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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빈루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200592
한자 燕賓樓
영어음역 Yeonbillu
영어의미역 Yeonbillu Palace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건물
지역 경상남도 창원시
시대 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이남중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누정
건립시기/일시 1488년연표보기
소재지 주소 경상남도 마산시 합성동 73-18

[정의]

조선 전기 창원도호부 관아가 합포성에 있을 때 동헌에 딸려 있던 누정.

[개설]

연빈루는 1488년(성종 19) 이영분(李永蕡)이 창원부사로 재임할 때 지은 누정으로 지금은 전하지 않는다. 단지 홍귀달(洪貴達)의 『허백정집(虛白亭集)』「연빈루기(燕賓樓記)」에 당시 창원도호부에서 선정을 베풀고 있는 부사를 치하하는 의미로, 새로 지은 누(樓)의 이름을 연빈루라고 지어 준다는 내용이 나온다. 홍귀달[1438~1504]은 문인으로 도승지, 대제학, 호조판서를 지낸 인물이다.

[변천]

연빈루가 있던 곳은 지금의 경상남도 마산시 합성동 73-18번지합포성지(合浦城址)이다. 합포성(合浦城)은 고려 후기 배극렴이 축성한 석축성으로, 둘레가 4,291척, 높이가 15척으로 사대문을 갖춘 평지성으로, 성내에 의만창과 회영고를 설치하여 군량을 저장하였다고 한다. 조선 전기 창원읍성(昌原邑城)이 축성되기 이전 창원도호부의 관아가 있어 읍성 역할을 했으며, 창원읍성을 축성하여 관아가 소답동으로 옮겨간 후에는 경상우도병마절도사영으로 사용되었다. 그러다가 임진왜란이수일(李守一) 경상우병사가 1603년(선조 36) 우병영(右兵營)을 진주로 옮긴 후 합포성에 대한 기록은 전하지 않는다.

[형태]

연빈루가 남아 있지 않아 자세한 형태는 알지 못한다. 다만 홍귀달의 「연빈루기」에 이영분이 창원부사로 부임한 지 5년이 지났을 때 벽허루(碧虛樓)의 곁에 5칸의 새 누(樓)를 지어 ‘연빈(燕賓)’이라 하였다는 내용이 있고, 『경상도읍지』의 창원부읍지·누정조에 연빈루는 동헌에 딸린 작은 누각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현황]

임진왜란합포성이 왜적에게 함락되면서 불에 탔을 것으로 추측된다. 그 후 합포성경상우도병마절도사영이 진주로 옮겨가면서 폐허가 되어 성터의 유적만 남아 있다. 1910년 국권강탈 때까지 성벽이 남아 있었는데 일제 강점기 때 철도와 신작로(新作路) 부설 때 성벽이 헐리고 민가가 들어서면서 파괴되었다. 마산 자유 무역 지역 매축 공사 때 이 성벽을 헐어 사용하였다고 원주민들이 증언하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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