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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원의 농민 조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200461
한자 農民組合
영어의미역 Farmer Association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경상남도 창원시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남재우

[정의]

일제 강점기 경상남도 창원 지역의 농민 운동 단체.

[개설]

1920년대 중반 이후 농민 운동이 본격화되면서 전국 각지에는 수많은 농민 운동 단체들이 생겨났다. 특히 1930년대 초반에는 농민 운동 단체가 급격히 증가했다. 총독부의 지원을 받는 개량적 농민 단체에서부터 사회주의자들에 의해 주도된 혁명적 농민 조합에 이르기까지 그 성격은 다양했다. 농민 운동의 내용에서도 생존권 확보 투쟁에서 점차 식민지 지주제와 일제의 농업 정책에 반대하는 투쟁으로 발전해 나갔다.

창원 지역에서도 이러한 흐름 속에서 많은 농민 단체들이 결성되어 일제의 탄압에 맞서 활발한 활동을 벌였다. 창원 지역에서는 남면 농민 조합[위원장 홍우진]이 1927년에 결성되었으며 회원은 1928년 초에 70여명이었다. 이외에 삼진 농민 조합, 진해 농민 조합 연합회, 웅천 농민 조합 등 여러 개의 소작인 조합과 농민 조합이 활동을 하였다.

[설립 목적]

농민 조합은 농민들의 생존권 확보와 일제의 농업 정책을 반대할 목적으로 만들어졌다.

[주요 사업과 활동]

웅천 소작 조합은 1928년 4월 웅천면 지역의 소작 농민들이 창립하였으며, 이후 농민 조합으로 조직을 개편하였다. 조직의 중심인물은 조성진(趙性鎭)·정운조(鄭云朝)·김창업(金昌業) 등이었는데 이들은 창립과 동시에 ‘이모작 답에 대한 2중 소작료 철폐’, ‘악지주 퇴치’, ‘부정소작인 퇴치’ 등 주로 소작 관계를 개선하기 위한 활동을 전개하였다. 진해 농민 조합 연합회는 1923년 5월에 창립된 진해 농민 연맹의 후계 조직이었다. 이외에 삼진 농민 조합이 있었다.

1930년대 이후에도 농민 조합 활동이 전개되었다. 창원 지역에서는 1932년 4월경 조맹규, 이승종 등 웅동면 지역의 활동가들이 ‘농조의 지부’를 결성하기 위한 활동을 벌이다가 검거되는 사건이 발생하였는데 경찰은 이 사건을 ‘웅동 적농 조직 혐의 사건(熊東 赤農 組織 嫌疑 事件)’이라 명명하였다.

상남면 지역에서는 안소주·이안호·이교현·이해룡·문상갑 등이 ‘경성 콩그룹’의 지도하에 1940년 10월경부터 혁명적 농민 조합을 건설하기 위한 활동을 전개하였다. 농민 조합 활동을 위한 상황 조사를 실시했는데 조사 항목은 지주·고리 대금업자·반동 분자·스파이의 활동 실태, 지주·부농·자작농·자작 겸 소작농·소작농의 동리별 숫자 및 소작 관계, 농민의 최대 불만 사항 등이었다. 상남면 지역의 활동가들은 ‘주거단위 또는 경영 단위[농장 단위]로 농민 조합을 건설’하고자 했다. 조직 건설 방침으로서 “리를 단위로 3~5인으로 구성된 분회를 1개씩 건설하고 조직이 발전하면 각 분회 책임자 1인을 선발하여 면 단위로 혁명적 농조를 건설”한다는 원칙을 견지하고 있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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