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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재상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200936
한자 張在尙
영어음역 Jang Jaesang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경상남도 창원시 의창구 북동 146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홍혜미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독립운동가
출신지 경상남도 창원시 북동 146 지도보기
성별
생년 1924년연표보기
몰년 1959년연표보기

[정의]

일제강점기 창원 출신의 독립운동가.

[활동사항]

장재상은 1942년 7월 20일 창원면 동정리에 있는 창원신사 뒤 숲에서 10여 명의 급우들(박대근·최을석·조문대·김명수·배장실 등)과 밀회를 거듭한 후 청년독립회를 조직했다. 청년독립회는 이후 일본의 감시가 극심하여 공식적인 활동보다는 백정기의 지시에 따른 은밀한 활동을 펼쳐나갔다. 이들은 학교에서 강요하는 신사참배에 응하지 않기로 결정하고 단체 참배 때는 무슨 핑계를 대서라도 들어가지 말 것, 노골적으로 불참 권유는 하지 않지만 주변 친구들에게 자연스럽게 불참을 권유하고 먼저 실천할 것이라는 강령을 세우기도 했다.

장재상배장실과 일본이 신성하게 여기는 신사문(神社門)에다 진흙을 칠하는 행동을 하기도 했다. 또한 ‘조선독립만세’라고 쓴 벽보를 진해군항과 연결되는 요지인 창원역의 지하도 교량 화장실 등에 붙여 대중적 관심을 이끄는 사건(창원만세사건)을 주도하기도 했다. 1943년 5월 말경 장재상과 7명은 창원만세사건의 용의자로 진해경찰서에 검거되었으나, 범행을 부인하고 증거가 없어 29일 만에 풀려났다. 그 후 일본의 집요한 수사로 1944년 12월 진해헌병대에 의해 검거되어 8개월 동안 수감되었다가 출옥했다. 장재상은 출옥 후 모진 고문의 여독으로 고생했다.

[상훈과 추모]

1995년 대통령 표창이 추서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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