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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200599
한자 昌原崔潤德遺墟址
영어의미역 House Where one was Born of General, Choe Yundeok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터
지역 경상남도 창원시 의창구 북면 내곡리 1096|1097|1099
시대 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양화영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문화재 지정 일시 1995년 5월 2일연표보기 - 창원 최윤덕 유허지 경상남도 기념물 제145호 지정
문화재 지정 일시 2021년 11월 19일 - 창원 최윤덕 유허지 경상남도 기념물 재지정
성격 생가터
원건물 건립시기/일시 조선 전기
지정면적 2,840㎡
소재지 주소 경상남도 창원시 북면 내곡리 1096|1097|1099지도보기
소유자 박영목 외 2명
관리자 창원시
문화재 지정번호 경상남도 기념물

[정의]

경상남도 창원시 북면 내곡리에 있는 조선 전기 무신, 최윤덕 장군의 생가 터.

[개설]

최윤덕 장군은 조선 세종 때 무신으로, 본관은 통천(通川), 자는 여화(汝和)·백수(伯修), 호는 임곡(霖谷)으로, 지중추부사 최운해(崔雲海)의 아들이다. 태어나면서 모친을 여의고 부친은 국경 수비로 나가 있어 한마을에 사는 양수척(楊水尺)이 키웠다. 어려서부터 힘이 세고 활을 잘 쏘았는데, 어느 날 소에게 꼴을 먹이러 산에 갔다가 호랑이를 만나 화살 하나로 쏘아 죽였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무관 출신으로 좌의정에까지 오른 최윤덕은 특히 성품이 자애롭고 근검하였다고 한다. 공무의 여가를 이용하여 묵은 땅에 농사를 지었고, 호랑이에게 잡아먹힌 남편의 원수를 갚아달라는 여인의 호소를 듣고 그 호랑이를 잡아서 배를 갈라 남편의 뼈를 찾아 장사를 지내게 해주었다는 일화가 전한다. 세종의 묘정에 배향되었고, 통천의 상렬사(尙烈祠)와 안주의 청천사(淸川祠)에 제향되었다. 시호는 정렬(貞烈)이다.

[위치]

창원 최윤덕 유허지는 경·위도상으로는 북위 35°20″, 동경 28°34′에 해당하며, 내곡리 송촌마을 뒤편 ‘정승골’이라 불리는 곳에 자리하고 있다.

[현황]

경상남도 기념물로 지정된 창원 최윤덕 유허지내곡리 송촌마을에 있는데, 『축성대감 최윤덕 장군』에서는 ‘본가터’라고 표기하고 있다. 이곳은 집터의 축대로 추측하는 돌을 쌓은 흔적과 우물이 있었던 자리가 있고, 기와와 자기 조각들이 나오고 있어 장군의 생가터로 추정하고 있다. 1995년 5월 2일 경상남도 기념물 제145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경상남도 기념물로 재지정되었다.

내곡리 최윤덕 장군의 생가지에서 사랑채라고 전해지는 곳은 현재 밭으로 경작되고 있고, 사랑채의 축대는 밭둑으로 이용되고 있다. 축대는 180㎝ 내외이며, 현재 감나무 밭으로 경작되는 곳은 안채 자리라고 하며, 그 뒤쪽으로는 별당이 있었다고 하나 속전(俗傳)이어서 검증할 방법이 없다.

[의의와 평가]

최윤덕 장군은 창원 출신의 조선 전기 무관으로, 좌의정에 오른 위인이다. 세종이 “윤덕은 나를 만나면 반드시 성을 쌓은 것을 말한다.”라고 할 정도로 그는 충청도, 전라도, 경상도의 하삼도(下三道) 연안과 동북, 서북 양도(兩道)의 북방 변경을 방어하는 방책으로 축성을 쌓은 데 적극적이었다.

최윤덕은 판서, 우의정, 좌의정 등 높은 벼슬자리에 있으면서도 변방으로 내려가 성을 쌓았다. 이리하여 그에게 축성대감이란 별명이 붙게 된 것이다. 이러한 사항은 조선왕조실록에서도 종종 확인할 수 있다. 최윤덕의 생가지는 정식 발굴, 조사된 적은 없지만, 역사적 인물이 탄생한 곳이라는 데 큰 의의가 있다고 할 수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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