학문과 행의(行誼)·무략훈업(武略勳業)이 뛰어난 사람이 많이 배출된 곳임을 자랑으로 삼았다. 그러나 시대가 변함에 따라 뛰어난 인물이 더 이상 나타나지 않고 문운(文運)의 퇴조도 일어나, 이들이 남긴 제영들을 하나로 엮는 작업을 해야 할 필요성이 제기되었다. 1992년 문창 문화 연구회에서 『문창풍아(文昌風雅)』라는 책을 엮어 138수의 시를 정리하였으나, 완성된 것은 아니다. 앞으로의 과제로 남아있다. 이외에도 유당 김종하가 엮은 『창원군지(昌原郡誌)』[1962]에도 많은 제영들이 남아 있어 이를 보완할 자료가 되며, 조선 후기 김려가 엮은 『우해이어보(牛海異魚譜)』, 출전이 불분명한 「우산팔경(牛山八景)」 등도 창원의 제영을 보완하는 데 매우 소중한 자료이다. 이들을 모두 아울러 창원 전체를 지역별로 묶어서 그 제영을 정리하는 것은 매우 의미 있는 일이 될 것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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