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목차

조선 형평사 창원 분사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200435
한자 朝鮮衡平社昌原分社
영어의미역 Social Equality Society, Changwon Branch
이칭/별칭 창원형평분사,창원형평사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지역 경상남도 창원시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양미숙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사회단체
설립연도/일시 1923년 4월연표보기
해체연도/일시 1937년연표보기

[정의]

일제 강점기 경상남도 창원 지역에 있었던 조선형평사 소속 지회.

[개설]

형평사(衡平社)는 1920~1930년대에 걸쳐 백정들의 실질적 해방을 목적으로 활동한 전국적 조직이다. 1894년 갑오개혁으로 백정이라는 신분적 차별이 법률적으로 철폐되었으나 이후에도 실생활에서는 차별이 여전했다. 1922년 일본 관서 지방에서 치열하게 전개된 수평운동의 영향을 받아 1923년 4월 25일 진주의 이학찬(李學贊)·강상호(姜相鎬)·신현수(申鉉壽)·천석구(千錫九)·장지필(張志弼) 등을 간부로 하여 조선형평사가 창립되었다.

창립 목적을 계급의 타파, 공평한 사회의 건설, 모욕적 칭호의 폐지, 교육의 균등과 지위의 향상, 사회참여 의의 앙양, 동지의 화목·협력·상조 등에 두고 백정이라는 기록을 호적에서 삭제할 것을 조선총독부에 요구하는 등의 활동을 통하여 형평사는 전국 각 도에는 지사(支社)를 설치하고, 각 군·읍에는 분사(分社)를 설치하였다. 이에 따라 조선형평사는 지사 11개소, 분사 67개소, 회원 40만 명의 대규모 운동 조직으로 성장하였다.

[설립목적]

조선형평사 창원분사는 천민 계급인 백정의 신분 차별 철폐와 사회적 평등, 인권 향상 등을 목적으로 설립되었다.

[변천]

1923년 진주에서 형평사가 처음으로 조직되고 난 뒤 전국 각 지역에 분사 설치를 결의하였다. 창원 지역에서도 이 같은 취지에 맞춰 1923년 4월 조선형평사 창원분사가 설립되었다. 1927년 4월 26일 정기총회에서 회장제를 위원제로 변경하고 위원 9인을 선출하였다. 위원으로는 김국언(金局彦) 등이 활동하였다. 1928년에는 마창사회단체협회에 참여하였다. 1930년대 들어서는 형평사의 신파와 구파 간 내부 갈등으로 활동이 침체되었으며, 일제의 압력으로 1937년 5월 1일 형평사 본부가 해체됨으로써 비슷한 시기에 조선형평사 창원분사도 해체되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활동사항]

조선형평사 창원분사는 정기총회를 개최하고, 조선형평사 창원분사 사원들의 자제를 교육하는 데도 앞장섰다. 1925년 4월 15일 조선형평사 창원분사에서는 2주년 전조선형평대회를 축하하는 행사와 1927년 4월 25일 조선형평사 창원분사 창립 4주년 기념식을 개최하였다.

[의의와 평가]

백정의 신분 해방을 목적으로 출발한 조선형평사 창원분사는 사원 자제들의 교육에 열의를 보일 뿐만 아니라 창원 지역의 사회단체 활동에도 참여한 것으로 미루어 항일운동으로 나아가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참고문헌]
등록된 의견 내용이 없습니다.
네이버 지식백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