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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200594
한자 具復漢墓
영어의미역 Tomb of Gu Bokhan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능묘
지역 경상남도 창원시 의창구 북면 내곡리 산129
시대 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박태성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양식 원형 분묘
건립시기/일시 조선 전기
관련인물 구복한|창녕변씨
높이 200㎝
지름 550㎝
소재지 주소 경상남도 창원시 북면 내곡리 산129 지도보기
소유자 창원구씨 문중
관리자 창원구씨 문중

[정의]

경상남도 창원시 북면 내곡리에 있는 조선 전기 문신 구복한의 묘.

[개설]

구복한의 본관은 창원(昌原), 자는 상백(象伯)이다. 의창군에 봉해진 구성길(具成吉)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구종길(具宗吉)이다. 충청도사·강계부사·전라병마절도사 등을 역임하였다.

[위치]

창원시 북면 내곡리 도태마을 뒤에 창원구씨 재실인 영모재(永慕齋)가 있고, 뒤쪽 산자락에 전라병마절도사를 역임한 구복한의 묘가 있다.

[형태]

구복한의 묘는 부인 창녕변씨 묘와 나란히 있으며, 묘역은 조선 전기의 분묘 양식을 충실히 보여 주고 있다. 높이 200㎝, 지름 550㎝ 가량의 원형으로, 정면 가운데에 상돌과 비석이 있는데, 비석은 지붕돌[가첨석]과 비신을 돌 하나로 만든 특이한 형태이다. 비석의 전체 크기는 높이 95㎝, 폭 36㎝, 두께 22㎝이며, 비 정면에 세로로 폭 10㎝의 홈이 파여 있고 명문이 있으나 현재는 마멸되어서 글자를 판독할 수 없다. 비석의 지붕돌은 높이 15㎝, 폭 50㎝, 두께 25㎝이다. 비석 양쪽으로는 문인석이 세워져 있다.

구복한의 묘와 옆에 있는 부인 창녕변씨 묘는 모두 상돌이 있었으나 현재는 거의 묻혀 있는 것으로 미루어, 무덤 앞부분을 보축할 때 흙을 덧쌓음으로써 묻힌 것으로 보인다. 두 무덤 한가운데에는 1967년에 만든 상돌이 새롭게 서 있다. 구복한 묘 바로 아래에는 구복한의 묘와 같은 크기의 묘가 있는데, 비석이나 표지석이 없어 누구의 것인지 알 수 없다. 다만 규모나 모양, 외부 축대 등으로 보아 구복한 묘와 비슷한 시기의 것으로 추정된다. 또 그 아래에는 구복한의 집터로 추정되는 조선시대 건물지가 확인되었다.

구복한 묘 앞에는 창원구씨의 재실로 구복한을 모시기 위하여 지은 영모재가 있다. 노재수(盧再洙)가 쓴 「영모재기(永慕齋記)」에는 영모재구복한 묘의 위치 및 의의가 기록되어 있다.

“회산(檜山) 고을 북쪽 2리 정도에 산수의 정기가 모여서 한 골짜기를 이루니 내곡(內谷)이다. 마을 경계에 우뚝한 하나의 전각이 솟았고 국사봉(國士峰)이 둘러쳤고 도사(都事)고개가 양쪽을 끼었다. 그 편액은 영모(永慕)라고 하였는데 이는 조선의 기둥이던 신하 회산 구공(具公)의 묘를 지키는 재실이다. 옛날에는 창진(昌辰)에 있었는데 공(公)은 이 마을 도사터[都事基]에서 생장하였다. 관직이 충청도사·강계부사·전라병마절도사에 이르렀다. 전후의 아름다운 행적을 비록 역사에서 다 계고하지는 못하더라도 최상국윤덕(崔相國潤德)이나 같은 시대에 벼슬에 나아간 사람들과 비교하더라도 지금에까지 나란히 칭송되고 있다.”

[금석문]

구복한 묘의 비석에는 ‘가선대부행전라도병마절도사구공묘갈명(嘉善大夫行全羅兵馬節度使具公墓碣銘)’이라고 새겨져 있고, 부인인 창녕변씨 묘 비석에는 ‘유인창녕변씨지묘(孺人昌寧卞氏之墓)’라고 새겨져 있다. 구복한 묘 서쪽에 있는 비석에는 기묘년 곡우절에 눌재 김병린이 지은 ‘가선대부행전라도병마절도사구공묘갈명(嘉善大夫行全羅兵馬節度使具公墓碣銘)’ 병서(幷序)가 새겨져 있다.

[의의와 평가]

창원 지역에는 조선 전기의 분묘가 많지 않다. 특히 구복한 묘처럼 후세에 개축이나 보수를 하지 않고 원래의 형태를 충실히 보여 주는 분묘는 드물다. 구복한의 묘와 앞의 비석 그리고 비석 아래에 있는 조선 전기의 무덤으로 보이는 분묘는 조선 전기 원형 분묘의 형태를 유지하고 있어 자료적 가치가 크므로 훼손되지 않도록 잘 보존해야 할 것이다. 또한 기문에도 쓰여 있듯이 구복한최윤덕과 나란히 칭송을 받는 사람이었으나 현재에는 그 존재조차 잊혀진 상태이다. 사적을 탐색하여 구복한의 행적과 업적을 제대로 평가하고 창원의 중요 인물로 드러내는 작업도 이루어져야 할 것으로 판단된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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