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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원 청년단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200443
한자 昌原靑年團
영어의미역 Changwon Youth Group
이칭/별칭 창원청년회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지역 경상남도 창원시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양미숙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사회단체
설립연도/일시 1920년 6월 27일연표보기
설립자 김일현|김정숙|황의성|설근헌|황진환

[정의]

일제 강점기 경상남도 창원 지역에 있었던 청년 운동 단체.

[설립목적]

창원청년단은 일반 대중을 대상으로 지식을 고양시키고 체육 활동을 보급하며, 직업을 갖도록 하여 지덕체(智德體) 강화를 통하여 지역 사회 발전에 기여하기 위하여 결성되었다.

[변천]

창원청년단은 1920년 6월 27일 창원면 중동리의 김일현(金一鉉)·김정숙(金正淑)·황의성(黃義性)·설근헌(薛根憲)·황진환(黃臻煥) 등이 주축이 되어 결성하였다. 당시 임원으로는 단장에 김일현, 부단장에 황의성, 총무에 김정숙, 회계에 설근헌, 평의원에 황진환 등이었다. 설립 당시 회원은 약 240여 명이었다. 창원청년단은 1921년 조선청년회연합회에 참여하였다.

창원청년단은 지역 유지들의 찬조금과 회원들의 의연금 5천여 원을 모아 2개월의 공사 끝에 1922년 4월 창원청년회관을 건립하였다. 1925년에는 회장에 이주만(李周萬), 부회장에 김한용(金漢龍), 총무 황신성(黃信性), 재무 김환균(金煥均), 서기 추인조(秋仁祚), 문화부장 김종숙(金鍾淑), 체육부장 주영견(朱寧見), 음악부장 김용태(金容太), 평의부장 김덕수(金德洙), 고문 황의성(黃義性), 김영곤(金榮坤) 등이었다. 창원청년단은 1925년에는 창원청년연맹에, 1928년에는 마창사회단체협의회에 각각 참여하였다.

[주요사업과 업무]

창원청년단은 지역민들의 권익 신장에 앞장섰다. 근로 대중에게 지식 보급과 직업 등을 갖도록 하기 위해 야학을 운영하고 매주 토요일 각종 대중 강연회를 개최하여 창원 지역 일반 대중들의 교양 보급에 앞장섰다. 또한, 당시 청년단체들이 목표로 하였던 지덕체 강화를 실천에 옮기기 위해 매년 봄가을에 대운동회를 개최하였다.

[활동사항]

매년 봄가을에 40여 종목의 운동 경기가 펼쳐지는 대운동회를 개최하여 지역민으로부터 큰 호응을 얻었다. 대운동회 개최와 함께 축구원정대를 조직하여 동래와 대구 등에서 원정 경기를 가졌다. 1921년 10월 창원청년단에서는 당시 청년단체들의 전국적 지도 기관이라고 할 수 있는 조선청년회연합회의 순회 강연단을 초청하여 창원공립보통학교에서 강연을 열었다. 당시 연사는 조선청년회연합회 중앙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던 윤자영(尹滋瑛)과 오상근(吳祥根) 등이었는데, 강연에 참가한 시민들이 700여 명을 헤아릴 정도로 큰 반응을 불러일으켰다.

창원청년단은 1923년 3월 당시 전국적으로 확산되고 있던 물산장려운동과 민립대학 설립운동에 적극 동참하였다. 특히 민립대학 설립운동을 선전하기 위해 소인극(素人劇)을 조직하기도 하였다. 같은 해 8월 오전 6시부터 8시까지 매일 2시간씩 여름강습회를 실시하여 사회와 법학 문제에 대해 강의하였으며 웅변대회도 개최하였다. 웅변대회에는 800여 명의 지역민들이 참가할 정도로 호응이 높았다.

[의의와 평가]

창원청년단은 창원 지역의 권익 신장과 지역민의 지식 보급에 앞장서 대중의 호응을 얻는 등 창원 지역에서 사회운동의 선도적 역할을 담당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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