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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남면 항일의거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200429
한자 上南面抗日義擧
영어의미역 Anti-Japan Undertaking to Worthy in Sangnam-myeon
이칭/별칭 상남면 사파정(沙巴丁) 의거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사건/사건·사고와 사회 운동
지역 경상남도 창원시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양미숙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독립만세운동
발생(시작)연도/일시 1919년 4월 29일연표보기
종결연도/일시 1919년 4월 29일 - 상남면 항일의거 종결
발생(시작)장소 상남면 마산헌병대 사파정분견소 옆

[정의]

일제강점기 경상남도 창원군 상남면에서 일어났던 독립 만세 운동.

[개설]

상남면 항일의거는 1919년의 3·1운동에 호응하여 같은 해 4월 29일 오후 1시 창원군 상남면 마산헌병대 사파정(沙巴丁)분견소로부터 남쪽으로 약 400m쯤 떨어진 진해~창원 간의 대로상에서 학생·청년을 중심으로 하는 50여 명의 군중이 상남면의 장날을 이용하여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면서 벌인 독립 만세 운동이다.

[역사적 배경]

1910년 경술국치 이후 10년에 걸쳐 일제는 조선총독부의 설치와 더불어 헌병경찰제를 통한 무력을 앞세워 조선에 대한 식민지 직접 통치를 단행하였다. 이에 조선에서는 일제 식민통치에 대항하는 항일 독립 정신이 지속적으로 고취되고 있었으며 때마침 제1차 세계대전 전후의 국제질서 재편 과정에서 대두된 민족자결주의의 영향으로 더욱 큰 자극을 받게 되었다. 여기에 고종의 붕어(崩御: 임금이 세상을 떠남)가 결정적인 기폭제가 되어 1919년 3월 1일 민족대표 33인의 명의로 독립선언서가 발표됨과 더불어 전국적으로 독립만세운동이 전개되면서 경상남도 창원에서도 상남면을 포함하는 여러 지역의 주민들이 이에 적극 동참하기에 이르렀다.

[경과]

창원군 상남면 장날이었던 1919년 4월 29일 학생·청년들이 진해~창원 간의 대로상에서 독립만세운동을 전개했다. 헌병대 분견소 옆이어서 만세운동이 일어날 것을 예상하지 못했던 일본 헌병들이 급히 무기를 챙겨 현장에 도착했으나 시위군중은 이미 사라진 뒤였다.

[결과]

뒤늦게 도착한 일본 헌병들의 관련자 색출을 위한 조사에도 불구하고 시위 관련자는 한 명도 체포되지 않았다.

[의의와 평가]

상남면 항일의거를 기록한 문헌이 거의 남아 있지 않아 구체적 내용은 알 수 없지만, 학생·청년들이 대담하게 일본 헌병대 분견소 옆에서 기습적으로 벌인 시위이자 영남 지역에서 마지막으로 일어난 3·1운동 관련 독립만세운동이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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