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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원 공씨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200807
한자 昌原孔氏
영어의미역 Changwon Gong Clan
이칭/별칭 곡부공씨(曲阜孔氏)
분야 성씨·인물/성씨·세거지
유형 성씨/성씨
지역 경상남도 창원시 의창구 동정동
시대 고려/고려 후기
집필자 박태성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분관|분종 시기/일시 1792년 - 창원 공씨가 곡부 공씨가 됨
세거|집성지 창원 공씨 세거지 - 경상남도 창원시 의창구 동정동 지도보기
성씨 시조 공자
입향 시조 공소

[정의]

공자를 시조로 하고 공소를 입향조로 하는 경상남도 창원시 세거 성씨.

[개설]

창원 공씨곡부 공씨(曲阜 孔氏)라고도 한다.

[연원]

창원 공씨의 시조는 중국 노나라의 공자(孔子)에게서 비롯한다.

[입향경위]

창원 공씨의 입향조는 고려 때 귀화한 공자의 54세손인 공소(孔紹)이다. 공소는 원나라 순제 때 노국 대장 공주공민왕에게 시집올 때 배행하여 와서 당시의 회원군(檜原郡), 즉 창원군에 봉해졌는데 이때 창원 지역으로 이거한 것이다. 공소의 이름 ‘소(昭)’는 고려 광종의 이름과 같아 이를 ‘소(紹)’로 바꾸었다고 한다. 이변(李釆)이 쓴 ‘창원백공소신도비명(昌原伯孔紹神道碑銘)’에는 공소가 귀화하여서 창원에서 살다가 죽은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또 황보씨와 조씨와 결혼하였으나 모두 실묘하였다.

공소의 윗대로는 증조부 공문원(孔文遠)이 송나라 때에 연성공(衍聖公)에 봉해졌고, 조부인 공지후(孔之厚)는 경거 도위(輕車都尉)를 지냈으며, 아버지 공완(孔浣)은 원나라 때 태상 예의(太常禮義)를 지냈다. 공소의 아들 공여(孔帤)는 평장사와 육위(六衛) 대장을 지냈고, 조선 시대 한성 부윤 등을 지낸 공부(孔俯)와, 고려 시대 평장사를 지내고 조선 시대 벼슬을 마다하여 절개를 지킨 공부의 아우 공은과, 조선 중종 때 강직한 문신으로 대사헌을 지낸 공소의 10세손 공서린(孔瑞麟) 등이 대표적 인물이다.

공씨가 창원 공씨에서 곡부 공씨로 된 것은 1792년(정조 16) 때이다. 당시 명나라에 동지사 은사로 갔던 이성원(李性源)이 공씨의 족보를 가지고 와서 왕에게 보이니 왕은 창원 공씨곡부 공씨의 내력이 일치하므로 굳이 본관을 달리할 이유가 없다 하여 왕명으로 본관을 곡부 공씨로 정하였다.

[현황]

현재 창원 공씨경상남도 창원시 의창구 동정동에 많이 살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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